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부터 부산울산경남 노동역사관 전시기획팀에 함께하고 있다. 최근 노동자 투쟁의 연표를 정리하면서도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다. 날짜와 사건, 파업과 농성, 구속과 해고의 기록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연도와 숫자들이 더이상 숫자로 보이지 않는다. 그 안에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견뎌야 했던 시간이 보인다.
이 개미굴은 무엇보다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은밀함을 가지고 있다. 겉보기에는 노동자 보호를 위해 가장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판단을 내리겠다는 그럴싸한 명분과 공정의 탈을 쓰고 있지만, 그 내부로 한 걸음만 들어가면 일반인은 도저히 구조를 알 수 없는 수많은 하부 위원회와 소위원회가 마치 지하 동굴처럼 복잡하게 끝없이 뻗어 있다.
내가 매일 마주하는 이들은 세상의 경계 밖, 사회적 시스템의 보호에서 배제되어 있는 이들이다. 현장에서 일어난 명백한 사고도 산재로 인정받지 못한 노동자, 하루아침에 일터를 잃고 쫓겨난 이주노동자, 불법 촬영의 숨은 폭력에 영혼이 난도질당해도 사측으로부터 아무런 보호조차 받지 못한 노동자다.
역사적인 사건이나 사회적 참사의 진실을 밝히는 과정은 본래 은폐하려는 권력에 맞서 목소리를 되찾는 처절한 ‘사회적 투쟁’의 과정이었다. 노동자 역사 속에서 우리가 목도했듯, 산재나 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자본과 국가가 덮으려는 치부를 들춰내는 힘은 언제나 당사자들의 끈질긴 저항과 연대에서 나왔다.
이 문구는 공포를 통해 행동을 통제하려는 방식이다. 죽음을 직접적으로 언급함으로써 경각심을 주려는 의도는 이해할 수 있지만, 공포가 효과적인 교육 수단인 것은 아니다. 반복적으로 노출될수록 사람들은 무뎌진다. 안전은 공포가 아니라 이해와 실천을 통해 지켜져야 한다. 더 큰 문제는 이 문구가 사고의 책임을 개인에게만 돌리는 인상을 준다는 점이다. “떨어지면 죽는다”는 말은 곧 “조심하지 않으면 네가 죽는다”로 읽히기 쉽다.
250만 명의 이주민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는 곳이 대한민국입니다. 1980년대 후반 시작된 이주노동의 역사는 40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2024년 기준 약 130만 명의 이주노동자들이 한국 땅에서 노동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대한민국에는 각종 이주(노동) 비자들이 우후죽순처럼 증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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