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ZA’가 폭로한 가자 민간인 희생과 팔레스타인 고립의 역사

모로코계 프랑스·이스라엘 영화감독 시몬 비통(Simone Bitton)이 2004년에 만든 다큐멘터리 ‘장벽’(Wall)에는 강렬한 장면이 하나 나온다. 이 작품은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상당 부분을 이스라엘과 갈라놓은 총연장 448마일, 즉 721킬로미터에 이르는 장벽과 철조망 건설 과정을 다룬다.

한 구간의 장벽을 완성하기 위해 거대한 콘크리트 판 하나를 천천히 내려놓는다. 판이 조금씩 내려올 때마다 반대편에 펼쳐져 있던 활기차고 구릉진 팔레스타인 마을의 모습도 조금씩 작아진다.

그러다 어느 순간, 바로 코앞에 있던 세계가 감쪽같이 사라진다.

나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가해지는 이동과 생활의 제약을 연구해온 사람으로서, 이 장면을 자주 떠올린다. 이스라엘이 수십 년 동안 장벽과 검문소, 감시 기술을 이용해 팔레스타인인들을 사회의 나머지 부분과 분리해온 현실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2004년 다큐멘터리 ‘장벽’의 한 장면. 요르단강 서안 장벽의 한 구간이 완성되는 순간을 보여준다. Down The Rabbit Hole/YouTube

이런 현실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은 가자지구다. 이스라엘은 1990년대부터 가자지구를 울타리로 둘러쌌고, 무장세력의 공격 위험 등 안보 문제를 이유로 2007년부터 봉쇄를 이어왔다.

이런 장벽과 봉쇄 때문에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인들이 겪는 막대한 고통을 기록하는 일도 어려웠다. 2023년 이후 이어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7만 명이 넘는 팔레스타인인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정부는 국제 언론인들이 독립적으로 가자지구에 들어가는 것을 대체로 허용하지 않고 있으며,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 역시 일반적으로 밖으로 나갈 수 없다.

하지만 2026년 9월 10일 베네치아 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이스라엘 영화감독 유발 아브라함(Yuval Abraham)과 레이첼 소르(Rachel Szor)의 영화 ‘NAZA’는 참혹한 시신이나 폭격으로 폐허가 된 동네의 영상을 보여주지 않고도 가자에서 계속되고 있는 비극에 시선을 집중시켰다.

이 영화는 이스라엘 군과 정보기관 관계자 24명의 익명 증언으로 대부분 구성돼 있다. 이들은 이스라엘이 하마스 관계자들을 표적으로 삼는 과정에서 인공지능을 어떻게 활용해 왔는지 이야기한다. 이스라엘은 공격 과정에서 많은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할 것을 알면서도 이런 방식을 사용했다. 제목인 ‘NAZA’는 히브리어로 ‘부수적 피해’를 뜻하는 ‘네제크 아가비(nezek agavi)’의 약칭에서 따왔다. 이는 2023년 10월 7일 공격 이후 가자에 대한 군사작전에서 이스라엘군이 어느 정도의 민간인 희생을 감수할 수 있는지를 정하는 기준 체계를 가리킨다. 당시 가자에서 넘어온 하마스 주도 무장세력은 이스라엘 남부를 공격해 대부분 민간인이었던 약 1,200명을 살해했고, 약 250명을 인질로 끌고 갔다.

내가 보기에 이 영화가 강렬한 이유 중 하나는 가자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임상적으로, 마치 기계적으로 공격하는 방식에 초점을 맞춘 데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군이 그런 방식으로 작전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수십 년에 걸쳐 팔레스타인인들을 체계적으로 고립시켜 왔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희생자들

이스라엘은 장벽을 세우고 가자를 봉쇄하는 것에 더해, 이스라엘에 들어가거나 그곳에서 일하려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허가증 발급을 제한하거나 거부했고, 공중 감시를 강화했으며, 요르단강 서안의 이스라엘 정착촌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의 분리를 더욱 굳혀왔다.

‘NAZA’의 영상 언어와 내용은 모두 이스라엘의 문화와 정치, 일상생활 속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의 고통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희석되고 가려지는지를 반영하고 드러낸다.

영화는 이스라엘 군인들의 증언 음성과 밤의 텔아비브 풍경을 교차시킨다. 인터뷰에서 군인들은 표적을 어떻게 선정하는지, 공격을 어떻게 계획하는지, 민간인 희생을 어느 정도까지 허용하는지 설명한다.

하지만 희생자들의 모습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서로의 거리는 매우 가까운데도 그렇다. 텔아비브에서 가자지구까지는 해안을 따라 불과 43마일, 약 70킬로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2026년 6월 촬영한 가자시티(Gaza City). 텔아비브에서 불과 43마일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두 지역은 마치 전혀 다른 세계처럼 느껴질 수 있다. 출처: Activestills

영화를 주로 밤과 어둠 속에서 촬영하고, 화면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목소리들로 카메라에 직접 담기지 않은 이야기를 전달한 선택은, 이런 사건들이 이스라엘과 세계에서 얼마나 가려져 있었는지를 더욱 부각한다. 어쩌면 이 때문인지 이스라엘 정부는 이 영화를 깎아내리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정부는 영화에 “현실을 의도적으로 왜곡한 내용”이 들어 있다고 주장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감독들의 시민권을 박탈할 수 있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영화를 둘러싼 관심과 반발이 커지자 제작진은 ‘NAZA’를 2026년 11월부터 누구나 무료로 스트리밍해 볼 수 있도록 공개하겠다고 발표했다.

장벽을 뚫고

‘NAZA’는 AI와 컴퓨터 화면, 그리고 표적이 된 사람들의 물리적 고립이 공격하는 사람과 공격받는 사람 사이에 어떤 심리적 거리를 만들어냈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의 ‘보이지 않음’에 주목한 영화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엘리아 술레이만(Elia Suleiman)이 2002년에 만든 블랙코미디 ‘신의 개입’(Divine Intervention)에서는 팔레스타인 인물들이 이스라엘 군 검문소에 발이 묶이거나, 이를 피해 지나가려는 장면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요아브 샤미르(Yoav Shamir)의 2003년 다큐멘터리 ‘체크포인트’(Checkpoint)는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의 검문소에서 팔레스타인인들과 이스라엘 군인들이 매일 마주치는 모습을 기록한다.

다른 영화들은 규칙을 깨거나 저항하는 행위를 중심에 놓는다. 하니 아부아사드(Hany Abu-Assad)의 2013년 영화 ‘오마르’(Omar)와 아민 나이페(Ameen Nayfeh)의 2020년 영화 ‘200미터’(200 Meters)에는 팔레스타인 인물들이 법을 어기고 몰래 요르단강 서안 경계를 넘어 이스라엘 영토로 들어가는 장면이 나온다. 그 과정에서 이들은 신체적 위험과 법적 처벌의 위험을 모두 감수한다.

2024년 다큐멘터리 ‘노 아더 랜드’(No Other Land)는 요르단강 서안에서 토지 수용과 주택 철거에 맞서 벌어지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 운동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이 작품으로 아브라함과 소르는 공동감독 바셀 아드라(Basel Adra), 함단 발랄(Hamdan Ballal)과 함께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2011년 영화 ‘다섯 대의 부서진 카메라’(5 Broken Cameras)에서는 팔레스타인 농부 에마드 부르나트(Emad Burnat)가 거대한 장벽 건설로 농경지와 필수 자원에 대한 접근이 막혀가는 요르단강 서안의 자기 마을이 벌이는 투쟁을 기록한다. 촬영하던 카메라가 여러 차례 손상되거나 부서져도 부르나트는 저항의 현장을 기록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NAZA’는 2026년 11월부터 무료로 스트리밍할 수 있다.

총을 쏘고 눈물을 흘리기

‘NAZA’는 또 다른 현상도 보여준다. 고립과 분리가 어떻게 공모와 방관을 부추기는지다. 이스라엘 군인들과 그들이 표적으로 삼는 사람들 사이의 물리적 거리는, 현재 벌어지는 일을 그대로 따르거나 외면하기 쉽게 만들 수 있다.

이런 점에서 ‘NAZA’는 이스라엘 영화와 문학에 반복해서 등장해온 한 가지 주제, 즉 이스라엘 군인들이 느끼는 죄책감을 다룬다. 비평가들은 이를 때때로 조롱 섞인 표현으로 ‘총을 쏘고 울기(shooting and crying)’라고 부른다. 이런 작품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의 경험과 관점보다 이스라엘인들의 도덕적 고뇌에 초점을 맞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예를 들어 S. 이즈하르(S. Yizhar)의 1949년 소설 《히르베트 히제》(Khirbet Khizeh)는 1978년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이스라엘을 건국한 1948년 전쟁에 참전한 이스라엘 군인 미하(Micha)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미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마을에서 쫓아내는 부대의 일원이다. 이후 그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양심의 위기를 겪고, 그 기억은 수년 동안 그를 괴롭힌다.

수십 년 뒤인 2008년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바시르와 왈츠를’(Waltz With Bashir)은 감독 아리 폴만(Ari Folman)이 1982년 이스라엘의 베이루트(Beirut) 침공에 참여했던 억압된 기억을 더듬어가는 과정을 따라간다. 그는 자신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레바논 기독교계 팔랑헤 민병대가 사브라와 샤틸라 난민촌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을 학살하는 데 도움을 줬다는 사실과 마주한다.

'바시르와 왈츠를'은 1982년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벌어진 사브라와 샤틸라 학살을 가능하게 하는 데 일조했던 한 이스라엘 군인의 파편화된 기억과 트라우마, 죄책감을 중심에 놓는다.

이른바 ‘총을 쏘고 울기’ 장르는 이스라엘 주류 문화에서 대체로 받아들여졌다. 《히르베트 히제》는 수십 년 동안 이스라엘 학교에서 교재로 가르치기도 했다. 하지만 이스라엘 정부가 ‘NAZA’에 적대적으로 반응한 것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반대 의견을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가 커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팔레스타인 영토 점령의 도덕성에 대해 문화적·정치적으로 고민하려는 태도 자체가 약해지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누구의 목소리가 들리는가

이전 작품들뿐 아니라 ‘NAZA’에서도 이스라엘인의 관점을 중심에 놓았다는 사실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가해진 폭력조차 이스라엘인들이 직접 설명할 때 더 큰 신뢰를 얻는 현실을 보여준다.

최근 가자를 다룬 팔레스타인 영화로는 ‘프롬 그라운드 제로’(From Ground Zero)와 ‘가자의 열세 명’(Thirteen in Gaza) 등이 있다. 이들 작품도 영화계에서 어느 정도 관심과 호평을 받았지만, ‘NAZA’가 공개된 뒤 몇 주 동안 얻은 관심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다.

팔레스타인 마을을 중심으로 한 ‘노 아더 랜드’(No Other Land)조차도 이스라엘 언론인이자 영화감독인 아브라함이 시위 현장을 기록하고 이스라엘 군인들과 맞서는 모습이 등장한다. 만약 이 작품을 팔레스타인인들만이 만들었다면 같은 수준의 찬사를 받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럼에도 팔레스타인인들은 이런 수많은 장벽 속에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세상에 전달할 방법을 끊임없이 찾아왔다. ‘오마르’나 ‘200미터’ 같은 영화뿐 아니라, 소셜미디어에 직접 공유한 영상과 사진을 통해 팔레스타인인들은 대중과 곧바로 연결되고 자신들이 처한 현실에 대한 세계의 인식을 형성해왔다. 특히 현재의 가자 전쟁이 시작된 이후 이런 방식은 더욱 두드러졌다.

이들은 오랫동안 자신의 이동을 가로막아온 물리적 장벽뿐 아니라, 자신들의 경험을 보이지 않게 만들어온 문화적 장벽도 우회할 수 있게 됐다.

NBC 뉴스는 2026년 9월 26일 뉴욕영화제에서 열리는 ‘NAZA’의 상영을 앞두고 이 작품을 소개했다.

[출처] In ‘NAZA,’ Israeli whistleblowers’ revelations about civilian deaths in Gaza reflect a longer history of Palestinian isolation

[번역] 이꽃맘

덧붙이는 말

드루 폴(Drew Paul)은 테네시대학교 녹스빌 캠퍼스 세계언어문화학과의 아랍어 교수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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