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1] 대한민국 청년 정치 실종 사건

윤지연 기자

밥상에 둘러앉아 평화롭게 밥을 먹는 가족들 앞에서 기자는 심호흡을 했다. 진격을 준비하는 용사의 심경으로, 밥상머리에 투척할 포탄을 만지작거렸다. 에라, 모르겠다. “다들 이번 총선에 누구 뽑을 거야?”

정확히 5년 만이었다. 2011년 설날 ‘차례상 난투극 사건’ 이후, 가족 앞에서 정치 이야기를 입에 올린 것은.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필자는 분명히 봤다. 휴대 전화를 만지던 오빠의 손이, 국을 떠먹던 아빠의 숟가락이 멈칫하는 것을. 전쟁의 시작이었다.

“당연히 새누리당이지.” 오빠는 눈을 번득이며 말했다. 평소 자신을 ‘합리적 진보’라고 생각하는 아빠는 “유승민이 대통령감”이라는 뜬금없는 대답을 했다. 필자는 현재 정부 여당이 추진하는 ‘쉬운 해고’를 비롯한 노동 개악 문제를 지적했다. 아빠는 “그건 네가 잘못 알고 있는 거야”라고 면박을 줬다. 뭘 잘못 알고 있는지 얘기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이번에는 더욱 공격적으로 “정의당은 어떻게 생각해?”라고 물어봤다. 결국 오빠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개후잡(후지고 잡스럽다는 뜻. 이런 욕이 있는지 처음 알았다)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눈을 질끈 감고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졌다. “그럼 녹색당은 어떻게 생각하는데?” 예상과 다르게 가족들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쳐 지나갔다. “그건… 환경 오염 관련한 당이냐?”

다음 날, 가족 채팅방에 글을 남겼다. 정치에 관심이 있어 정치에 참여해 보고 싶다는 요지의 글이었다. 메시지를 남기자마자 오빠는 방을 나가 버렸다. 아빠는 “야, 드라마 좀 보자”라고 면박을 줬다. 그런 내가 안쓰러웠는지, 엄마는 “빨리 집에 와”라는 다정스런 문자를 남겼다.

치열한 밥상머리 정치를 경험해 본 사람들은 안다. 그곳에도 분명한 계급이 존재한다는 것을. 대개 상석에는 엄마 아빠가 눈을 벌겋게 뜨고 앉아 있다. 이들은 정치 불가촉천민으로 전락한 청년들을 엄하게 꾸짖는다. “네까짓 게 정치를 뭘 알아?” 사회에서 논쟁깨나 해 봤다는 청년들도 속수무책이다. 유년 시절 읽은 논리야 놀자라는 책을 부모님께 권해 드리고 싶을 만큼 그들의 언어는 비상식, 비논리로 점철될 때가 많다. 하지만 이상하다. 도저히 저들을 이길 수가 없다. 가정 밖이라고 숨통이 트일 리는 만무. 소위 ‘가족적’이라는 일터에 들어가 전혀 가족적이지 않은 어버이들이 주는 눈칫밥을 먹고 살아야 한다. 주변을 둘러볼 짬조차 없이 시간은 빠르게만 흘러간다. 결국 청년들은 천천히 이별을 고한다. 기성세대와의 소통과, 그리고 정치와.

#1

김다혜(가명·28) 씨는 고향에 있는 엄마로부터 ‘반동’이라는 소리를 들은 후 9년째 가족과 정치적인 대화를 피하고 있다. 그는 2007년 대선 때 민영화 문제를 지적하며 “나는 이명박을 뽑지 않을 거야”라는 얘기를 꺼냈다가 엄마로부터 된통 욕을 먹었다. “너는 왜 그렇게 반동 같은 소리만 하고 앉아 있느냐”고. 자신의 정치적 지향을 차근차근 설명했지만, 설득은커녕 후폭풍이 불었다. 그 후로 엄마는 텔레비전에서 집회하는 장면이 나오면 그녀에게 득달같이 전화를 한다. “너도 집회에 나가느냐”는 채근. 그리고 “왜 반대를 위한 반대만을 하느냐”는 비난.

이제 김 씨는 더는 엄마를 설득할 자신이 없다고 했다. “내가 너보다 더 오래 살았어”라며 밑도 끝도 없는 민증 까기 전술을 들이밀 때마다 그는 대화의 의욕을 잃어버린다. “저보다 더 오래 살았다는 것, 그리고 보호자의 지위를 내세워 무조건 당신들의 얘기만 맞다고 하니까 더는 얘기하고 싶지 않아요.” 결국 그는 부모 자식 관계에서 논리와 설득의 대화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들의 대화를 지배하는 건 딱 한 가지. 바로 핏줄이었다. 온화한 성품의 아빠로부터 사랑을 받고 자란 유하인(가명·26) 씨. 그는 평소 유순한 아빠가 정치 얘기만 나오면 ‘꼴보수’ 어버이로 변신하는 모습을 보며 치를 떨곤 한다. 아빠는 매번 “나는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유 씨는 아직도 아빠의 환갑잔치 날을 잊지 못한다. 박정희를 비판하는 야당 후보의 선거 운동 차량에 난입해 운동원과 격렬하게 싸우던 아빠의 모습을. “친한 친구 스무 분과 고깃집에서 밥을 먹고 나오는 길이었어요. 마이크가 있는 곳까지 올라가서 싸우더군요. 쪽팔려서 말릴 수도 없었습니다. 끔찍했어요.”

유 씨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아빠와 정치에 관해 대화해 보려 노력했다. 신문도 읽고 책도 읽으면 아빠를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논리는 매번 ‘꼰대리즘’에 가로막혔다. “듣기 싫어.” “까불지 마.” “너는 애가 배렸어.” 점잖게 시작한 대화는 고성과 비명으로 막을 내리기 일쑤였다. 취업을 앞두고 노동 관련 서적을 읽기 시작한 유 씨. 아빠는 “네가 이런 걸 왜 읽느냐. 네 앞가림이나 잘하라”고 그를 혼냈다. “아빠, 노동 문제는 내가 앞으로 취업하고 살아가는 데 반드시 알아야 하는 거야. 내 앞가림을 하기 위해 읽는 거라고.” 하지만 그의 항변이 받아들여질 리 만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대화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아빠는 언제나 내가 불순한 것에 물들고 있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어요. 아예 정치로부터 눈을 가리고 싶어 해요. 정치와 너는 무관하다, 그러면서.”

#2

귀여운 막둥이로 순종적인 삶을 살아온 김한주(24) 씨. 그는 아빠가 선거 때마다 민주당을 찍는 이상한 버릇이 있다고 했다. 어떤 정당이 집권하든 아빠는 매번 민주당 욕을 했다. 아빠와 주변 지인들은 보수라기보다는 수구적인 성향이 강했다. 김 씨가 붙여 놓은 세월호 추모 리본을 못마땅해했고, 집회 및 시위에 질색했다. 큰 집회가 있는 날이면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너 어디냐?” 지인들에게 얻은 정보라며 김 씨의 대학을 ‘빨갱이 학교’, ‘종북 세력 학교’, ‘이석기 배후 학교’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김 씨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빠에게 정색했던 것도 그즈음이었다. “이석기 재판 내용을 아세요? 누구한테 들으셨는데요?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내용은 알고 계세요?” 재판 내용을 줄줄이 읊는 김 씨에게 아빠가 한 말은 “데모 나가기만 해 봐라”였다.

그날 이후 아빠의 전화는 더욱 잦아졌다. “너 어디냐?” 그러면서도 아빠는 늘 민주당을 찍었다. 아빠의 고향은 전라도였다. “그냥 몸이 알아서 투표하는 것 같아요. 지역주의가 낳은 인습이죠.” 아빠와의 정치적 대화는 포기한 지 오래였다. 아빠를 둘러싼 ‘풍문의 정치’는 막강했다. 김 씨가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밝힐 때마다 아빠는 “너는 왜 세상을 삐뚤게만 보느냐”고 나무라기만 했다. 청년의 정치적 견해는 매번 옹알이 정도로 취급당했다. 왜 아빠는 무조건 애 취급을 하는 걸까? 이유는 특별하지 않았다. 아빠는 막강한 재력을 보유한 사업가였다. “제가 이제까지 만났던 사람 중에 우리 부모님만큼 ‘돈’이라는 확고한 판단 잣대를 가진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경제력이 없는 스물넷 청년의 정치적 견해는 배제당해도 이상할 것 없는 ‘환상’일 뿐이었다.

“야, 가. 네 방 가. 빨리 네 방 가.” 이나정(가명·29) 씨가 엄마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그의 고향은 여당 텃밭이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 씨의 동네에 민주당 후보가 출마한 적이 없다. 그의 부모님도 ‘박정희 신화’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박정희는 가난한 시절에 밥을 먹고 살 수 있게 해 준 은인이었다. 하지만 이 씨의 정치 성향은 부모님과 달랐다. 때때로 정치 쟁점을 둘러싸고 이 씨와 부모님의 의견이 대립했다. 그때마다 이 씨가 부모님께 듣는 말은 “야, 가. 네 방 가”.

물론 매번 이 씨가 방으로 내쫓기는 건 아니다. “네가 아무리 그래 봤자 박근혜 지지자가 더 많다”, “백날 시위해 봤자 바뀌는 건 없다”, “네가 알면 얼마나 아냐”, “네 주변 사람들이 다 그러니 네 사고가 편협한 거다” 등의 이야기도 종종 듣는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가 부모님에게 진지하게 전달되지 않는다고 느낀다. 이유는 대부분 비슷하다. 이 씨 역시 부모님이 자신을 사회적인 완전체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다. “제가 돈을 잘 벌지 못해요. 그러다 보니 부모님에게는 아직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리를 잡지 못한 미완의 존재로 보일 수밖에 없죠.”

#3

고등학교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정재우(30) 씨. 그는 대학 시절까지만 해도 정치로 세상이 바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무리 정치에 관심을 두고 참여를 해 봐도 바뀌는 건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이 정치 혐오자가 돼 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는 사람의 정치적 성향은 논리와 설득으로 바꿀 수 없다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부모님부터가 그랬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꾸준히 부모님과 대화를 시도해 봤지만, ‘야당은 빨갱이’라는 부모님의 이념적 벽을 넘어서기 힘들었다.

힘에 부친 정 씨는 이제 부모와 대화를 포기했다. 정치 얘기뿐 아니라, 이제 대부분의 대화가 단절된 상태. “그냥 가족끼리 얘기를 거의 안 해요. 매일 싸우니까. 부모님의 이야기는 밑도 끝도 없어요. 여당의 이야기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만 하죠.” 자연스레 정치에 대한 냉소가 찾아왔다. “(정치 성향은) 그 사람의 확고한 사고 체계로 자리 잡기 때문에 아무리 토론한다고 해도 타협하지 않아요. 다시 태어난다면 모를까.”

부모와 대화의 장벽을 낮추기 위해서는 꽤 오랜 시간 공을 들여야 한다. 끈기와 도전 정신도 필수적이다. 당연히 성공 사례도 있다. 안예슬(27) 씨도 처음에는 부모님으로부터 “네가 뭘 아느냐”는 등의 자존심 상하는 말을 들었다. 답답한 마음에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고 싸워 보기도 했다. 하지만 머지않아 안 씨는 깨달았다. 정치적 의견을 격렬하게 피력하면 할수록 가족 간에 ‘의’만 상하게 된다는 사실을. 안 씨는 그나마 말이 잘 통했던 오빠를 포섭했다. 밥상 정치에서도 연대 전략은 필수적이었다. “부모님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야기를 들어 보고, 허점들에 대해 차근차근 반박해 나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원래 저와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갖고 있던 오빠를 내 편으로 만들면서, 최근에는 부모님도 제 이야기를 많이 들어 주세요.”

박정희를 사랑하는 아빠를 둔 유하인 씨. 그도 지난한 인정 투쟁을 통해 아빠와의 대화를 정상 궤도에 올려놓았다. 유 씨의 설득이 통한 건지, 아니면 아빠가 참고 있는 건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예전처럼 소리를 지르다 한 명이 뛰쳐나가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아빠도 유 씨의 말에 꽤 귀를 기울이는 눈치다. ‘비법이 뭐냐’는 질문에 유 씨는 ‘공부’라고 답했다. “정말 공부 많이 했어요. 말도 안 되는 논리에 밀리는 게 너무 화가 나서요. 성향별로 신문들을 다 체크해 보면서 논리의 허점을 객관적으로 설명하려 했어요. 결국 중요한 것은 대화하겠다는 의지죠.”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부모라고 변하지 않을 턱이 있나. 욕먹을 각오와 대화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의지만 있다면 강산이 변하는 모습도 지켜볼 만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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