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인권은 체제의 문제다!

한국사람 대다수가 학교에서 체벌을 당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 맞지 않고 자란 사람을 찾기 힘들 만큼 흔하고 보편적인 경험이다. 수년 전에는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교사의 체벌 장면이 나오자 온라인상에서 ‘교사폭력’이라는 키워드를 달고 교사에게 당한 폭력 피해 사례가 쏟아져 나온 적도 있다. 그런데 이런 경험은 보통 교육이나 지도를 위한 행위로 해석되고, 부정적으로 기억될 때도 ‘좀 심한 선생님’, ‘일부 폭력 교사’의 문제로 기억되곤 한다. 하지만 학교 체벌이 몇몇 사람들의 경험이 아니라 대다수의 경험이었다는 데서도 드러나듯, 체벌은 교사 개인의 인격이나 성품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체벌은 학교가 적극적으로 활용한 하나의 제도였고, 국가의 교육 정책과 그로 인해 만들어진 교육체제를 작동시키는 주요한 힘이었다. 바로 이런 문제의식으로 내가 활동하는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에서는 “체벌은 국가폭력이다”라고 이야기하며 캠페인을 했다.

[출처] “모두를 위한 교육, 학생에겐 권리를 교사에겐 지원을!”
학교 내 분리・물리적 제지 법제화 규탄 결의대회 (2024.09.27.) / 필자 제공

체벌하기를 요구한 교육

학교 체벌의 특징은 무엇일까? 먼저 체벌(體罰)의 정의는 ‘신체적 고통을 주는 벌’로서 직접 때리는 것이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동작·자세를 강요하는 것이다. ‘단체 기합’이나 ‘앉았다 일어났다’, ‘오리걸음 걷기’ 등 일명 간접체벌이라 불리는 것도 포함된다. 다음으로 어린이·청소년에게만 허용되는 폭력이라는 점이 있다. 보통 ‘잘못을 했으니 맞아야지’라는 말로 체벌이 정당화되지만, 비청소년들의 경우 같은 잘못을 했더라도 체벌을 경험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교사가 학생을, 양육자(부모/친권자)가 자식을, 어른이 아이를 대상으로 하는 폭력만이 ‘정당한 교육행위’로 여겨진다. 마지막으로 교사가 자의적이고 즉각적으로 폭력·강제력을 휘두르는 게 허용된다는 점도 큰 특징이다.

학교 체벌은 어떻게, 왜 지속될 수 있었을까? 교육 환경의 문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학교 시설은 열악한데, 학생 수는 많았다. 1990년대까지도 중고등학교 학급당 학생 수가 40명이 넘는 교실이 많았고, 대도시 학교 중에는 50명에 달하는 경우도 있었다. 교사 한명이 50명 가까이 되는 학생들을 한꺼번에 통제하고 수업하기 위해서는 초법적인 권력과 강제력이 있어야 했다. 획일적인 교육과정과 경쟁적인 입시제도 속에 대개의 수업이 일방적인 주입식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즉, 한국의 학교 환경과 교육 정책은 애초에 교사가 폭력을 동원해서라도 학생들을 억압하기를 요구했다. 실제로 1990년대, 2000년대에 ‘체벌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던 신규 교사들은 다른 교사들로부터 ‘그러면 학생들이 우습게 본다’며 체벌을 하라는 권유 내지 압박을 받았다고 증언한다. 설령 어느 교사 개인이 체벌을 하지 않더라도, 학교 전체로 보면 ‘학생을 잡는 무서운 교사’ 역할을 맡은 교사들이 체벌을 가하곤 했다. 2002년에는 교육부에서 ‘도구는 지름 1.5센티미터 내외·길이 60센티미터 이하의 직선형 나무’, ‘체벌 부위는 남자 둔부·여자 대퇴부’ 등 체벌의 기준을 상세히 제시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권장한 적도 있다. 

어중간하게 이루어진 체벌 금지

학급당 학생 수가 줄어든 2000년대에도 기본적인 교육체제와 질서는 변하지 않았다. 교사는 체벌을 비롯해 학생에 대하여 즉각적이고 자의적이며 포괄적인 통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이용해 교실을 장악하고 학생을 지도하며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곧 교사가 요구받는 직무였다. 진도를 따라가기 어렵거나 교실에 있을 의미를 찾지 못하는 학생들, 입시 경쟁 속에서 지치고 무기력해진 학생들도 교실에 가만히, 잠자코 앉아 있도록 해야 하기에 체벌은 그 가치를 잃는 일 없이 유지되었다.

청소년인권운동은 여기에 문제제기하며 체벌 금지와 더불어 반인권적 학칙 개선, 입시경쟁 폐지 등을 함께 외쳤다. 이런 움직임은 2010년대 들어 제도 개선으로 나타났다. 학교 체벌의 경우 2011년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으로 ‘도구나 신체를 이용하여 직접 때리는 것’을 금지한 것, 2010년 경기도를 시작으로 2013년까지 4개 지역에서 제정된 학생인권조례에 체벌 금지가 담긴 것, 2015년 「아동복지법」 개정으로 ‘보호자는 아동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가하여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명시된 것 등을 거치며 조금씩 바뀌고 있다. 

다만 지금까지도 관련법에 모든 체벌을 금지한다고 명시되지 않은 점, 체벌 발생 시 구제하는 제도나 근절을 위한 노력이 미비한 점 때문에 한국에서 학교 체벌이 제대로 금지되었다고 하기는 애매하다. 소수더라도 학교에서 체벌을 경험하는 학생들이 지금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 대중 매체 등을 통해 체벌이 경시되기도 하고, 세월이 흘러 자연스럽게 사라진 일인 것처럼 다루기도 한다. 심지어 때릴 수 있었을 때가 더 좋았다는 듯이 과거를 미화하는 발언도 심심찮게 들린다. "요즘 세상 참 좋아졌어. 이젠 학교에서 애들을 때릴 수도 없고 말이에요." 식으로 말하며 웃거나 체벌 금지에 대해 툴툴대는 경우도 있다. 반면 체벌이 폭력이며, 잘못된 일이었다는 인식과 우리 사회가 학생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체벌을 금지했다는 말은 덜 보편적이다. 이런 어중간함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의 학교 체벌은 제대로 된 사회적 논의를 거쳐서 계획적·정책적 접근에 의해 명백하게 금지된 적이 없다. 무엇보다도 체벌 금지에 따라 당연히 필요한 교육 방식의 변화도 이야기되지 못했고, 교육환경을 개선하고 교육활동을 지원하려는 노력도 없다시피 했다. 

[출처] “중요한 건 나쁜 어른을 만나더라도 두렵지 않은 세상” 지음 활동가들이 거리 캠페인을 하는 모습 (2024.03.21.)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제공

기존 교육체제를 유지하려는 ‘교권 강화’

학교는 그대로인데 체벌만 금지되었다. 학교가 딛고 선 경쟁과 서열화 교육도 바뀌지 않았고, 불평등과 불안정은 더욱 심해졌다. 그러나 여전히 교사는 홀로 교실을 관리하고 학생들을 통제할 것을 요구받는다. 그래서 오늘날 많은 교사들이 ‘체벌 금지(로 대표되는 학생인권 보장)’ 때문에 힘들다고 이야기한다. 기존의 교육 방식과 교육체제의 문제점이 학생인권 탓으로 떠넘겨지는 것이다. 2023년부터 사회적으로 교권 강화 여론이 더 커졌는데, 사실 교권 추락을 우려하고 교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거의 40년 전부터 나왔다. 이러한 현상은 교육체제의 문제점과 한계가 드러나는 것이고, 이른바 ‘교권’으로 지키려고 하는 것은 교사의 권리 같은 것이 아니라 교육체제의 질서라는 점을 우리는 살펴야 한다. 실제로 ‘교권 강화’ 정책 다수는 교사의 노동환경을 개선하거나 안전을 보호 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가 학생에게 강제적·자의적 조치를 가할 수 있는 재량을 허용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현재는 교사가 학생에게 ‘물리적 제지’를 할 수 있고, 학생을 교실에서 ‘분리’시킬 수 있는 권한을 법에 명시하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교권강화 흐름의 대표적인 사례다. 교사와 학생 모두의 수업권을 보장하기 위해 이런 조치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학생을 통제하고 억압할 수 있는 자의적인 권력이 요청된다는 점에서 체벌과 유사한 점이 많다. 교사가 자신의 즉각적 판단으로 수업에 방해되는 학생을 분리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분리 조치는 예전부터 종종 벌어졌고, 2023년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에 포함됨으로써 더욱 공공연하게 시행됐다. 그리고 그 결과 분리 조치가 일종의 처벌로 남용되는 사례, 특정 학생이 반복적으로 배제되는 사례가 발생했다. 특히 장애를 가진 학생이 수업에 방해가 된다며 더욱 자주 분리 조치를 당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처럼 구조적 문제를 그대로 둔 채 교사 개인에게 통제 권한을 더 부여하는 방식은 기존 질서와 어긋나는 학생들을 더 많이 배제하는 결과로, 결국 모두를 위한 통합교육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모두를 위한 교육이 가능한 세상을 만들어갈 체제전환운동

가장 인권적인 것이 가장 교육적이다. 학생인권운동은 학생의 인권이 침해되는 상황을 개선하려는 것이기도 하지만, 학생인권 보장과 함께 교육 방식과 질서에 균열을 일으키고 다른 교육을 만들자는 것이기도 하다. ‘문제 학생’이라 문제 삼으며 배제할 권한을 말하는 게 아니라, 어떤 ‘문제 상황’이 있는지 살피고 함께 돕기 위해 필요한 변화를 고민하자는 것이다. 지금 학생인권에 반대하며 나오는 ‘교권 강화’ 주장은 기존의 체제를 지키고 복원하려는 움직임이다. 변화를 고민하고 모색하기를 포기하고, 익숙하고 오래된 교육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주장이 갈수록 많이 나오는 것은 교육체제 개혁과 전환에 대한 폭넓은 문제의식이 점점 사라져가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도 함부로 짓밟히지 않고 군림하지 않는 교육, ‘가만히 있으라’ 하지 않는 교육, 쫓겨나지 않는 교육, 서로의 다양함으로부터 배우고 함께 돌보는 교육은 체제 전환을 필요로 한다. 우리가 학생인권을 이야기하며 교육과 사회의 체제전환을 함께 고민할 때 모두를 위한 교육도 가능할 것이다. 

덧붙이는 말

난다는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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