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의 사각지대

감금과 비감금 사이에서

감금과 비감금 사이에서

새벽이생추어리에는 돼지 ‘잔디’가 산다. 그는 거의 매일 울타리 밖을 나가서 많게는 몇 시간씩 산길을 활보하며 들풀을 뜯고, 종종 이웃의 밭에 들어가 주변에 올라온 무성한 ‘잡초’를 맛본다. 최근 여느 때처럼 자신의 일상을 누비던 잔디는 이웃의 밭에 뿌려진 유박비료를 먹게 되었다. 그는 며칠을 앓았고, 눈에 띄게 살이 빠졌다. 그러나 그는 다시 산책을 나섰다. 당시 잔디의 소식을 듣고 많은 이들이 염려했다. ‘보듬이(새벽이생추어리의 돌봄 활동가)’로 활동했던 어떤 이는 잔디가 이제 산책을 못 하겠다는 걱정의 말을 건넸고 나는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보호-감금 딜레마

보호-감금 딜레마

새벽은 스도쿠판처럼 스툴이 빽빽이 쳐 있는 종돈장에서 구조된 돼지다. 여느 돼지들처럼 그대로 그곳에 있었다면 분명 새벽은 이미 이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거다. 그는 그의 몸을 식량 그 이상 그 이하로 보지도 않는 감금시설에서 벗어나 ‘생추어리’라고 불리는 훨씬 더 넓은 곳으로 왔다. 하지만 이곳도 울타리가 쳐져 있긴 마찬가지였다. 한 번 들어온 이상 새벽은 다시 나갈 수가 없다.

동물해방의 길, 정의로운 전환

동물해방의 길, 정의로운 전환

동물해방의 길에서, 우리는 어떻게 정의로운 전환을 실현할 수 있을까? ‘안전한’ 울타리 안으로 동물을 가둘 것이 아니라, 울타리 밖에서 ‘섞여서’ 살아갈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장애인, 퀴어, 이주민이 사회 곳곳에서 차별 없이 살아가기 위한 권리는 비인간에도 확장되어야 한다. 인간에게 해가 된다는 이유로 거리에서, 산에서, 바다에서, 각자의 집에서 끌려 나와 총으로, 전기로, 약물로, 분쇄기로 죽임당하는 세상이라면 우리가 광장에서 외치는 슬로건들은 판타지로만 남을 것이다.

애도의 연말

애도의 연말

노동자가 죽었을 때 임원진 인명 피해 없음, 피해액 얼마로 표현된다면 어떨까? 그것이 허용되는 세상을 두고 가려 애쓴다. 하지만 경제적 손익으로만 해석하는 관점은 ‘경제 동물’에게는 보편적으로 용인된다. 진짜 국가 위기는 무엇인가? 닭 500만 명을 렌더링할 수 있게, ‘대량 살상’이 국가 정책이라는 것이 위기다. 산업을 수호하기 위한 죽음이 허용되며 유효한 정책으로 작동한다는 것, 그것 자체가 국가 위기다. 이런 곳에서 누가 돈보다 중요하게 여겨질 수 있을까.

동물 돌봄이라는 커먼즈

동물 돌봄이라는 커먼즈

공동의 동물 돌봄은 커먼즈의 여러 감각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우리 정서에는 두레, 품앗이, 계가 있고, 이 위에서 동물 돌봄은 지속 가능하다. 두 명의 돼지, 새벽과 잔디가 살고 있는 ‘새벽이생추어리’의 돌봄이 4년 넘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단체를 후원하는 매생이(후원 활동가), 보듬이(돌봄 활동가), 새생이(운영 활동가), 그리고 단체와 연대한 이들의 존재가 있기에 가능하다. 만약, 개인 혼자 돌봄 노동과 돌봄 비용을 모두 떠안는 방식이었다면, 새벽과 잔디는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동물을 돌보는 일

동물을 돌보는 일

더 많은 인간동물들이 깊은 얽힘으로 묶여, 돌봄의 과정에서 후원을 받거나 음식을 구할 때 비(덜)착취적인 방법이 무엇일지 함께 고민하길 바란다. 또한 여성의 돌봄 노동이 다시 ‘자연화’되어 착취되지 않도록 경계하고 싶다. 동물 돌봄이 마냥 ‘선함’이 아니라 전문성이 인정되는 노동으로 인정받고, 그것이 화폐의 형태이든 아니든 돌보는 자들이 정당한 명예와 대가를 받으면서 노동을 하게 되길 바란다.

기후위기 시대, 박멸의 리스트

기후위기 시대, 박멸의 리스트

올여름은 역시나 뜨거웠다. 선풍기만으로 버티는 집은 밤이면 더워서 잠들 수 없었고, 아이스팩을 수건으로 감싼 채 껴안고 자다 깨길 반복했다. 수면 부족이 이어져 결국 약을 먹고 잠들어야 했다. 내가 ‘보통’의 방법으로는 잠들 수 없었던 올여름, 바다에서도 높아진 수온으로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동물, 기후정의, 시작!

동물, 기후정의, 시작!

9월 7일, 곧 있을 기후정의행진에 처음으로 비인간동물에 대한 요구가 포함되었다. ‘비인간 동물을 상품화하는 공장식 축산을 정의롭게 전환하고, 동물 착취 시스템을 철폐하라’. 동물이 기후위기의 과정과 결과에서 모두 피해당사자라는 것을 인정하고, 타 종과의 공존보다 기업의 개발을 선택하는 체제에 저항하며, 피해에 대해서 돌봄으로 책임을 지자.

고립된 지옥, 축산 단지

고립된 지옥, 축산 단지

인간이 동물을 학살하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비교되는 상황은 아우슈비츠다. 많은 동물 해방 운동가들은 동물을 물건으로 치부하는 사회를 향해 인간이 그와 비슷한 상황에 처했던 역사를 예로 들어왔다. 충남도가 모델 삼고 있는 축산단지는 중국 허베이성의 26층 규모 아파트형 축사다. 더 밀집된 착취 시설에 ‘영감’을 얻은 사업. 우리 사회는 새로운 지옥을 상상하며 나아가고 있다.

‘스마트’라는 이름이 저지르는 폭력

‘스마트’라는 이름이 저지르는 폭력

스마트 축산이란 외주의 심화다. 국민에서 비국민에게 외주되었던 것을 이제 기계에, 기술에 외주를 주려고 한다. 기계를 사용해 아이를 더 많이 낳게 하고, 젖을 더 많이 빼앗고, 살을 더 빨리 찌운다. 우리는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사회구조를 이해하고 비판하는 사람들로서 스마트 축산을 멈춰야 한다. 자꾸 동물을 지우려는 착취 구조 옆에서 몇 번이고 이들이 번듯하게 살아있고, 살 권리가 있다고 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