‘언론 장악’을 향한 윤석열 대통령의 집착

2024년 세계언론자유지수에서 한국은 62위를 기록하며 '문제있음' 국가에 분류됐다. 출처: 2024 World Press Freedom Index

대통령의 뇌 구조는 단순하다. 이것이 검사의 직업적 특성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확실히 모든 문제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 것 같다. 정치평론가들에 따르면, 대통령실은 애초 채 상병 사망과 수사외압 또한 이렇게 커질 사안이 아니었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그런데 채 상병 사망 사건이 특검까지 번진 건 ‘MBC 보도’ 때문이라고 본다는 거다. ‘대통령의 격노’가 아니라.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호주대사로 떠나는 비행기까지 따라간 MBC가 문제라는 인식이 자리 잡혀 있다는 얘기다. 안타깝게도 현재 방송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불행은 여기에서 시작됐다. 

윤석열 대통령의 언론 장악을 향한 의지는 어느 때보다 큰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계 어디에 눈을 돌려도 대통령의 그림자가 보이는 이유다. 그리고 어김없이 그곳은 뒤죽박죽 ‘난장판’이 되고 있다. 

‘방송4법’의 예측 가능한 미래

7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공영방송 이사 추천권 분산과 사장 선출 방식 변경 및 임기 보장, 방통위 의결 기준 강화를 담은 ‘방송4법(「방송법」, 「방송문화진흥회법」, 「한국교육방송공사법」, 「방통위설치법」)’이 모두 통과했다. 국민의힘은 법안 처리에 반대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에 들어갔으나, 더불어민주당이 ‘재적의원 3/5 이상’의 의석수를 활용해 무력화한 결과다. 

그렇다면, 이제 새로운 법 체제에서 KBS와 MBC, EBS가 운영될 수 있게 된 것일까. 아니, 그렇지 않다. 우리는 이미 ‘방송4법’의 미래를 알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고, 국회에서 2/3의 동의를 얻지 못해 폐기될 전망이란 사실을 말이다. 그동안 무수히 반복돼 왔던 패턴이다. 윤석열 정부는 그동안 ‘여야 협의가 없었다’는 이유를 들어 채상병 특검법을 비롯해 간호법, 노란봉투법, 전세사기특별법 등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해 왔다. 방송법이라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 21대 국회에서 방송법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폐기된 바 있기도 하다. 

윤석열 대통령의 ‘방송4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는 다른 말이 아니다. 공영방송 사장을 대통령실 입맛대로 고르겠다는 얘기다. 그리고 그 타깃은 MBC를 향해 있다. KBS는 기자의 노트북에 부착된 세월호 리본 스티커를 흐림 처리하는 수준으로 이미 장악됐기 때문에 관심이 덜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KBS 또한 (윤석열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상) 후임 사장에 대한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진숙 방통위원장의 의미와 미래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내정자로 인해 시끄러웠다. 애초 검증 자체가 무의미한 인사였다. 이진숙 씨는 MBC가 불공정 보도 논란과 함께 해직자 사태가 벌어졌던 당시 ‘김재철의 입’으로 통했던 인물이다. ‘트로이 컷’ 보안 프로그램을 이용한 노조 불법사찰의 책임자였으며 최필립 당시 정수장학회 이사장과 특정 대선 후보를 지원하고자 MBC 민영화를 논의해 논란을 빚었다. ‘노조 비방’을 위해 위키트리와 2억 5천만 원의 위탁 계약을 했던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렇게 애초 부적절한 이진숙 씨를 방송통신위원장에 내정한 대통령실의 의도 또한 분명하다. 

이진숙 씨가 방통위원장직에 적절하지 않은 이유는 수두룩하다. 그는 2019년 10월 자유한국당에 인재 영입으로 입당한 뒤 ‘극우’적 행보를 걸었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을 ‘폭도들의 선전·선동’으로 폄훼한 글에 ‘좋아요’를 눌러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인사청문회에서도 이진숙 씨는 사과하지 않았다. 오히려 “언제부터 우리나라가 ‘좋아요’ (지인) 연좌제가 있는지 모르겠다”면서 “공직에 임명된다면 소셜미디어에서 ‘좋아요’ 표시하는 것에 조금 더 손가락 운동에 신경을 쓰겠다”고 답해 논란을 부추겼다. 5·18광주민주화운동과 5·16쿠데타 및 12·12사태, 전두환 정부 등 역사적 사건에 대해 답변을 거부했다. ‘일본군 위안부 강제적인가’라는 질문에는 “논쟁적 사안”이라고 밝혔다. 

이진숙 씨는 ‘문화예술계를 좌우’로 나눠 색깔론을 씌우기도 했다. 그는 영화 <암살>, <기생충>, <택시 운전사> 등을 “좌파 영화”라며 “알게 모르게 우리 몸 DNA로 스며든다”고 발언한 바 있다. 특정 연예인들을 ‘좌파’로 낙인찍기도 했다. 이진숙 씨는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민주노총과 언론노조에 대해 적개심을 보이며 “공영방송들이 노동 권력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법인카드 사적 사용에 대한 의혹도 해명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윤석열 대통령은 31일(오늘) 이진숙 방통위원장 임명을 강행했다. 그리고 방통위는 이날 오후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 및 KBS 이사 선임을 의결한다는 계획이다. 우리는 안타깝게도 그 후과도 알고 있다. MBC 사장 교체라는 사실을. 

‘방통위 0명 체제’ 사태, 그 후

방송통신위원회에서는 현재 기구가 출범 이후 ‘0명 체제’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대통령 추천 몫이던 이상인 부위원장이 그만뒀기 때문이다. 여기에도 윤석열 대통령의 언론 장악을 위한 적극적인 행보가 엿보인다. 

이상인 부위원장의 사의 표명은 더불어민주당의 ‘탄핵안 소추 추진’에 의한 것이다. 「방통위 설치법」 제6조는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해 “직무를 집행하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 범위는 ‘위원장’으로 한정된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이상인 부위원장이 ‘위원장 직무대행’으로 ‘상임위원 2인 이상의 요구로 위원장이 회의를 소집하며 재적 위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하도록 한 방통위법을 위반했다’고 탄핵소추를 발의했다. 누가 보더라도 무리한 결정이다. 만일, 이상인 탄핵소추안이 헌재로 간다면 어떻게 됐을까. 인용될 가능성이 낮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인 부위원장은 ‘사의 표명’을 선택했고, 윤석열 대통령은 곧바로 재가했다. 대통령실과 협의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이상인 부위원장은 왜 사의를 표명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올 때까지 직무가 정지되는데, 그렇다면 공영방송 이사 선임 계획 또한 늦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윤석열 대통령이 언론 장악을 위해 ‘사의’를 조정했을 거라는 의미다. 윤석열 대통령은 곧바로 김태규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을 후임자로 임명했다. ‘2인 체제 방통위’를 향한 위법 논란은 신경도 쓰지 않는 태도다. 

국민의힘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의 언론 장악을 향한 집착의 결과들이다. 어느 쪽을 보더라도 비정상적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위법적인 심의로 정부에 충성한 류희림 위원장을 연임시키기도 했다.

어느 때보다 법치를 훼손하는 검사 출신 대통령 시대에서 언론 장악은 이렇게도 잔악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 상태에서 무엇을 더 예측한들 그 또한 의미가 있을까 싶다. 다만, 이 같은 일련의 사태에서 가장 무능한 집단에 대해서는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국민의힘이다. 

국민의힘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모든 사안에 대해 ‘한동훈식 화법’만 되풀이하는 중이다. 그는 ‘방송4법’에 대해 “방송을 민주당 유튜브처럼 운영하겠다는 선언”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공영방송을 국민의힘 유튜브처럼 운영할 수 있는 현 제도는 그냥 둬도 된다는 의미인가? 이진숙 씨에 대해서도 방통위원장직에 적임자인가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국민의힘은 앞서 우원식 국회의장이 제안한 ‘방송4법 논의를 위한 범국민협의체 구성’을 거부한 바 있기도 하다. 이토록 무능한 여당이 있었던가. 한동훈 대표가 걸핏하면 이야기하는 ‘국민 눈높이’가 언제부터 이렇게 낮았을지 궁금하다.

덧붙이는 말

권순택은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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