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 18주기...출입국관리법 개정 논의, 이주민 인권 보장해야

법무부 개정안 "반인권적 장기 구금 가능성 열어둬"... 시민사회 인권적 개정 논의 촉구

철창을 허물지 않아서 그들은 죽었다 / 철창을 허물지 않은 이 나라가 죽였다 / 얼굴을 잘 가려내고 얼굴을 잘 삭제하는 철창의 푸른 심장으로 죽였다 / 불은 불과 회색 화염 뒤에 숨어서 푸르게, 푸르게 죽였다

철창 안에서 삶이 비명을 지르고 삶이 자신을 꺼내달라 할 때 / 철창 밖에서 열쇠를 쥔 사람들은 열쇠를 쥔 채로 멀어졌다 / 열쇠를 쥔 손으로 맑은 공기를 마시고 좋은 밥을 먹고 자유롭게 사랑했다 / 살고자 했던 얼굴들은 함께 숨 쉬고 함께 밥 먹고 함께 사랑을 하고 싶었을 뿐이다

살고자 했던 얼굴들을 기억하는 얼굴들이 여기에 있다 / 벼랑 앞을 걷고 벼랑 앞에 함께 서서 말한다

철창을 허물라 철창을 허물라!  

- 희음(기후위기 앞에선 창작자들, 멸종반란)의 시 '철창을 허물라' 중에서 

18년 전 오늘, 2007년 2월 11일 새벽, 10명의 이주민들이 철창에 갇혀 목숨을 잃고 17명이 크게 다쳤다. 여수외국인보호소에 감금되어 있던 희생자들은 제때 몸을 피할 수 없었다. 불이 번지고 유독가스가 퍼져 숨도 쉬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철창은 굳게 닫혀 있었다. 갇힌 이들의 '도주가 우려된다'는 이유였다. 갇힌 이들은 공장과 논밭에서 세상에 필요한 것들을 함께 만들고 우리 사회와 일상을 지탱해 온 노동자, 시민이었다. 수 차례 밀린 임금을 받지 못해 기다리다 희생된 사람도 있었다. 

18년이 흘렀다. 여전히 수많은 이주민들이 '보호'라는 명분으로 '감금'되어 있다. 인간의 존엄을 짓밟는 철창 안과 밖의 폭력은 끝나지 않았다. 2021년 화성외국인보호소에서는 모로코 국적 이주민의 두 손과 두 발을 뒤로 묶어 두는 '새우꺾기' 고문 사건이 벌어졌다. 해마다 단속 추방 과정에서 이주민들이 세상을 떠나고 중상을 입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 18주기 추모행사. 참세상

잔혹한 세계가 짓밟고 부순 이주민의 삶과 죽음을 기억하는 이들의 분투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8일 오후 광화문 '퇴진 광장'에서는 '여수에서 광화문까지, 탄핵 너머 이주민과 함께 사는 세상을' 바라는 추모행사가 열렸다. 이주구금대응네트워크가 주최한 이날 행사는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 참사 18주기를 함께 기억하고, 이주민의 존엄을 보장하기 위한 출입국관리법 개정을 촉구하는 자리였다. 

1963년 제정된 현행 출입국관리법에 따르면 강제퇴거 명령을 받은 이주민을 '송환할 수 있을 때까지' 외국인보호소에 무기한 구금할 수 있다. 시민사회의 오랜 노력으로 지난 2023년 헌법재판소는 출입국관리법 제63조 1항에 근거한 구금제도가 '외국인의 신체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고 있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국회에서 개정안을 논의 중으로, 해당 조항은 5월 31일까지 개정되지 않을 시 위헌으로 자동 폐기된다. 그런데 현재 국회의 개정안 논의가 헌법재판소의 결정 취지를 몰각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주인권단체를 비롯한 시민사회는 현재 국회에 제출된 법무부의 개정안 역시 이주민에 대한 위헌적 장기 구금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며 규탄하고 있다. 

김연주 난민인권센터 활동가는 이날 추모행사의 연대발언에서 "최근 정부는 기존 발의한 법안을 일부 수정한 것으로 보이지만 여전히 강제퇴거 집행을 위한 구금상한을, 유럽연합 송환지침 6개월, 박주민 의원 대표발의안 100일에 비해 과도하게 긴 17개월로 규정하고, 가중상한의 규정을 두어 총 23개월의 구금이 가능하도록 정하고 있다. 더욱이 개정안은 재구금의 규정을 두고 있어 구금상태에서 잠시 벗어났다가 다시 구금을 되풀이하는 방식으로 탈법적으로 악용될 소지도 높다. 또한 헌법재판소에서 적법절차원칙에 위배되어 헌법에 불합치한다고 판단하였던 부분인 독립적이고 중립적 기관의 통제절차에 대하여도 정부안은 법무부 산하에 ‘위원회’를 두어 구금 기간 연장을 심의하겠다고 하여 헌법재판소 결정의 취지에 정면으로 반한다"고 지적했다. 

김연주 활동가는 "이러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 정부안에 대하여 시민사회 뿐만 아니라 대한변호사협회, 법원행정처, 국가인권위원회, 유엔난민기구, 학계 등에서도 헌법재판소의 결정취지에 맞지 않음을 이유로 우려의 의견을 표하거나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 등을 제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의견을 제대로 수렴할 수 있는 공청회 한 번 열지 않은 채 위헌성을 가지고 있는 법안을 무리하게 강행하고 있다. 더욱이 이 법안의 직접적인 대상자인 국내 체류 이주민에 대하여는 개정안 추진 과정에서 목소리를 듣고 의견을 반영하는 과정이 전무했다"면서 "헌법재판소 결정을 무시하고, 이주민에 대한 인권 침해를 지속하는 위헌적인 개정안 추진을 중단하고, 국회는 헌법재판소 취지에 맞게 출입국관리법을 개정하여 이주민 권리를 보장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심아정 이주구금대응네트워크 활동가는 "안온한 국민의 일상을 떠받치면서도 이 사회의 '구성원'이 아닌 '노동력'으로만 끊임없이 유입되고, 추방되며, 도망치고, 갇히고, 쫓겨나는 조마조마한 삶들이 있다. 18년 전 화재 참사를 잊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은 법무부의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에 깃들어 있는, '이주'를 '안보문제화'하고 이주민의 존재를 '범죄화'하는 전제 자체를 부숴야한다는 절박함으로 이어진다"며 "철창을 허물라는 목소리, 외국인보호소는 폐지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오늘도 멈출 수 없는 이유"라고 짚었다. 

대구시민시국대회에서 발언하는 김옥순 활동가. 이주노동자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대구경북지역연대회의
여수출입국외국인사무소 앞 추모기도회. 이주구금대응네트워크

8일과 9일에는 서울 광화문뿐만 아니라, 지역에서도 18년 전 참사를 추모하고 출입국관리법 개정이 이주민의 존엄을 보장할 것을 촉구하는 행동들이 이어졌다. 8일 오후 대구시민시국대회에서는 김옥순 이주와 가치 활동가가 발언에 나서 "외국인보호소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출국 때까지 갇혀 있는 장소로 이름만 보호소일 뿐 사실상 구금을 자행하는 곳"으로 "구금은 보호가 아니다, 구금이 아닌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활동가는 "매질과 학대 / 인간 사냥과 강제 추방으로 / 꿈속까지 쫓기던 짐승의 울부짖음이 / 새벽을 울린다 / 2007년 2월 여수의 바다는 죽음의 바다였다"는 조선남의 시 '죽음의 바다'의 문장을 낭독하며 "법무부는 이주민들에 대한 반인권적 강제 단속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9일 오후에는 여수출입국외국인사무소 앞 화재 참사 시민추모비 가까이에서 추모기도회가 열렸다. 지역 시민들은 추모비에 헌화하며 희생자들의 삶과 죽음을 함께 기억하고, 출입국 관리법 개정을 비롯해 우리 사회 이주민의 존엄을 구현하기 위한 실천을 다짐했다. 

이주구금대응네트워크는 지난 1월부터 이주민 인권을 보장하는 출입국관리법 개정을 위해 서명을 받고 있다. 지난달 22일에는 1차로 취합된 1천 인의 서명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 소속 박범계, 박균택, 이성윤, 서영교, 박희상, 유상범, 장동혁, 주진우 의원실과 우원식 국회의장실에 전달하기도 했다. 서명을 받는 성명서는 11개 언어로 작성되어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는 이주민 당사자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서명은 2월 28일 자정까지 온라인으로 함께할 수 있다. [출입국 관리법 개정 서명 참여하기] 

출입국관리법 개정 서명운동 웹포스터. 이주구금대응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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