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9월 노동자들의 총파업에서 시작해 10월 대구를 거쳐 전국적인 민중항쟁으로 번진 9월총파업·10월항쟁이 올해 80주년을 맞았다. 민주노총은 오는 3일 대구에서 전국노동자·민중대회를 열고 당시 노동자와 민중이 내걸었던 생존권과 노동권의 요구를 현재의 노동기본권과 사회대개혁 투쟁으로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1946년 철도노동자들의 '쌀 확보 투쟁'. 출처: 철도노조 아카이브
9월총파업과 10월항쟁은 해방 직후 노동자들의 경제적 요구가 당시 사회·정치적 모순에 대한 대규모 저항으로 확장된 사건이었다. 1946년 9월 23일 부산 철도노동자들의 파업을 시작으로 총파업이 확산됐고, 대구에서는 이튿날 철도노동자들이 파업에 들어갔다. 이후 우편·전화·섬유·금속·출판·교통·화학 등으로 파업이 번지면서 9월 말 대구에서만 약 4천 명의 노동자가 참여했다.
총파업의 배경에는 심각한 식량난과 물가 상승, 실업과 저임금뿐 아니라 미군정의 노동운동과 좌익세력 탄압 등 해방 정국의 정치적 갈등이 겹쳐 있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미소공동위원회 결렬과 미군정의 좌익세력 진압 속에서 조선공산당이 기존 협조 노선에서 이른바 ‘신전술’로 전환했고, 이 흐름이 9월총파업과 10월항쟁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당시 항쟁은 생존권을 둘러싼 아래로부터의 불만과 노동운동, 해방 이후 새로운 국가와 사회질서를 둘러싼 정치적 충돌이 중첩된 사건으로 볼 수 있다.
대구에서 총파업이 민중항쟁으로 바뀐 결정적인 계기는 경찰의 발포였다. 10월 1일 대구역 인근에서 경찰이 노동자와 시민을 향해 발포해 노동자들이 숨졌고, 다음 날 학생과 시민들이 희생자의 시신을 운구하며 거리로 나왔다. 노동자들의 파업에 학생과 시민, 농민이 합류하면서 저항은 대구를 넘어 다른 지역으로 퍼졌다. 항쟁은 전국 73개 시·군·구까지 확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9월총파업과 10월항쟁을 따로 떼어 보는 것보다 노동자의 생존권 투쟁이 사회적 저항으로 확장되는 과정으로 봐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9월총파업에서 노동자들이 요구한 것은 식량 배급과 임금 인상, 해고 반대 등 당장의 노동조건과 생존의 문제였다. 그러나 경찰의 발포와 탄압을 거치며 노동자의 요구는 도시 빈민과 학생, 농민 등의 불만과 결합했고 항쟁의 범위도 확대됐다. 민주노총 역시 80주년 사업에서 당시 노동자들이 식량과 실업 문제를 노동운동 바깥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들의 문제로 제기했다는 점을 현재적 의미로 강조했다.
또 하나의 쟁점은 10월항쟁을 어떻게 기억하고 규정할 것인가다. 오랫동안 사용돼 온 ‘대구 10월 폭동’이라는 명칭은 사건을 특정 지역의 폭력적 소요로 바라보는 시각을 담고 있다. 반면 80주년을 맞아 민주노총과 10월항쟁시민연대 등은 노동자 총파업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확산된 저항이라는 점을 들어 ‘10월항쟁’으로 역사적 성격을 다시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10월항쟁시민연대도 9월 노동자 총파업에서 시작된 움직임이 10월 대구에서 노동자·농민·학생·시민이 참여하는 저항으로 확대됐다고 설명하고 있다.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 역시 80년이 지난 현재까지 남은 문제다. 민주노총은 진실화해위원회 1기 조사에서 10월항쟁과 관련 민간인 희생이 확인됐으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위령·추모사업 지원, 역사기록 수정·등재와 평화·인권교육 강화 등이 권고됐지만 진실규명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번 80주년 사업에서도 특별법 제정과 추가 진상규명이 주요 요구로 제시됐다.
민주노총은 80주년을 단순한 역사 기념행사를 넘어 “9월총파업·10월항쟁을 노동자와 민중의 ‘생존권, 노동권, 자주와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으로 규정하고, 80년 전의 요구를 현재 노동 현실과 연결해 하반기 총력투쟁과 사회대개혁을 위한 공동 행동으로 이어 가겠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2일 조합원 250명이 참여하는 대구 역사기행을 진행하고, 3일 오후 1시 10월항쟁위령탑을 합동 참배한다. 이어 오후 3시 대구 공평네거리 인근에서 ‘제80주년 9월총파업·10월항쟁 정신계승 전국노동자·민중대회’를 연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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