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은 카멀라 해리스를 새로운 자유의 수호자로 내세우고 있다. 올해 초, 민주당은 ‘자유’라는 용어가 더 많은 유권자의 관심을 끌 것이라 보고 수사적 초점을 ‘민주주의’에서 ‘자유’로 바꾸었다. ‘공포로부터의 자유’는 해리스 캠페인의 주요 공약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정치인들은 '공포로부터의 자유'를 권리장전이 보장하는 기본적 자유보다 한 단계 높은 자유로 종종 묘사한다. 대통령마다 이를 다르게 정의해왔지만, 공통적으로 정부 권력을 강화하는 데 사용되어 왔다. 지난 거의 한 세기 동안 이어진 이런 초당적 전략을 보면, 최근의 자유에 대한 약속을 의심할 이유가 충분하다.
미국 대통령 선거가 오는 11월 5일 치러진다. 출처: 민주당 공식 트위터
‘공포로부터의 자유’는 1941년 1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연설에서 미국 정치에 처음 등장했다. 그는 연두교서에서 언론의 자유와 예배의 자유를 보장한 후, "결핍으로부터의 자유"와 "공포로부터의 자유"를 새롭게 추가했다. 루스벨트가 제시한 자유에는 반대할 권리는 포함되지 않았는데, 그는 정부가 소수의 게으르거나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까지 돌봐야 한다고 했다. 또한 진주만 공습 후 일본계 미국인을 강제 수용소에 보낸 것도 그의 자유 개념에 포함되지 않았다. 3년 뒤, 루스벨트는 보편 징병법을 지지하면서 모든 시민의 강제 노동을 허용하는 방식으로 자유의 정의를 수정했다.
리처드 닉슨은 1968년 공화당 전당대회 수락 연설에서 "미국이 전 세계에서 공포로부터의 자유를 다시 확립하는 데 앞장설 수 있도록 미국에서 공포로부터의 자유를 다시 확립하겠다"고 약속했다. "모든 미국인의 첫 번째 시민권은 가정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며, 이 나라에서 그 권리는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닉슨은 베트남 전쟁을 지속하며 2만 명의 미군이 무의미하게 죽게 만들었고, 국내적으로는 마약단속국(DEA)을 창설하고 미국 최초의 마약 총독을 임명했다. 1976년 상원 보고서에 따르면 FBI는 코인텔프로(COINTELPRO, FBI가 미국 내 정치적 반대 세력을 감시, 방해, 중립화하려던 프로그램)를 지속하면서 "기존 질서에 위협이 된다고 간주되는 시민들에 대한 비밀 전쟁"을 수행했다.
1989년 9월 8일, 조지 H.W. 부시 대통령은 전국 침례교 대회에서 "오늘날 공포로부터의 자유는 마약으로부터의 자유를 뜻한다"고 발표했다. 부시는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마약단속국 요원이 백악관 맞은편 라파예트 공원에서 마약상에게 크랙 코카인을 판매하도록 했다. 며칠 후, 부시는 이 사건을 전국 단속의 명분으로 삼아 "오늘 나는 공포로부터의 자유에 집중하려 한다. 이는 해외에서는 전쟁, 국내에서는 마약과 범죄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미국인들은 과거와 같은 용기와 희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부시가 요구한 희생의 가장 큰 부분은 전통적 자유의 일부를 포기하는 것이었다. 그의 행정부는 시민 재산을 자의적으로 압수할 수 있는 권한을 대폭 확대했고, 국내 마약 단속을 위해 미군의 역할을 강화했다. 1992년 새 마약단속국 청사 헌납식에서 부시는 "폭력, 마약, 공포로부터의 자유를 제공하는 자유 투사들에게 경의를 표한다"며, 마약단속국의 부패와 폭력 문제에도 불구하고 이를 수사적 성과로 포장했다.
1994년 5월 12일, 빌 클린턴 대통령은 "폭력과 공포로부터의 자유는 개인의 자유뿐만 아니라 공동체 의식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클린턴은 공격용 무기와 3,500만 개의 반자동 총기를 금지하려 했으나, 높은 범죄율 속에서 이런 조치는 "말이 도망간 후에 외양간 문을 닫는 격"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클린턴의 첫 임기 중에 공공주택 당국은 총기와 금지된 물품을 압수하기 위해 영장 없이 대규모로 아파트를 수색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총기와 다른 금지 물품들을 압수했다. 위헌적이라는 논란 속에서 연방법원이 이를 중단시켰지만, 시카고의 공공주택 단지를 방문한 클린턴은 "이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자유는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이다. 사람들이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으면 진정한 자유도 누리지 못한다"고 말했다. 클린턴의 시각에서는 공공주택 거주자들이 연방 정부 지원을 받는 주택 경찰의 단속을 두려워할 권리는 없다고 본 셈이었다.
1996년 2월, 클린턴은 재선에서 보수적인 사람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공립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교복을 입도록 강요하는 것을 지지했다. 클린턴은 패션 규제를 정당화하며 "우리 모두는 아이들에게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와 배움의 자유를 주기 위해 함께 일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의무적인 유니폼 착용이 폭력 근절의 열쇠라면 우체국 직원의 살인율은 더 낮아졌을 것이다.
1996년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밥 돌 상원의원은 범죄 단속을 통해 유권자들에게 "공포로부터의 자유"를 약속했다. 돌은 어떻게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를 제공하고자 했을까? 돌은 이를 위해 "우리는 경찰의 손을 풀어야 한다"고 말했지만, 국내 치안을 회복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전 경고 없는 급습이 필요할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조지 W. 부시는 아버지처럼 "공포로부터의 자유"를 약속하면서도 공포심을 조장하는 경고를 번갈아 내세웠다. 2004년 선거를 앞두고 부시 행정부는 근거가 희박하거나 없는 테러 공격 경고를 계속 발표했다. 10월 말, 뉴욕 타임스는 부시 행정부가 "미국인들에게 테러 위협 정보를 제공하는 사업을 정치적으로 각본화 된 색깔 경보로 바꾸었다"며 조롱했다. 그런데 코넬 대학 연구에 따르면 테러 경보가 나올 때마다 대통령 지지율이 약 3% 오르는 효과가 있었다. 연구에서는 미국을 위협하는 테러리스트가 많을수록 부시 대통령이 더 잘하고 있다고 여기는 ‘후광 효과’가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2004년 대선에서 테러리즘을 가장 큰 문제로 본 유권자들은 6대 1로 부시를 지지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부시 선거운동 광고는 선거 몇 주 전에 공개된 것으로, 그림자와 흐릿한 장면이 불길한 음악과 함께 울창한 숲에서 시작되었다. 이 광고는 민주당 후보인 존 케리를 비방한 후 늑대 무리가 공터에 기대어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늑대들이 카메라를 향해 뛰어오르기 시작하자 "그리고 약점은 미국에 해를 끼치려고 기다리는 자들을 끌어들입니다"라는 내레이션과 함께 광고의 마지막에 대통령이 등장하여 발표했다: "저는 조지 W. 부시이며 이 메시지를 승인합니다." 한 진보적 냉소주의자는 이 광고의 메시지가 케리가 승리하면 유권자들이 늑대에게 잡아먹힐 것이라는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콜로라도주 늑대 보호소인 '늑대에게 생명과 우정을 제공한 사람들'의 매니저인 팻 웬드랜드(Pat Wendorland)는 "테러리스트와의 비교는 모욕적이었다. 우리는 수년 동안 사람들에게 빨간 망토가 거짓말이라고 가르치면서 일해 왔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유권자들을 겁에 질리게 하여 미국과 전 세계 대부분을 통치할 수 있는 4년을 더 허락받으려는 부시의 캠페인은 2005년 연두교서에서 "우리는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자유를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줄 것이며,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다"라는 발표로 이어졌다. 이는 이라크 전쟁, 고문 및 기타 사태로 부시의 신뢰도가 무너지기 전, 주류 언론이 부시를 선구자적 이상주의자로 칭송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올해 초 1월 6일 3주년을 맞아 펜실베이니아주 연설에서 "공포로부터의 자유"를 강조했다. 바이든은 11월 대선을 아돌프 히틀러에 대한 국민투표로 바꾸려는 계획으로 도널드 트럼프가 "나치 독일에서 사용한 것과 똑같은 언어를 되풀이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30분 동안 공포를 조장하다가 "공포로부터의 자유"를 약속하며 마무리했다. 이것은 그 유명한 바이든 투스텝(Biden Two-Step)으로, 마음껏 선동한 후 엉뚱한 고양 대사로 마무리하여 미디어가 그를 이상주의자로 다시 세례받게 했다.
바이든은 민주당의 '긴 칼의 밤'(Night of the Long Knives)에서 살아남지 못했고,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당의 대선 주자로 지명되었다. 해리스는 대부분의 정치인보다 훨씬 더 넓은 붓으로 그림을 그렸다. 올여름 열린 준틴 콘서트에서 그는 "편견과 증오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을 가하는 공화당을 비난했다. 그는 정치인들이 편견을 영원히 없애기 위해 심리적 요술 지팡이를 흔들 수 있다고 암시했다. 정치인들이 모든 사람의 생각을 영구적으로 통제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편견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를 가질 수 있을까?
지난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는 영화 ‘타오르는 안장(Blazing Saddles)’에 나오는 대사처럼 "진정한 서부의 횡설수설" 같은 방식으로 자유를 외쳤다. 한 선거운동 영상에서는 "통제로부터의 자유, 극단주의와 공포로부터의 자유"를 약속했다. 그렇다면, 정치인들이 위험하다고 여기는 모든 생각이 억압될 때까지 미국인들은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없다는 뜻인가? 민주당 강령은 "이번 선거에서는 재생산의 자유, 증오로부터의 자유, 공포로부터의 자유, 자신의 운명을 통제할 자유가 걸려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오늘날 정치의 핵심은 개인이 스스로의 운명을 통제하지 못하게 만드는 데 있다. 그럼에도 <타임>지는 "카멀라 해리스가 공화당으로부터 '자유'를 되찾은 방법"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공포로부터의 자유"는 정치적으로 모든 것을 허용하는 백지수표와 같다. 정부가 더 많은 사람들을 두려워하게 만들수록 독재적 정책이 더 합법적으로 보이게 된다. "공포로부터의 자유"를 약속하는 것은 정치인들이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모든 것에 대해 권력을 쥘 수 있게 한다. 두려움을 이유로 정치인에게 더 많은 권한을 주는 것은 소방관에게 잘못된 화재 경보 횟수에 따라 급여를 올려주는 것과 같다.
정치인들이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를 약속하는 것은 자유가 위험과 걱정이 전혀 없는 상태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는 마치 엄마가 어린 자녀에게 모든 것을 보호해주겠다고 약속하는 것과 비슷하다. 미셸 그리샴 뉴멕시코 주지사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우리는 우리를 위로해줄 대통령, 따뜻하게 안아줄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이런 사고방식을 잘 보여줬다. 그렇다면, 우리를 국가의 심리적 보호자로 계속 안아줄 수 있을까?
'공포로부터의 자유'는 정부를 제외한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과도한 정부 권력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사람은 누구나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를 전복하는 죄를 짓게 된다. 아마도 시민이 가진 불가침의 권리가 적을수록 정부는 그를 더 잘 대우할 것이다. 그러나 300여 년 전 존 로크(John Locke)가 "나의 자유를 빼앗는 자가 나의 권력을 쥐고 있을 때 다른 모든 것을 빼앗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이유가 없다"고 경고한 것처럼 자유를 빼앗는 자는 다른 모든 것을 빼앗을 수 있다.
유권자들에게 "헌법으로부터의 자유"를 제공하는 것은 어떨까? "공포로부터의 자유"는 정치 권력에 대한 대중의 잘못된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 안보를 뜻한다.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라는 슬로건을 족쇄에 새긴다고 해서 그것이 더 견디기 쉬워지지는 않는다. 아마도 우리의 지도층은 권리장전의 모토를 "정치적 속임수가 당신을 자유롭게 해줄 것이다"로 바꾸는 편이 더 솔직할 것이다.
[출처] Tyranny via “Freedom From Fear”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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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보바드(James Bovard)는 USA 투데이의 기고가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