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 동안 환경 운동에서는 기술관료적 접근이 지배적이었다. 석유와 중동 역사 전문가인 아담 하니에(Adam Hanieh)는 기후 위기의 해결책이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에 대한 대면 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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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진행: 두니아 다글라스(Dunia Daghlas), 루벤 얀제 린드버그(Ruben Janze Lindberg)
12월 초, 아담 하니에는 헨트대학교에서 "화석 연료 질서를 흔들다: 오늘날의 팔레스타인, 제국주의, 그리고 연대"라는 제목의 강연을 진행했다. <자코뱅>은 강연 전에 하니에와 만나 그의 최근 저서 ⟪원유 자본주의: 석유, 기업 권력, 그리고 세계 시장의 형성⟫(Crude Capitalism: Oil, Corporate Power, and the Making of the World Market)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를 가졌다.
이 책에서 하니에는 석유의 역사를 다루며, 석유가 일반적으로 그것의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자본주의적 사회 관계와는 독립적인 것으로 이해된다고 주장한다. 이번 인터뷰에서 하니에는 석유 산업과 자본주의의 관계를 설명할 뿐만 아니라, 식민주의와 미국의 헤게모니—그리고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에서 자행하는 팔레스타인 민중에 대한 집단학살이 결합된 현실이 21세기 석유 이야기의 핵심임을 강조한다.
두니아 다글라스: 당신은 ⟪원유 자본주의⟫에서, 세계 시장에서 석유의 역할을 이해하려면 자본주의를 그 “논리들(logics)”을 통해 살펴봐야 한다고 썼다. 그것은 무슨 의미인가?
아담 하니에: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석유가 어떤 의미를 갖게 되는지를 이해하려면 자본주의라는 사회 체제 자체가 석유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를 묻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방식을 살펴봐야 한다. 이것은 칼 마르크스가 말한 상품 물신주의에 대한 비판, 즉 사람들이 상품을 그 사회적 관계나 체제 속에 놓인 존재로 이해하기보다는 마치 본질적인 힘을 지닌 것처럼 여기는 경향에 대한 비판에 기반한다. 우리가 “무엇이 석유에 힘을 부여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순간, 이어지는 질문은 “그렇다면 우리는 그 사회 체제에 대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가 된다.
루벤 얀제 린드버그: 당신의 책은 석유와 에너지 전환을 둘러싼 여러 신화를 해체하고 있다. 이 신화들 중 몇 가지와 그것이 자본주의라는 사회 체제에 왜 중요한지 설명해 줄 수 있는가?
아담 하니에: 가장 큰 신화 중 하나는 우리가 지금 “녹색 전환”을 겪고 있다는 믿음이다. 즉, 화석 기반 에너지원이 재생 가능 에너지원으로 대체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보고 있는 현상—그리고 자본주의 역사 내내 에너지 전환에서 반복되어 온 현상—은, 재생 가능 에너지원이 화석 연료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화석 연료 소비에 더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종종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시기의 “석탄에서 석유로의 전환”을 이야기한다. 그 시점에 석유가 주요 화석 연료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석유가 석탄이라는 에너지원 자체를 대체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오늘날 역사상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석탄을 소비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태양광, 풍력, 기타 재생에너지의 사용이 증가해왔음에도 불구하고, 화석연료의 생산과 소비는 오히려 계속해서 증가해왔다. 그래서 나는 전환이라는 언어를 에너지 확장과 추가의 과정으로 다시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확장은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더 많은 상품과 가치를 생산해야 하는 자본주의의 필요에 응답하는 것이며, 그에 따라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에너지 처리량을 요구하는 것이다.
두니아 다글라스: 책에서 당신은 석유 산업 확장에 있어 미국 패권이 수행한 역할과, 다시 석유가 전 세계에 걸쳐 미국의 영향력을 공고히 하는 데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설명했다. 특히 당신은 미국이 어떻게 석탄에서 석유로의 전환을 주도했는지, 특히 서유럽에서 그 전환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다루었다. 이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는가?
아담 하니에: 20세기 초반을 거치며 세계 석유 산업은 미국이 주도하는 산업으로 자리잡았다. 미국은 아제르바이잔의 바쿠와 함께 석유 생산의 중심지였으며, 일곱 개의 가장 큰 석유 회사 중 다섯 곳이 미국 회사였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이었다. 석유는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새로운 기술적 진보에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전쟁들은 분명히 석유 전쟁이었다. 탱크, 자동차, 선박, 비행기 등 가장 중요한 전쟁 무기들이 석유를 기반으로 했기 때문이다. 20세기 중반까지 미국은 석유화학제품과 플라스틱, 합성 고무, 섬유 같은 합성 제품의 도입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이로써 석유는 우리의 일상생활에 깊이 뿌리내리게 되었다.
이러한 세계 석유 산업의 구조와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가 등장한 상황에서, 석탄에서 석유로의 전환과 서유럽에서 석유화학제품 사용의 증가는 진공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는 미국이 시장 내 입지를 확장하려는 다양한 시도, 예컨대 서유럽 경제를 석유와 석유화학 중심으로 밀어붙인 마셜 플랜 같은 조치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이는 서유럽의 에너지 소비를 중동과 걸프 왕정국들의 석유 매장량과 연결시키는 데 기반한 밀어붙이기였다.
루벤 얀제 린드버그: 미국이 주도한 석탄에서 석유로의 전환은 중동에 어떤 의미를 가졌는가? 석유는 이 지역의 ‘기존’ 세력과 ‘신흥’ 세력을 어떻게 형성했는가?
아담 하니에: 중동에서 석유로의 전환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이해하려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 지역 전역으로 확산된 반식민 아랍 민족주의 및 좌파 투쟁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투쟁들은 유럽 식민주의의 약화와, 1955년 반둥회의의 정신이 보여주듯 영토와 자원을 장악하려는 전 세계 반식민 운동의 시도들과 맞닿아 있었다.
미국은 이 지역에서 제국주의 질서를 회복하고 서유럽의 석유 접근을 보장하기 위해, 반식민 운동을 억제하고 사우디아라비아와 걸프 왕정국들을 비롯한 자국 동맹국들을 보호해야 했다. 걸프 국가들은 지역 내 반식민 운동의 위협을 받는 비인기 왕정 체제였기 때문에,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미국의 군사적·정치적 지원이 필요했다. 이러한 지원은 걸프 왕정국들을 중동 내 미국 권력 구조에 통합시켰다.
1967년 전쟁에서 나세르주의가 패배한 이후, 미국은 아랍 민족주의와 반식민 운동을 견제할 수 있는 세력으로서 이스라엘을 후원하는 주요 세력으로 나섰다. 이스라엘은 걸프 왕정국들과 더불어 중동에서 미국 영향력의 핵심 축으로 떠올랐다. 미국과 이 두 핵심 축 사이에 형성된 관계는 유럽 식민주의의 쇠퇴와 미국 제국주의의 부상을 반영한 것이었으며, 이 관계는 오늘날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두니아 다글라스: 당신의 책 전반에서 군국주의는 중요한 초점으로 등장하며, “석유 소비의 주요 동력”으로 묘사된다. 앞서 대화에서도 당신은 세계대전들을 “석유 전쟁”이라고 표현했다. 오늘날 우리는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집단학살과 무제한적인 군사주의를 목격하고 있다. 이번 집단학살 전쟁의 중심 목표 중 하나는 아닐지라도, 석유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아담 하니에: 이 책에서 도출할 수 있는 주장 중 하나는, 팔레스타인이 단지 생태학적 학살이나 환경의 대규모 파괴 때문에 기후 문제인 것이 아니라, 중동이 세계 석유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치 때문에 기후 문제라는 점이다. 그리고 위에서 설명했듯이, 우리는 이 맥락에서 걸프 국가들의 역할을 이해해야 한다. 오늘날 팔레스타인을 이해하려면 사우디아라비아와 이 지역이 세계 최대 석유 수출지라는 점을 함께 이야기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만약 중동이 세계 최대 바나나 수출지였다면, 이스라엘은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반군사주의와 마찬가지로, 팔레스타인 문제 또한 기후 문제다. 석유는 군사 차량에 연료를 공급하고 전쟁 수행을 가능케 하는 석유화학 제품을 제공함으로써, 과거와 현재 모두 군대의 생명줄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군대는 배출의 주요 원인임에도, 파리협정이나 교토의정서 같은 국제 협약에서 설정한 배출 목표에조차 포함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나는 우리가 군사주의와 전쟁-석유의 연결고리를 다루지 않고는 기후 배출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루벤 얀제 린드버그: 기후 위기를 바라보는 활동가들의 관점은 어떠해야 하는가?
아담 하니에: 기후 위기를 언젠가 미래에 일어날 사건으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 기후 붕괴를 살아가고 있다 — 뉴스만 틀어봐도 알 수 있다. 나는 기후 문제를 주거, 경제 붕괴, 도시 구조, 교통 체계, 식량 생산 방식, 그리고 군사주의, 전쟁, 제국주의 문제와 연결짓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요소들이 어떻게 기후 위기에 기여하는지를 다루려면, 기후 변화를 기술적 과제로 보는 시각을 멈추고 정치적·사회적 문제로서 인식해야 한다. 물론 우리가 던져야 할 기술적인 질문들도 존재하지만, 그것은 단지 휘발유 차량을 전기차로 바꾸는 문제만이 아니다.
이 말은 로자 룩셈부르크의 구호, “사회주의냐 야만이냐”를 떠올리게 한다. 나는 우리가 지금 분명히 야만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일이든, 기후 붕괴가 전 세계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방식이든 말이다.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 우리는 훨씬 더 명확하게 인식하고, 개입하고, 조직할 준비를 해야 한다. 이 책이 그런 논의의 일부가 되기를 바란다.
두니아 다글라스: 당신이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정치적이고 사회적이라고 말할 때, 기후 정의 운동이 자본주의를 하나의 사회 체제로서 분석에 포함하지 않음으로써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아담 하니에: 기후 정의 담론의 많은 부분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종종 부재하다. 그럴 경우 문제의 실체를 명확히 지목하지 않고 체계적인 관점을 갖지 못한다면, 잘못된 해결책을 제시하게 될 위험이 있다. 많은 기후 운동가들은 두 가지 접근 사이를 오가고 있다. 하나는 시장 기반의 녹색 자본주의식 해결책이고, 다른 하나는 개인주의적 해결책이다. 오늘날 기후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제시되고 있는 대부분은 시장 주도의 해결책이다. 여기에 수소나 바이오연료 같은 ‘가짜’ 기술이나, 탄소 상쇄와 같은 배출을 통제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환상적인 조치들이 포함된다.
또한, 생산 방식이나 사회 체제를 전혀 문제 삼지 않으면서 개인의 소비를 바꾸는 데만 초점을 맞춘 접근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해결책은 대체로 매우 엘리트적인데, 대다수 사람들은 자신의 소비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여유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려면, 자본주의가 생산과 소비의 패턴을 어떻게 구조화하고 있으며, 그것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기후 위기를 어떻게 초래했는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루벤 얀제 린드버그: 기후 운동가들을 괴롭히는 동일한 모순들이 팔레스타인에 대한 현재의 연대 동원에서도 드러나는 점이 흥미롭다. 팔레스타인 연대를 위한 대학 내 학생 캠프의 경우, 그 요구안들이 종종 “국지적”이거나 “분절된” 관점을 반영하며, 보다 구조적인 문제들과 제대로 연결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최근 제기되는 비판 중 하나는, 학문적 보이콧이 반드시 시온주의 정권과의 실질적인 물질적 연계를 겨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학문적 연계에만 집중함으로써, 대학들이 제노사이드 전쟁에 가하는 유럽의 자금 지원이라는 문제를 조직적으로 다루는 데서 관심을 돌리게 만든다는 지적이 있다. 실제로 많은 대학 내 조직 활동은 지금의 집단학살을 가능케 하는 구조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보다는, 우리의 ‘공모’를 끊는 데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담 하니에: 이 문제에 대응하려면 전술과 전략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략은 사회 체제를 변화시키기 위한 장기적인 방향 설정을 의미하고, 전술은 그런 전략적 힘을 구축하기 위해 지금 이 순간 무엇을 할 것인지를 의미한다. 대학이 학문적 보이콧을 시행한다고 해서 집단학살이 즉각 중단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사람들의 의식을 고양시키는 매우 중요한 전술이다. 캠페인을 조직하고, 그것을 통해 실질적인 승리를 거두었을 때, 사람들은 이렇게 느끼게 된다. “우리는 무력한 존재가 아니구나.”
국제형사재판소(ICC)나 국제사법재판소(ICJ)를 통한 법적 대응과 마찬가지로, 이런 결정들이 오늘 당장 집단학살을 멈추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이스라엘의 행위와 집단학살의 현실에 대한 인식을 대중에게 확산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따라서 전술적 차원에서 이러한 보이콧 캠페인은 필수적이다. 그것이 학문적 보이콧이든, 군사적 연계에 대한 것이든, 에너지나 기업 연계에 대한 것이든, 그것은 장기적인 전략의 필수적인 일부다.
두니아 다글라스: 마무리하면서, 제2차 인티파다 당시 팔레스타인에서 활동했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해줄 수 있는가? 당시의 민중 봉기와 오늘날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학생 인티파다” 사이에 어떤 유사점을 느끼는가?
아담 하니에: 1990년대와 2000년대 팔레스타인 운동에서 핵심적인 질문은 오슬로 협정과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것이었다. 오늘날의 초점은 분명히 집단학살에 맞춰져 있다. 하지만 나는 오슬로 협정과 그 이후의 민중 봉기들, 그리고 오늘 우리가 목격하는 현실 사이의 연속성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여전히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가자지구 모습은 오슬로 협정의 산물이다.
봉쇄, 출입 제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의 창설, 그리고 다양한 통치 구조들. 이 모든 것이 오슬로 협정의 결과물이다. 우리는 이러한 연속성을 보다 분명하게 드러내야 하며, 운동가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에서도 이 연속성을 더 강하게 다루어야 한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 이후에 다가올 국면이 다시금 ‘협상 재개’와 ‘주권 회복이라는 허상’이라는 언어로 포장될 것이 확실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 언어는 1990년대에 이미 쓰였던 것과 동일한 언어일 것이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이 주도하는 협상은 전쟁의 또 다른 메커니즘일 뿐이다. 다만 지금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인식에서 확실한 대전환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영국의 거리만 걸어봐도, 사람들 창문 밖으로 팔레스타인 깃발이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제는 보통 사람들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고 있다. 우리는 이 의식의 변화를 더 깊이 있게 발전시켜야 하며, 앞서 이야기한 모든 연결고리들을 명확히 보여줘야 한다. 왜냐하면 이런 투쟁의 흐름이 생겼다가도 곧 무너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오슬로 협정 이후 바로 그런 일이 벌어졌고, 그 운동이 다시 회복되는 데는 10년이 걸렸다. 우리는 지금의 모멘텀을 반드시 붙잡아야 하며, 지속 가능한 운동을 조직할 수 있는 역량을 구축해야 한다.
[출처] We Can’t Talk About Climate Without Talking About Capitalism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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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 하니에(Adam Hanieh)는 런던대학교 동양아프리카학부의 수석 강사이며, ⟪반란의 계보들: 중동 현대 자본주의의 쟁점들⟫(Lineages of Revolt: Issues of Contemporary Capitalism in the Middle East)의 저자다. 두니아 다글라스(Dunia Daghlas)는 헨트대학교 갈등과 개발학과 박사과정생이며, 중동·북아프리카 연구그룹(MENARG)에 소속되어 있다. 현재 그의 연구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쿠웨이트에서의 팔레스타인 운동의 역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루벤 얀제 린드베르크(Ruben Janze Lindberg)는 헨트대학교 갈등과 개발학과 박사과정생이며, 실천 속의 권력 네트워크(PiPN)에 소속되어 있다. 그의 현재 연구는 런던 금융가에서 풀뿌리 운동이 금융 기관들을 어떻게 교란시키는지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