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세상 이야기]

박다솔 기자/사진 – 정운

 

“새 일거리 찾으면 된다고요? 주변 얘기 들어 보면 어딜 가나 싸워야 할 현장입니다.”

신애자 하이텍알씨디코리아노조 분회장은 왜 그렇게 미련하게 싸우냐는 질문을 많이 듣는다. 하지만 ‘공장에서 벌어 먹고사는 사람’이 다른 공장으로 옮긴다고 나아질까. 후퇴만 반복하는 삶이 싫어 싸우다 보니 투쟁 기간만 20년이 돼 간다. 1987년 입사한 신 분회장은 1998년부터 시작된 노조 탄압을 현재까지 온몸으로 겪고 있다. 지난해 12월 10일엔 “공장 이전에 반대한다”며 16미터 철탑 위에 올랐다. 구자현 금속노조 서울남부지부 부지회장(당시 지회장)은 기꺼이 고공 농성 동지가 되기로 했다. 하이텍알씨디코리아 소속은 아니지만 28년 동안 힘들게 유지한 노조가 없어질 위기에 처하자 힘을 보탠 것이다. 지난 18일로 고공 농성 100일이 됐다. 이제 비닐을 뚫는 찬바람은 불지 않지만, 노동자의 요구안은 제자리걸음이다.

쫓고 쫓기는 회사와 노조

하이텍알씨디코리아는 무선 조종기, 모형 항공기 등을 만드는 중소기업이다. 공장이 있는 금천구 가산동에선 무선 조종기를 만든다. 가산동에 있지만 옛 구로공단이 있던 자리라 ‘구로 공장’으로 더 유명하다. 지난해 9월, 회사는 공장의 부지 매각과 공장 이전을 끝냈다고 노조 조합원들에게 통보했다. 노조는 사측이 공장 폐쇄 수순에 들어갔다고 판단했다. 이전한 곳은 40평이 채 안 되는 낡은 아파트형 공장으로, 기존 68평짜리 공장에서 하던 작업이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달부터 노동자 7명은 원래 공장에 천막을 치고 농성에 들어갔다.

회사의 공장 이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5년 사측은 생산 설비를 가산동에 놔둔 채 본사와 연구소를 충북 청주시 오창읍으로 옮겼다. 야반도주하듯 주말에 다 옮겨 버렸다. 당시 노조는 부당 해고에 맞서 복직 투쟁을 전개 중이었다. 오창으로 본사를 옮기는 바람에 노조원들은 오창과 가산동을 오가며 싸웠다.

고공 농성은 2008년에 이어 두 번째다. 2008년에는 회사가 노조 조합원 전원을 정리해고했다. 당시 분회장이었던 김혜진 서울남부지회 부지회장은 콜트콜텍과 공동 대응에 나섰다. 김 부지회장과 이인근 콜텍악기 지회장은 양화대교 북단 송전탑 위에서 한 달을 버텼다. 고공 농성을 시작하고 며칠 후 밥도 굶기 시작했다. 강도 높은 싸움이었다.

공장에 아직 사람이 있습니다

지난 15일 오후, 97일째 고공 농성을 이어 가고 있는 가산동 하이텍알씨디코리아 공장을 찾았다. 외부 출입을 경계하듯 출입문엔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서울남부지회에서 당직자를 정해 고공 농성장 밑을 지켰는데 이날은 마리오아울렛 노동자 임상현 씨 차례였다. 비닐을 걷고 들어간 노조 사무실은 곳곳에서 보내온 물품들로 어지러웠다. 여기서 노조원 2~3명이 돌아가며 잔다. 지난 1월 8일 전기마저 끊겨 발전기를 돌려 생활한다. 휴대폰을 충전하려면 전기장판 콘센트 한 개를 빼야 했다. 히터도 못 돌리는 좁은 공간은 실내라고 하기엔 너무 추웠다. 올 겨울 가장 환영받은 후원 물품은 뗄감이었다.

밤 9시가 되자 연대 투쟁 갔던 사람들이 돌아왔다. 5개 투쟁 사업장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돌아가며 집중 문화제를 열었다. 김혜진 부지회장은 공장 안 식당에서 마른반찬으로 급하게 끼니를 때우고 곧바로 상황 공유 회의에 들어갔다. 이날은 사측과 실무 교섭을 했다. 교섭에 참여했던 노조 관계자는 회사가 앵무새처럼 같은 말만 반복한다고 했다. 노조는 회장이 직접 교섭에 참여하라고 요구했다.

회사는 교섭에서 “구로 공장의 적정 인원은 0명”이라고 주장했다. 공장 폐쇄 의도가 없다면서도 공장 폐쇄의 필요성을 말한 것이다. 노조는 험난한 교섭을 예상했다. 20년 가까이 싸우며 사측과 노조 모두 서로를 읽는 수가 9단이라고 했다. “서로 징하다고 할 거예요.” 이용신 조합원은 투쟁 역사를 날짜까지 줄줄 욀 정도로 독해졌다.

회사가 갑자기 공장을 옮긴 이유가 뭘까? 김혜진 부지회장은 “사측이 노조 말살 적기로 판단한 것 같다”며 “친기업 반노조를 지향하는 정권의 시류를 탔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투쟁 사업장이 모여 하나의 싸움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각개 전투로는 이길 수 없다. 하이텍알씨디코리아를 포함, 강원영동지역노조 동양시멘트지부, 공공운수노조 풀무원분회, 금속노조 아사히비정규직지회 등 9개 사업장이 공동 투쟁을 위해 만나고 있다.

고공 농성 98일 차, 회사가 일방적으로 옮긴 사업장을 찾아갔다. 같은 가산동에 있었고 지하철 한 정거장 떨어진 거리였다. 공장장 한 명이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다. “차 한잔만 달라”며 내부에 들어가 보려 했지만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공장이 운영 중인지 물었다. 공장장은 곤란한 표정으로 “현재 작업 중이고 더는 얘기할 수 없으니 회사에 연락하고 오라”며 문을 닫았다.

노동자에겐 자존심이 있다

하이텍알씨디코리아노조 투쟁 이력은 1998년부터 지금까지 빽빽하다. 임금 교섭 해태, 막말, CCTV로 노조 감시, 직장 폐쇄, 용역 깡패 동원, 신설 법인 설립 후 비조합원 전원 정리해고 등 사측은 다양한 방법으로 노동자를 괴롭혔다. 노조도 단식, 전국 순회 투쟁, 해외 원정 투쟁, 노숙 농성, 문화제, 촛불 집회 등 모든 투쟁 수단을 다 써 봤다.

이들이 절박하게 매달리는 이유가 궁금했다. 좋은 처우도 아니었다. 상여금을 포함한 연봉은 최저임금을 맴돌았다. 20년 일한 노동자나 30년 일한 노동자나 월급은 3만 원도 차이 나지 않는다. 김혜진 부지회장은 “노조 인정 싸움을 하면서 임금 협상은 곁가지로 여겼다. 우리만의 싸움이 되기 싫었다”고 했다. 옆에 있던 김은영 조합원은 ‘헛싸움’을 했다며 헛웃음을 지었다. 김 씨의 남편은 “그 정도 주는 회사도 없을까?” 답답해하지만 “노동자의 자존심과 의리”가 남아 있으니 계속할 거라고 말한다.

지난 3월 14일 저녁, 구로 공장에 <영원한 노동자>란 노래가 퍼졌다. “끝내 내 돌아갈 곳 빛나는 노동의 나라. 끝내 내 돌아갈 곳 눈부신 노동의 나라.” 하이텍알씨디코리아노조 조합원 7명이, 함께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다짐하듯 따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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