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지도사를 만나다: 보람상조지회 민광기 지회장

“이건 정말 업이에요”

[필자 주] 한국직업사전에 따르면, 국내에는 12,823개의 직업이 있다. 직업명은 16,891. 2019년 기준이다. 직업 사전을 열어봤다. 바닥천부착원, 피뢰기조립원, 자동오븐조작원처럼 당혹스럽기는 하지만 무슨 일을 하는지 알 것 같은 직업도 있고, 나름걸이원, 뜨임원 같이 하는 일이 도통 예상되지 않는 직업명도 있다.

나름걸이원. 섬유·의복 생산직. 새로운 직물을 짜기 위해 직조기의 경사를 변경하고 정리하는 일. 직조기의 부품을 검사하고 수리하는 직조기보전원의 일을 겸하기도 한다. 사전에 나온 직업 설명이다.

생소한 이름도, 함께 적힌 몇 줄짜리 설명을 보면 납득이 간다. 그래, 피뢰기가 존재하면 그걸 조립하고 수리하는 사람도 필요하지. 오븐을 만든 사람이 있다면, 파는 사람도 있고 그걸 조작하고 정비하는 사람도 당연히 존재해야 한다. 작은 물건 하나를 만드는 것도 사람이 하는 일이고, 망가져도 사람 손이 필요하고, 어떤 물건이나 공간이 그저 있도록하는 일에도 노동이 들어간다. 그러니 이토록 수많은 직업이 있는 건 당연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건 노동이 있기 때문이니까. 정확히는, 노동하는 우리가 있기 때문.

하지만 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어떤 역할을, 어떤 환경에서, 어떤 대우를 받으며 하는지. 그것이 드러나는 순간은 노동조합이 생긴 이후다. 그래서 우리가 잘 모르는 직업에 종사하며, 노동조합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이 코너의 이름은 <여기에도, 있으니까>로 정했다. 이런 마음이랄까. “여기에도 있으니까, 우리도.”


보람상조지회 민광기 지회장. 출처: 서비스일반노조 서울지부 보람상조지회 

회사는 수익 추구를 하려고 하죠. 그런데 그 안에도 의미가 있고, 생각이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보람상조는 오로지 돈이 경영의 목표라 생각하는 거 같아요. 기업이 해야 하는 일에, 그 부를 사회로 환원하는 책임도 있다고 하니, ‘오바하지 말래요. 노동자가 경영에 관여한다고.”

민광기는 차분한 사람이지만, 이 순간은 다소 달떠 있다. 그럴 만도 하지. 방금까지 사측이라 부르는 보람상조 회사 경영자들과 회의 석상에 마주한 참이다. 노동위원회 조정회의 자리였다. 방금 쟁의조정이 결렬되어, 지금부터 그가 속한 보람상조지회(노조)에 쟁의권이 생겼다.(517) 노조 지회장인 그는 조합원들과 순번을 정해 파업에 들어갈 것이라 했다.

보람상조는 이름이 제법 알려진 상조회사이고, 장례지도사라는 직업도 아는 사람은 안다. 물론 장의사라는 말이 더 익숙하긴 하다. “의사는 의사인데 장의사야라는 시답지 않은 말장난을 할 때 나오는 직업. 고인을 염습하는 일이 부각되지만, 장례지도사는 장례 전반을 주관하는 역할을 한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한 건 2002. 그때 어머니상을 치렀는데, 장례식장 분이 어머니를 정말 잘 모셔주셨어요. 그분이 너무 인상 깊어서, 마침 을지대학교에서 장례지도학과가 생긴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라 거기에 들어갔죠. 야간반이었는데, 저는 대학교 들어가자마자 교수님한테 낮엔 장례 일을 하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일을 빨리 배우고 싶었다. 20대 후반, 다소 늦게 들어간 대학이었다.

저는 사회생활 좀 하고 들어가서 괜찮은데, 이게 첫 직업인 동기들에겐 안 맞는 일인 거예요. 356일 언제 상이 날지 모르잖아요. 24시간 대기에요. 지금이야 워라벨이라는 말을 쓰지만, 그땐 그런 말도 없었어요. 그런데도 생활적으로 안 맞는 거예요.”

떠나는 날을 정해두고 가는 사람은 없으므로, 장례식장에는 밤낮이 따로 없다. 주야간 교대근무가 며칠 간격으로 돌아왔다. 밤낮이 바뀐 생활이 익숙해질 즈음 그는 일터를 옮긴다.

“2010년 경이었는데, 상조회사가 급속하게 늘기 시작했어요. 장례식장이 직접 예전에는 열 분을 모시던 일이 다섯 분으로 줄어드는 거죠. 그 자리에 상조회사가 들어오는 거예요. 저도 그래서 이쪽(상조)으로 오게 됐죠.”

장례식장은 장소 임대만이 아니라, 모든 상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장례용품을 판매하는 시설이었다. 그런데 상조회사가 틈을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갈등이 치열했지만, 대세를 거스를 수 없게 됐다. 민광기도 상조회사로 자리를 옮긴다. 그가 온 곳은 재향군인회 소속 상조회사.

보람상조지회 농성장에서. 출처: 희정 제공 

3일 일했으면 하루는 쉬자

상조에 오니까 팀장(장례지도사)들이 순번을 정해 차례로 나가는 건데, 일이 많으니까 바로바로 순서가 되거라고요. 힘들었죠. 대신 수입은 좋았어요.”

쉬는 날이 없을 정도로 장례가 끊기지 않았다. 벌이가 눈을 가려 힘든 줄 모르고 일하다가, 그를 멈춰 세우는 일이 생겼다. 재향군인회상조가 직원이었던 장례지도사들을 외주화하려고 한 것이다. 많은 상조회사가 장례지도사를 직접 고용하고 있지 않다. 개인사업자로 회사와 개별 계약을 맺도록 유도한다. 회사에 얽매여 일하나 법적 신분만 개인사업자인, 특수고용직이다. 이마저 수도권 상조회사 이야기. 장례 빈도가 적은 지방에는 대형 상조회사가 장례의전 업체에 하청을 주는 방식이다.

재향군인회상조도 이런 흐름에 동참하려 했으나, 결과적으로 그 시도는 노동조합을 만드는 데 불을 지폈다. 2014, 재향군인상조회에 노동조합이 생긴다.

그때는 대여섯 명이 이것이라도 해보자 하고 한 건데. 돌아보니 큰일을 했던 거였어요.”

장례업계에서 노동조합이 처음은 아니었다. 낮은 기본급과 판매수당에 의존해야 하는 성과급 체계, 외주화 압박과 불안정한 고용 형태‥ 노조가 필요했다. 그러나 멈추지도 무너지지도 않고 단체협약까지 맺은 노동조합은 재향군인회상조가 처음이었다.

조합원이 된 이들은 역으로 회사에 근무환경을 제시했다.

장례가 보통 3일장이잖아요. 그러면 3일 일하고 하루 쉬자. 하루 쉬는 날만큼은 핸드폰을 꺼두어도 되게 하자. 그렇게 3일장 한 다음 날을 휴일로 정하자.”

단체협약을 맺었다. ‘3일장 다음날 하루 휴일내용이 협약서에 들어가기 전까진, 목욕탕에 갈 때도 휴대전화를 들고 들어갔다고 했다.

아침에 발인까지 하고 와서 집에 와서 잠시 쉬는데, 띠리링 울리면 또 나가요. 깊은 잠도 못 자요. 휴대폰이 울릴까 봐. 정말이에요. 이 일이 서비스업인데다가 잠을 못 자니까 집에선 예민해지고.”

다들 그렇게 일해왔다. 그러니 장례업계 이직률은 높다. 민광기의 일은 근무환경만 따지고 보면 좋은직업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그는 20년째 해오고 있다. 저는 이 일이 너무 좋아요.”이 점에 있어 단호하다.

사실 태어나서 어려서 자란 기억은 다 잊히잖아요. 커서 결혼하고 자식 키우고, 나에게도 다른 가족이 생겼어. 사는 지역도 달라 떨어져 있다가 부모가 나이가 들면 요양원에서 지내고. 그러다 마지막 순간에 (돌아가신) 부모를 만나게 돼요. 그렇다면 장례가 부고 알리고 조문받고 그런 데 정신을 다 쏟는 자리가 아니라, 뭔가 의미 있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의미를 의례를 통해 만드는 것이 장례지도사의 몫이라 믿는 사람이다. 한때는 고인에게 입힐 수의가 구겨진 것이 싫어 다림질을 할 정도라고 했다. 무슨 다른 말이 필요할까. 그 말을 해놓고 쑥스러운지 지금은 그렇게까진 못하죠한다. 그는 지금 자기 일에 쏟을 정성을 야금야금 빼앗기고 있었다. 사건은 2020년에 시작된다. 재향군인회상조가 보람상조로 매각된 것이다.

보람상조지회 농성장에서. 출처: 희정 제공  

치고 빠지기가 성행하고

예수금 3000억 원, 가입자 18만 명을 갖춘 상조회사가 매각되는 과정은 길고 복잡하다. 이 글에선 다루지 않으려 한다. 여기선 고용승계로 보람상조(리더스) 소속이 된 (전 재향군인회상조) 60여 명 직원이 4년도 되지 않아 열 명밖에 남지 않은 상황을 이야기하려 한다.

내근직은 모든 퇴사를 하고, 장례지도사가 열 명 남짓 남았다. 50여 명이 회사를 떠나는 일이 물 흘러가듯 이뤄졌을 리 없다. 재향군인 장례를 담당하는 업무는 바뀐 것이 없는데, 장례 배정 횟수가 반 토막이 났다. 한 달에 4건의 장례가 배정된다. 생활이 가능할 리 없었다. 그러니 지난 3년 동안 많은 이가 회사를 떠났다.

이들에게 배정되지 않은 장례는 보람상조개발 소속 장례지도사들에게 돌아갔다. 보람상조는 보람상조개발, 보람상조리더스, 보람상조라이프 등 7개의 계열사로 이뤄져 있다. 민광기가 속한 보람상조리더스가 보람상조개발과 협력업체라는 명분으로 용역계약을 맺은 것이다. 이들이 재향군인상조회 때부터 거부하고 노동조합까지 만들게 했던, 그 외주화가 이뤄지고 있다.

보람상조개발 소속 장례지도사는 한 달에 20건도 25건도 장례를 모시더라고요.”

한 달은 30일이고, 장례는 보통 3일장이다. 그런데 어떻게 20번 넘게 장례를 주관할 수 있나. 가능한 방법이 하나 있긴 하다.

하루에 두 탕을 뛰는 거군요.”

민광기가 내 말을 정정한다.

개인적으로 장례를 으로 세는 걸 안 좋아해요.”

실수했다 싶다. 그가 소중히 여기는 일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곳에서 부르는 말로 치고 빠지기가 성행하고 있다.

재향군인회 상조에선 한 상가를 맡으면 첫 시작부터 장지까지 딱 3일이에요. 3일 동안 장례지도사는 자리를 이탈하지 않아요. 그런데 여기 와보니까. 하루에 두세 분을 모시는 거예요. 팀장(장례지도사)은 중간에 빠지고, 복지사라고 해서 영업직이 들어와요. 들어와서 수의가 얼마다 하면서 상품을 권하고. 처음 보람상조에 왔을 때 우리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했죠. 그러면 돈 더 주겠다고. 우리는 못 한다고 했어요. 그렇게 하면 사람 망가진다고.”

일하는 사람만 망가지나. 애도의 순간이 망가진다. 그래서 거부했다. 회사가 왜 이들에게 일을 주지 않는지 의문이 풀린다. “회사에서 진짜 싫어하겠어요.” 내 말에 민광기가 크게 웃는다. 기업 입장에선 돈을 물어오지 않는 직원들이다.

이들이 회사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을 수 있는 근거는, 고용과 함께 승계한 단체협약에 있었다.

보람상조는 우리가 단체협약을 지닌 노동조합이라는 걸 곤혹스러워하더라고요. 우리의 생존을 지켜준 건 그 단체협약이에요.”

같은 이유로 보람상조는 (노조)법을 충실하게 따르는 이 직원들을 받아들일 마음이 없어 보인다.


출처: 서비스일반노조 서울지부 보람상조지회 
 

탐욕에 제동을 걸어

저는 탐욕이라 생각해요.”

장례를 몇 탕짜리 행사나 수당 벌이로 만들어버린 기업의 행태를 두고 민광기는 탐욕이라 지칭했다. 그러니 그가 지노위 조정회의에서 보람상조(리더스) 관리자들을 향해 던졌다는 말은 일리가 있다.

회사는 수익 추구를 하려고 하죠. 그런데 그 안에도 의미가 있고, 생각이 있는 거잖아요.”

그 자리에서 관리자들은 경영은 기업 권한이다. 오바하지 마라라고 받아쳤다고 했다. 하지만 기업의 생각과 달리 노동조합은 오바를 하려고 만드는 집단이다. 2023년 상조 시장은 선수금 8조 원, 회원 800만 명을 돌파했다고 했다. 이 거대한 시장은 무엇을 담보로 수익을 내고 있는 걸까? 그 담보에 마지막을 떠나보내는 이들의 슬픔이, 자신의 일을 아끼는 사람의 진심이 담겨있는 건 아닌가. 이를 묻는 기관도, 책임자도 없다. 오직 일하는 사람만이 묻는다. 그렇게 노동조합은 경영 방침이라는 명목으로 폭주하는 탐욕에 제동을 건다.

그러니 한 달에 최소 6건의 장례를 배정해달라는 요구를 논하는 자리가 기업 관리자의 결의를 밝히는 자리로 변모한다. “노동조합에 굴복하지 않겠습니다.” 지노위 조정회의에서 보람상조 관리자는 이 말을 했다고 했다. 결국 조정은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중지 결정이 내려졌다.

그렇게 파업에 들어가고, 장례지도사들은 보람상조 본사 앞에 농성장을 세웠다.

“(보람상조 소속다른 팀장들이 물어와요. 본사 앞에서 이런 거 해도 되냐고. 당연히 괜찮지. 이거 노동권이야. 법에도 보장되어 있는 거야. 쟁의행위를 하고, 다시 들어가서 일할 땐 일하고. 그거 할 수 있다. 열심히 투쟁하면서도 다음 날 다시 식장에 나갈 수 있다. 이게 기본 권리이다. 그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인터뷰를 마치며, 민광기는 자신의 일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이건 정말 업이에요.”

사전적 의미로, ‘은 직업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그는 장례지도사 일을 두고 직업이 아닌 업이라 했다. 그렇게 구별을 두는 이유를 너무도 알 것 같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으로 하는 일. 그런 일이 있다. 민광기 지회장과 조합원들이 자신의 업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길 바란다. 이 일을 좋아하는 노동자로. 짓눌리지 않고.

민광기, 그를 처음 만난 지 보름이 지나 이 글을 쓰는 531일은 보람상조지회 농성 11일차이다.

덧붙이는 말

희정은 기록노동자다. 싸우고 살아가고 견뎌내는 일을 기록한다. 저서로는 <노동자, 쓰러지다>, <일할 자격>, <뒷자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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