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지 않은 자여 먹지도 말라!

반다 / 일상의 사소한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다큐인’, ‘팔레스타인평화연대’에서 활동한다.

 

“‘애는 누가 봐?’

야, 저 질문이 무슨 뜻인지 알아? 집에 가서 애 보라는 뜻이야. 어쩌다 남편이랑 협상에 성공해서 퇴근 후 늦은 밤까지 뒤풀이에 있을 때가 있단 말이야. 그러면 꼭 나이 든 남성 활동가들이 나한테 저렇게 묻더라고. 처음엔 남편이 본다고 대답했는데, 질문을 반복해서 받으면서 알게 됐어. 그게 은근한 비난이 섞였다는 거.”

낯설지 않은 얘기다. 예전엔 아이가 있는 여성들이 밤늦은 뒷풀이 자리에 있을 때 헛소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쉴드를 쳤는데, 한계가 있었다. 사실상 아이를 키우는 여성 활동가들은 너무 피곤했다. 새벽같이 일어나 어린이집에 아이 보낼 준비를 하고, 출근해서 종일 일하고, 다시 늦은 시간 뒤풀이에 머문다는 건 체력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전략을 바꿨다. 2차, 3차 뒤풀이를 동행하는 아이가 있는 남성들에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애는 누가 봐?”

“애는 와이프가 보지. 누나,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다들 분위기도 좋은데 술이나 더 마시자. 내가 억지로 시킨 거 아냐. 선영이가 원래 결혼 전에도 애를 엄청 좋아했거든. 지금도 그래. 나랑 있는 것보다 애랑 있는 걸 더 좋아한다니까. 그리고 선영이는 저녁에 만날 사람도 없어.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다 아줌마라 밤에 뒤풀이 같은 거 안 하고, 걔 친구들도 애 키우느라 바빠서 술 마실 친구도 없어.”

“걱정 마, 우리가 선영 씨랑 놀아 줄게. 모성이 어떻게 발명됐는지, 가족이 얼마나 정치적 영역인지. 무엇보다 한국 맞벌이 부부 가사 노동 시간이 여성은 하루 평균 3시간이 넘는데, 남성은 40분에 불과한 것. 맞벌이, 외벌이 남편의 가사 노동 시간 차이가 없다는 것. 그러니까 아내와 남편의 가사 노동 시간이 다섯 배나 차이 나는 이 현실을 어떻게 할지 수다도 떨면서.”

“안 돼, 선영이 물들이지 마. 진짜 착한 사람이야. 작년에 우리 엄마 입원했을 때, 일주일을 꼬박 병원에서 자면서 간병했어. 요즘 그런 여자가 어딨어. 선영이도 대학 때 운동 잠깐 했지만, 걔가 시골 출신이라 착해서 가능한 거라고 봐. 술 마셨으니까 하는 말이지만, 운동권 여자였음 어림없지. 누나, 나 혼내지 마. 솔직히 이런 생각하는 남자 많아, 말 안 하는 것뿐이지.”

풋! 하고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는다.

“너는 작년에 장모님 암 수술 할 때 가 보지도 않았다면서, 파업 승리하면 가겠다고. 만약에 선영 씨가 직장에서 파업 때문에 긴박한 상황이라고, 너희 어머니가 입원했는데 하루도 안 가 봤으면 어떨 것 같아?”

“선영이는 며느리잖아. 며느리가 시어머니 편찮으신데 그건 좀 그렇잖아. 나야 뭐 이해하겠지만, 우리 엄마는 나이가 있어서 아직 그런 거 이해 못 하시거든. 그리고 사실 아무리 파업이라도 다른 동료들도 있을 텐데 선영이가 그 시간도 못 뺄 정도는 아닐 거고.”

“너, 가정은 여성의 영역이고, 직장은 남성의 영역이라는 사고를 답습하고 있는 거 아냐?”

“누나, 요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어딨어? 마초 같은 남자들도 알아. 외벌이가 얼마나 힘든데.”

“마치 요즘 여성 혐오주의자라고 지목받은 이들이 자신은 여성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여혐주의자라는 낙인이 억울하다고 하는 것만큼 웃겨. 여성들도 임금 노동을 하는 게 필요하다는 건 동의하지만, 그래도 굳이 직장과 가정을 비교하자면 여성에겐 가정이 우선이라는 거잖아.”

“아니야. 여성들도 직장 다녀야지. 그래야 남성에게 의존하지 않게 되고. 여성도 평등해야 한다는 건 나도 동의해. 하지만 여성이 아이를 낳고, 남성보다 돌봄을 잘하고, 섬세하고 그런 건 생물학적인 거잖아. 이런 말 하면 누나 같은 페미니스트들이 싫어한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성별 분업이 합리적인 면이 있고, 여성에게 가정이 좀 더 자연스러운 영역인 건 사실이잖아.”

“아직도 성별 분업을 합리성과 생물학적 특성으로 주장하다니, 신선하다. 너의 그런 사고가 여성의 비정규직화를 만드는 토대가 된다는 생각 안 해 봤어? 여성의 우선적 공간은 가정이고, 임금 노동 공간은 부차적인 것, 부업 같은 것. 아직도 남성 생계 부양 모델로 노동운동을 하니까 이 모양인 거 아닐까?”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시선을 떨군 채 소맥을 마는 후배에게. 현실을 조금 더 던져 본다.

“그러니까 여성 비정규직이 70%라든가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4명 중 1명은 최저임금도 못 받는 현실이 가능한 것 말이야. 세계적으로 성별 임금 격차가 가장 높은 나라가 한국인 거 알아? 남성이 100만 원을 받을 때, 여성은 63만 원을 받아. OECD가 2000년에 처음 성별 임금 격차를 조사한 이래 부동의 1위래! 노동운동 선봉에 서 계신 동지여, 부끄럽지 않소?”

이 녀석, 할 말이 없는지 이야기를 돌린다.

“음…. 그래도 한국은 여자들 삶이 낫잖아요. 누나가 더 잘 알겠지만, 중동 여자들 봐요. 남편이나 아버지가 아내, 딸을 죽인다면서! 명예 살인이라던가. 불쌍해, 나라도 가서 여성운동 해 주고 싶은 마음이라니까.”

후배는 이야기 끝에 술이 취한다며, 슬그머니 테이블 위에 엎드려 눈을 감는다.

후배가 말아 놓은 소맥을 가져와 마시며 생각한다. 그래, 꼭 부시가 그랬다. 2003년 이라크전 당시, 침공 이유 중 하나는 억압과 차별 속 이라크 여성들을 해방하러 간다는 것이었다. 미디어는 이슬람권의 명예 살인을 이야기하며 열악한 여성 인권을 부각시켰다. 물론 미국 여성의 성폭력 피해 심각성 따위는 말하지 않았다.

성차별 문제를 얘기하면 언젠가부터 남자들은 중동을 들먹인다. 명예 살인이라는 단어를 들이밀면서 그래도 한국은 낫다고. 과연 그럴까? 한국에서 2014년 한 해 남편이나 남자 친구로부터 살해당한 여성은 최소 114명이다. 3일에 1명꼴로 살해당한 셈이다. 이 통계는 언론에 보도된 사건만으로 잡은 통계라고 하니, 보도되지 않고 사인이 파악되지 않은 사건까지 합치면 얼마나 될지 아무도 모른다. 한국의 ‘명예 살인’ 현실이다.

한국은 ‘명예 살인’도 넘치고, 여성 혐오, 성별 임금 격차, 성별 가사 노동 불평등도 넘치는 나라다. 그런 것이 가능하도록 만든 근원을 추적해 보면 자연스러운 것, 남자다운 것, 여자다운 것, 성별 분업 같은 것들과 만난다.

“중동에 가서 여성운동을 해 주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면, 너의 집에서 먼저 시작해 보렴. 일터에서 너는 착취당하는 노동자고, 자본가에 맞서 정의와 평등을 이야기하는 사람이지. 그런데 집안에서 너의 가사 노동 시간은? 집이 너에게는 쉼터고 안식처겠지만, 선영 씨에게도 그럴까? 네가 이 시간까지 술을 마시는 동안 선영 씨는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재우고, 남은 가사 일을 하겠지. 그리고 아침엔 너보다 일찍 일어나 아이들을 씻길 테고. 물론 너도 일주일에 하루 이틀은 아이들을 씻기겠지. 한 번씩 설거지도 하고, 청소기도 돌리고, 재활용 쓰레기도 버릴 테고. 여성이 가사 노동을 좋아한다거나 잘한다, 너도 가사 노동을 하고 있다는 얘기 같은 건 하지 말자. 가사 노동이 평등하고 정의롭게 분배되고 있는가를 질문하자.”

 

(집에서 평등하게) 일하지 않은 자여 먹지도 말라!

 

(워커스 6호 2016.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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