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 kind of music

어느새부터 이재명은 안 멋져

어느새부터 이재명은 안 멋져

지지율 하락의 원인은 간단하다. ‘어느새부터 이재명은 안 멋져’서 생긴 현상이다. 애먼 직업 떠버리의 입막음에 골몰하기보다 무엇이 이재명을 ‘안 멋져’ 보이게 만들었는지 깊게 ‘숙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몽규, 홍명보를 비롯하여 ‘중년의 위기’를 겪고 있는 이들에게

정몽규, 홍명보를 비롯하여 ‘중년의 위기’를 겪고 있는 이들에게

지금의 월드컵 참사는 단지 감독의 전술적 실패와 협회의 무능, 혹은 불운으로 벌어진 일이 아니다. 두 명의 못난 중년 남성들의 기괴하고 무리한 ‘자기 증명’이 불러일으킨 파국에 가깝다. 이 못난 중년 남성들의 무리한 ‘자기 증명’ 욕구 이면에는 전형적인 ‘중년의 위기(midlife crisis)’의 징후가 서려 있다.

정용진, 리치 이기와 패륜

정용진, 리치 이기와 패륜

래퍼 리치 이기의 사과문과 나이만 많고 철딱서니 없는 재벌 3세 정용진의 기자회견을 보면, 이들이 정치적 의견 표명과 패륜을 구분 짓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신을 우파라고 칭하는 이들에게서 자주 볼 수 있는 태도인데(분명 안 그런 사람들도 있다), 이들이 정치적 주장을 명분으로 끊임없이 패륜을 입에 올리는 이유는 아마도 그걸 구분해 낼 지적 능력이 부족하거나, 아니면 좀처럼 ‘돼먹지 못한’ 인간이라 패륜임을 알면서도 정치적 의견일 뿐이라 우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르시시스트의 노예 신전

나르시시스트의 노예 신전

나르시시스트의 노예 신전. 내가 싫어하는 단어 3개로 만들어 본 런던 베이글 뮤지엄(런베뮤)의 다른 이름이다.박물관은 어떠한 ‘가치’를 보존하며 그 가치에 누적된 시간을 전시한다. 런베뮤에 딱히 추구하는 가치 같은 게 있을 리 없고, 당연히 누적된 시간도 없다. 그날그날 하루에도 몇 번씩 구워지고 팔려나가는 베이글은 전시의 대상이 아니다.

나는 극우 뮤지션의 음악을 좋아한다

나는 극우 뮤지션의 음악을 좋아한다

예술은 순간을 기록할 뿐이고 삶은 계속 이어진다. 작품은 변하지 않고 남아있지만, 예술가와 우리는 이어지는 삶 속에서 얼마든지 변한다. 어떤 계기에 의해 종교에 빠질 수도 있고, 사상적으로도 바뀔 수 있다. 내가 나의 첫 번째 우상의 노래를 사랑한 건 나도 모르게 사고처럼 벌어진 일이었고, 그가 이후에 종교에 빠지고 이명박을 지지하는 과정은 내가 어찌 손 쓸 수 없는 그의 삶 속에서 이루어졌다. 생각해 보면 그의 현재가 내 과거의 감동을 해칠 이유가 전혀 없다.

AI 시대와 나의 미래

AI 시대와 나의 미래

손과 발이 없는 AI는 할 수 없는 허드렛일이 음악에선 어떤 것일까를 고민해 보면 답은 하나밖에 없다. 직접 목으로 부르고, 손으로 연주하는 것, 몸으로 때우는 라이브다. 여기에 예술가라는 자각을 위해 약간의 의미 부여를 해보자면, 발터 벤야민이 말한 ‘아우라(Aura)’라는 개념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아우라의 정의를 음악에 적용해 본다면, 음악의 원본은 무한정 복제가 가능한 음원, 판매를 위해 만들어지는 CD나 LP와 같은 상품이 아닌, 삶이라는 서사 안에서 창작 과정에 관여하고, 무대에서 직접 노래하고 연주하고 있을 때의 아티스트 그 자체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