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대안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36호]나쁜 자본주의는 가고, 좋은 자본주의여 오라?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36호]나쁜 자본주의는 가고, 좋은 자본주의여 오라?

미국발 세계금융위기가 발발하자 그 원인과 대안에 관한 논평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중 메이저언론과 소위 진보인사들에게서 자주 거론되는 말이 ‘미국식 금융자본주의의 실패’이다. 금융위기가 발발한 주간인 9월19일자 경향신문 1면에는 “미국식 금융자본주의의 실패”라는 활자가 크게 찍혔고, “미국발 금융위기가 대형 투자은행들의 무절제한 수익극대화에서 비롯”됐고, 이어서 관련기사에서는 “근본적인 대책은 시장만능주의에서 벗어나 시장에 적절한 규제를 하는 것이다”라고 썼다. 그리고 한겨레는 9월23일, 25일, 27일 세 차례에 걸친 특집에서 “자본의 배분을 담당하는 금융까지 시장원리에 내맡기면서 과도한 금융자본의 팽창을 가져왔”고, 이것이 “금융위기의 씨앗을 잉태했다”며, “고삐 풀린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통제를 주장했다. 한편 이러한 종류의 논평들에서 자주 인용되는 경제학자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스티글리츠인데, 그는 “자유시장과 금융자유화의 이데올로기는 끝났다”며, 금융시장 “규제시스템의 전면적인 재설계”를 제안하고 있다. ‘미국식 금융자본주의의 실패’란 한 마디로, 현 세계금융위기는 미국이 주도한 금융의 자유화 및 세계화에 힘입은, 고삐 풀린 금융의 과대성장과 폭주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금융이 주도하는 ‘나쁜’ 자본주의 대신, 적절하게 통제됨으로써 금융이 실물경제의 보조역할에 충실하게 되는 ‘좋은’ 자본주의가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자본주의 자체의 한계를 미국식 금융모델의 한계로 호도하여 현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36호]신자유주의의 위기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위기이다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36호]신자유주의의 위기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위기이다

케인즈주의는 신자유주의로 대체되었나? 심각한 경제상황에 직면하여 각종 언론들과 학자들은 미국중심의 금융질서, 신자유주의가 이제 몰락한 것이라는 주장을 마구 쏟아내고 있으며, ‘국가’의 복귀를 요청하고 있다. 10년 전 IMF 위기를 맞으며 신자유주의가 전면화되던 시절과 비교하면 천지차이의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시장 중심의 신자유주의가 위기이기 때문에 국가 중심의 케인즈주의가 복귀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들은 현재 위기에 대한 올바른 해석과 대안이 될 수 없다. 신자유주의 시대는 여전히 케인즈주의의 시대였다 일반적으로 신자유주의와 케인즈주의를 대립적인 것으로, 자본주의의 서로 다른 단계로 파악하지만, 실제로 신자유주의와 케인즈주의는 대립적인 관계가 아니었다. 케인즈주의는 1970년대 말 신자유주의의 핵심이라는 통화주의에 밀려난 것처럼 생각되지만 실상 21세기 들어서까지 세계자본주의를 지탱하는 방법은 케인즈주의의 발상이었다. 1929년 대공황을 겪으면서 케인즈가 주장한 것은 과잉생산공황 시 발생하는 수요와 공급의 차이를 인위적인 수요확대로 저지한다는 발상이다. 케인즈는 이 인위적 수요확대의 방식으로 재정, 금융정책을 제안하였다. 1970년대 심화된 위기로 케인즈주의의 한계가 드러나자, 통화주의자들은 금리인상 등을 통한 긴축정책을 주장하였다. 실제로 통화주의자의 정책은 1979년 당시 연준 의장인 폴 볼커에 의해서 실행되었다. 그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