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15일, 스리랑카 선거위원회의 데이터에 따르면, ‘국민의 권력’((National People’s Power, NPP)이 외환 채무불이행 사태 이후 처음으로 치러진 총선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출처 : NPP 공식 페이스북
NPP는 61.56%의 국민 지지를 얻으며 의회 225석 중 159석을 차지했다. 이로써 아누라 쿠마라 디사나야케(AKD) 대통령은 의회에서 개헌을 추진할 수 있는 초과 의석을 확보하게 되었다.
NPP는 전국 22개 선거구 중 21개 선거구에서 다수의 국민 지지를 얻었다. 특히 남부 함반토타(Hambantota) 선거구에서는 66.38%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이 지역은 전통적으로 좌파 성향의 싱할라 민족주의 강세 지역으로, 라자팍사 가문의 정치적 요충지였다.
중부 마탈레(Matale) 선거구에서는 66.16%의 지지를 얻었다. 이 지역은 주로 홍차 농장에서 일하는 타밀계 노동자들이 거주하는 곳이다. 북부 자프나(Jaffna) 선거구에서는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타밀 민족주의 정당들의 강세 지역이었음에도 NPP가 24.85%의 득표율로 다수를 차지했다.
이는 NPP의 큰 전환점으로, 대통령 선거 당시 AKD는 북부와 차 농장 지역에서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었다.
이번 선거 결과는 전통적인 정체성 기반 정당들이 정당성을 심각하게 잃고 있으며, 경제적 불만과 기존 정치 엘리트에 대한 반감이 주요 이슈로 떠오르고 있음을 시사한다. 동시에 NPP가 강조한 ‘국가 재생’(a national renaissance)이라는 기치와 풀뿌리 캠페인이 성공을 거두었음을 보여준다.
수십 년간 정치 무대에 머물던 다수의 국회의원들이 이번 선거에서 완전히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스리랑카 선거 정치의 두 주요 축이었던 중도우파 통일국민당(UNP)과 그 분파 사마기 자나 발라웨가야(SJB), 중도좌파 스리랑카 자유당(SLFP)과 그 분파 스리랑카 포두자나 페라무나(SLPP)의 붕괴는 계속되었다.
사지스 프레마다사(Sajith Premadasa)의 SJB는 17.66%의 득표율로 야당이 되었고, 남말 라자팍사(Namal Rajapaksa)의 SLPP는 3.14%의 득표율에 그쳤다. 라닐 위크레메싱헤(Ranil Wickremesinghe)의 신연합체 신민주전선(New Democratic Front)은 4.49%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중요한 점은 유권자 투표율이 9월 대선 당시 79.46%에서 68.93%로 하락했다는 것이다. 이는 2010년 이후 가장 낮은 투표율로, NPP 이외의 정당 지지자들이 실망한 채 투표를 포기하며 현 정권 지지를 강화하는 효과를 가져왔을 가능성이 높다.
아누라 쿠마라 디사나야케(AKD) 스리랑카 대통령. 출처: NPP 공식 홈페이지
과제와 도전
경제 정책의 영역에서, NPP 신정부는 스리랑카의 17번째 IMF 프로그램과 이에 수반되는 채무 재조정 합의라는 시한폭탄 위에 앉아 있다. 이 합의는 AKD의 전임자인 라닐 위크레메싱헤가 체결한 것이다. AKD의 주요 공약 중 하나는 독립적인 채무 지속 가능성 분석을 실시하고 이 합의를 재협상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말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위크레메싱헤가 협상한 채무 재조정 합의에는 “거버넌스 연계 채권(governance-linked bonds)”과 같은 새로운 금융 상품이 포함되어 있다. 이 채권은 금리를 정부가 “반부패” 입법을 얼마나 통과시키는지에 연계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부패”라는 용어는 종종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을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에 충분히 순응하지 못한다고 비판하기 위한 암호어로 사용된다.
또한 합의에는 “거시경제 연계 채권(macro-linked bonds)”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스리랑카에 아무런 이익을 주지 않는다. 이 채권에 따르면, 스리랑카의 GDP 성장률이 높아질수록 민간 채권 보유자(예: 블랙록(BlackRock))들에게 더 높은 이자를 지급해야 한다. 블랙록은 스리랑카 외채의 가장 큰 비중을 보유하고 있다.
일부 분석가들은 스리랑카가 2027년부터 외채 상환을 시작해야 할 때 경제 붕괴가 시작될 것으로 예측한다. 이는 외환보유고를 소진시키고, 국제 채권 시장에서 다시 차입을 강요받게 할 가능성이 높다. NPP가 공약한 체제 변화를 실현하려면 이 부채 악순환을 끝내고, 스리랑카의 산업화를 시작해야 한다.
외교 정책에서는, NPP가 최근 선출된 트럼프 행정부와 마주해야 할 것이다. 이 행정부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인도-태평양 전략에 더욱 집중할 가능성이 크다. 2009년 스리랑카 내전이 끝난 이후, 미국은 경제 및 거버넌스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인권 문제를 지렛대로 삼아 스리랑카에 대한 압박을 강화해 왔다.
지난 10년 동안, 미국은 토지 사유화를 포함한 조항을 담은 밀레니엄 챌린지 콤팩트(Millennium Challenge Compact)와 같은 경제 협정을 추진하려 했다. 또한, 미군과 스리랑카 군대 간 상호운용성을 개선하고 스리랑카를 미국의 중국 신냉전에 끌어들이기 위해, 주둔군 지위 협정(Status of Forces Agreement) 및 물자 획득 및 교환 협정(Acquisition and Cross-Servicing Agreement)과 같은 군사 협정을 제안해왔다.
NPP가 이러한 과제에 도전하려면, 글로벌 사우스에서 부상하는 다극화 운동과 협력하여 부채와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공동 전선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반둥 정신(Bandung Spirit, 1955년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열린 아시아·아프리카 회의에서 제시된 핵심 가치와 이념을 말하는 것으로, 이 회의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29개 신생 독립국들이 제국주의, 식민주의, 그리고 강대국의 지배에 반대하며 연대와 협력을 모색하기 위해 처음으로 모였던 중요한 국제적 사건이다.)을 되살리고, 비동맹운동(Non-Aligned Movement)에서 스리랑카의 주도적 위치를 회복해야 한다. NPP가 이러한 과제에 얼마나 잘 대응할 수 있을지는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내부 모순
향후 4년 동안 결정적인 요인은 NPP 내부에서 세력 간 균형이 어떻게 전개되는지에 달려 있다. NPP 연합의 가장 큰 정당은 야나타 비무크티 페라무나(JVP)로, NPP의 다수 신임 국회의원들은 젊고 경험이 부족하며, 과거 JVP와의 연결고리가 거의 없다. JVP는 본래 마르크스-레닌주의적 간부 중심 정당을 모델로 삼아 형성되었다.
따라서 NPP의 이념적 구성은 매우 다양하다. 중산층 전문직, 학자, 예술가, 정치 활동가 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들 중 일부는 자유주의적이고 세계시민주의적인 성향을 보여준다. 이는 주로 농촌 지역 기반의 JVP 옛 간부들의 급진적이고 애국적인 성향과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기존 JVP와 새로운 NPP 간의 변증법적 갈등을 관리하는 것은 AKD에게 또 다른 과제가 될 것이다.
한편, 이번 선거에서의 충격적인 패배는 중도우파 세력인 통일국민당(UNP)과 사마기 자나 발라웨가야(SJB)로 하여금 재결집하게 만들 수 있다. 이들은 ‘적색 공포(red scare)’를 불러일으키고, 가장 온건한 개혁조차 공산주의적 장악으로 몰아갈 기회를 잡으려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서방 제국주의 세력과의 연계를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마지막으로, 전통적인 민족주의 진영에는 라자팍사 가문, 구 좌파의 여러 분파, 그리고 싱할라 민족주의자들이 포함된다. NPP의 주요 지지 기반이 바로 이 진영의 실망한 유권자들로 이루어진 것이 명백하다. 따라서 NPP는 남부 스리랑카의 대중주의적이고 애국적인 전통을 충족시키라는 강한 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AKD와 NPP가 이러한 내부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지, 그리고 외부 정치적 공격에 어떻게 대응할지는 앞으로의 정치적 안정과 개혁의 성공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출처] Sri Lanka’s National People’s Power Sweeps General Election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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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란 일란페루마(Shiran Illanperuma)는 스리랑카의 정치 경제학자이자 작가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