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 26살에 입사해서 올해 52살이 됐습니다. … 발전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는 지옥 같은 고통 속에서도 자신이 일하는 석탄화력발전소 폐쇄에 동의했습니다. … 하지만 그 안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와 지역 주민의 삶까지 폐쇄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함께 싸웁니다.”
이태성 발전비정규대표자회의 집행위원장 기자회견 발언 중에서
석탄화력발전소들의 연쇄적 폐쇄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당장 올해 12월 태안화력 1호기를 시작으로 2038년까지 37개의 석탄화력발전소가 폐쇄된다. 모두에게 필요한 전기를 만든다는 자부심으로 일하고 살아왔던 발전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게 되는 위험에도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석탄화력발전소 폐쇄에 동의하고 나섰다. 다만 “석탄발전은 멈춰도 우리 삶은 멈출 수 없다”면서 노동자와 지역 주민의 일과 삶을 지키고 에너지 공공성을 실현하는 정의로운 전환과 공공 재생에너지 확대를 촉구하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노동·기후·사회운동은 발전 노동자들과 함께 대규모의 연대체를 조직하고 공동행동에 나선다.
25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길 민주노총 교육장에서 ‘공공재생에너지 확대·정의로운전환을 통한 발전노동자 총고용 보장 2025 공동행동(정의로운 전환 2025 공동행동)’ 출범 기자회견이 열렸다.
정의로운 전환 2025 공동행동에는 공공재생에너지연대, 기후위기비상행동, 기후정의동맹, 전국민중행동 4개 시민사회연대체를 통해서 노동조합과 진보정당, 기후운동단체 등 시민사회 각계 200여 개 이상의 조직들이 참여한다.
이태성 발전비정규대표자회의 집행위원장 발언 영상. 참세상
이태성 발전비정규대표자회의 집행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일하는 2만 2천 명 중 3명 가운데 1명이 발전소 폐쇄로 일자리를 잃게 된다”며 “발전 노동자들은 이처럼 일자리를 잃는 지옥 같은 고통 속에서도 자신이 일하는 석탄화력 발전소 폐쇄에 동의했다”고 이야기했다.
이 집행위원장은 “발전소가 폐쇄되면 75조의 경제 피해와 10만 명의 일자리가 사라진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발전소 폐쇄에는 동의하지만) 그 안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와 지역 주민의 삶까지 폐쇄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함께 싸운다”면서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어떤가. 원전을 확대하고 전력산업을 민영화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발전소 노동자의 삶을 책임질 주무 부처인 산자부와 고용노동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발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재취업과 재교육을 알선해 준다고 한다. 그 일자리가 바로 아이스크림 공장이었다. 그리고 30만 원을 지원하는 것으로 대책을 마련한다고 한다”고 지적했다.
이태성 집행위원장은 또한 “내일 예정인 고용노동부의 산업전환위원회에는 단 한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도 참여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국가의 폭력”이라 짚고, “우리는 구걸하지 않았다. 우리는 소모품처럼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정의로운 전환을 요구하고 그 네 가지 원칙으로 △해고가 당연하다는 잘못된 전제를 걷어내고 일부를 살리는 대책 수준의 법이 아니라 모두의 삶을 지켜내는 전환의 목적을 함께 만들 것 △ 고용위기에 놓인 노동자들을 정책 입법의 주체로 인정하고 함께 대화할 것 △ 공공 중심의 에너지 전환을 병행할 것 △ 범정부 차원의 계획 수립과 집행을 함께 할 수 있는 민주적 거버넌스를 운영할 것을 제시했다.
정의로운 전환 2025 공동행동 출범 기자회견. 참세상
은혜 기후정의동맹 활동가는 “올해의 투쟁은 발전 노동자의 일자리 문제이기도 하지만 기후 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문제”라며 “기후위기 시대에 일터와 삶터를 위협받는 모든 이들의 가장 최일선에서 전환을 요구하는 싸움인 것이 첫 번째 이유이고, 둘째로는 지금도 이미 심각하게 민영화되고 있는 재생에너지의 공공성을 되찾을 투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은혜 활동가는 “그렇기에 이것은 발전 노동자의 싸움이지만 결코 그들만의 싸움일 수 없다”면서 “우리는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투쟁을 통해 발전 노동자의 일터를 전환하고 소멸하여 가는 지역 공동체도 살리고 기후 위기 시대에 대안의 길을 찾는 희망의 투쟁을 시작할 것이다. 기후정의를 위해 싸워온 모든 민중들이 결코 발전 노동자 홀로 싸우지 않도록 함께 투쟁해 나갈 것”이라 힘 주어 이야기했다.
이백윤 노동당 대표는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는 우리 기후 위기 대처에 필수적인 조치나 화력발전소에서 가장 힘들고 어렵게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계와 삶을 보장하는 후속 대책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면서 “한편으로 화석연료 발전의 대안으로 추진되는 재생에너지 산업이 민간업자들의 이윤 추구 수단에 수단이 되어서 사회의 공적 통제 범위를벗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백윤 대표는 “대안은 없는가 그렇지 않다. 이미 발전 노동자들과 시민사회단체는 수없이 많이 제시했다”면서 “공공재생에너지로 전환하고 발전소 노동자들을 해당 산업에 고용해서 생존권을 보장하는 방법이다. 정부와 거대 야당은 이 요구를 들어야 한다. 또 다시 정치가 민간 발전업자들의 이해관계만을 대변하는 책임 방기의 역할을 수행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기자회견 참여자들은 “발전 노동자들은, 에너지 생산을 통해 우리 사회를 지탱해 왔다는, 자신들의 노동에 대한 자부심 만큼이나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석탄화력발전소의 폐쇄 필요성 역시 인정하였”으나 “정부의 실효적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면서 “발전 노동자들의 일자리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탄소배출 감축을 위해 석탄화력발전소가 폐쇄된다면 과연 그만큼 재생에너지 발전으로 전환되는 것인지, 발전소 폐쇄 이후 해당 지역사회는 어떻게 될 것인지, 정부는 제대로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고 짚었다.
참여자들은 “석탄화력발전은 재생에너지 발전으로 신속히 전환되어야 하며, 이 전환 과정의 비용과 피해가 노동자와 지역사회에 전가되어서는 안된다. 나아가 오히려 전환의 과실을 사적자본, 해외자본에 넘기는 은폐된 민영화, 우회적 민영화여서는 더더욱 안된다”면서 “임박한 석탄화력발전소의 폐쇄는 대기업과 해외자본을 위한 이익 챙겨주기가 아니라 공공 재생에너지 확대로 이어져야 하며, 해당 발전 노동자들의 고용을 정부와 우리 사회가 책임지는 방식이어야 한다. 햇빛과 바람을 상품인 양 팔아 이익을 챙기려는 대기업, 투기자본이 아니라, 당사자인 발전 노동자와 지역사회의 목소리가 석탄화력발전소 폐쇄와 그 대안 마련 과정에 온전히 반영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의로운 전환 2025 공동행동은 첫 공동 실천으로 오는 4월 12일(토) 충남 태안과 경남 창원에서 열리는 ‘정의로운 전환 노동자·시민 대행진’을 적극적으로 조직할 계획이다. 이후에도 공공재생에너지 확대와 발전 노동자 총고용 보장 등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여러 사회적 실천들을 함께 펼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