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의식

민중언론 리부트, 이유 있는 무한도전

민중언론 리부트, 이유 있는 무한도전

언론의 순기능은 사회현상을 진단하고 객관화하는 도구다. 현실 정치 중계 보도나 이슈를 담아내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공간에 돋보기를 대는 역할을 해왔다. 여기서 한 발 더 나가 ‘민중언론’은 계급적 취재와 해석을 통해 계급적 관점을 구현해야 할 것이다.

계급의식이 정치적 선호도에 미치는 영향

계급의식이 정치적 선호도에 미치는 영향

정치적 선호도는 흔히 중산층이라는 획일적인 렌즈를 통해 논의된다. 그러나 경험적 데이터에 따르면 계급은 투표 패턴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며, 계급의식이 높아질수록 기존 정당에 대한 불만이 커진다.

[사회심리학 강좌] 계급의식과 파시즘의 계급무의식의 대립구조 2/2 – 오세철

[사회심리학 강좌] 계급의식과 파시즘의 계급무의식의 대립구조 2/2 – 오세철

[레프트119 소개글] 『레프트119 준비위 결성을 위한 모임』(레프트119)은 정파·소속·입장의 차이를 넘어 변혁활동가들의 정신건강에 대한 문제점을 함께 깊이 고민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주체를 건설 중에 있다. 레프트119는 그간 활동가들의 경제적·심리적 요인에 기인한 트라우마 등 질환과 이와 유관한 죽음이 기본적으로는 자본주의의 억압과 착취에 기인한 것이지만, 특히 심리적인 측면에서는 파시즘의 자장(磁場) 아래 놓인 활동가 자신의 의식과 무의식 작용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레프트119는 파시즘 연구에 탁월한 업적을 이룬 빌헬름 라이히 자료를 통해 이에 대한 해법에 접근해보고자 한다. 레프트119 운영위원 오세철 선생은 좌파진영에서는 매우 드물게 사회심리학을 공부한 특별한 이력의 사회학자이며 독보적인 빌헬름 라이히 연구가로, 지금도 변혁운동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혁명가이다. 다음은 오세철 선생의 글 『계급의식과 파시즘의 계급무의식의 대립구조』중 2/2회분이다. [사회심리학 강좌] 계급의식과 파시즘의 계급무의식의 대립구조 오세철 2. 파시즘에 대한 라이히의 문제의식 1932년 ≪파시즘의 대중심리≫가 출간된 후 10년만인 1942년 8월, 그는 중보개정 3판의 머리글에서 관념철학 흐름, 즉 인간의 구조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주장의 수용을 거부하고 사회적 조건과 변동이 인간의 원천인 생물학적 요구를 변화시켜

[사회심리학 강좌] 계급의식과 파시즘의 계급무의식의 대립구조 1/2 – 오세철

[사회심리학 강좌] 계급의식과 파시즘의 계급무의식의 대립구조 1/2 – 오세철

[레프트119 소개글] 『레프트119 준비위 결성을 위한 모임』(레프트119)은 정파·소속·입장의 차이를 넘어 변혁활동가들의 정신건강에 대한 문제점을 함께 깊이 고민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주체를 건설 중에 있다. 레프트119는 그간 활동가들의 경제적·심리적 요인에 기인한 트라우마 등 질환과 이와 유관한 죽음이 기본적으로는 자본주의의 억압과 착취에 기인한 것이지만, 특히 심리적인 측면에서는 파시즘의 자장(磁場) 아래 놓인 활동가 자신의 의식과 무의식 작용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레프트119는 파시즘 연구에 탁월한 업적을 이룬 빌헬름 라이히 자료를 통해 이에 대한 해법에 접근해보고자 한다. 레프트119 운영위원 오세철 선생은 좌파진영에서는 매우 드물게 사회심리학을 공부한 특별한 이력의 사회학자이며 독보적인 빌헬름 라이히 연구가로, 지금도 변혁운동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혁명가이다. 다음은 오세철 선생의 글 『계급의식과 파시즘의 계급무의식의 대립구조』중 1/2회분이다. [사회심리학 강좌] 계급의식과 파시즘의 계급무의식의 대립구조 오세철 나는 ‘계급의식, 계급무의식 그리고 혁명’ 이라는 이론적 도입 글에서 계급의식에 대한 긍정적 확신을 통한 혁명의 필연성을 일방적으로 주장하거나 자본주의의 가치법칙에 종속되어 그 형식을 뛰어넘는 혁명의 불가능성을 말하는 비관론적 접근 모두의 한계를 지적하였다. 그리고 맑스가 ≪요강≫에서 정치경제와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48호]바보야, 문제는 의식성이야!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48호]바보야, 문제는 의식성이야!

자본주의가 위기?? 작년 9월, 미국계 투자은행들의 파산이 속출했고, 자본주의라 불리는 모든 것들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그러나 불과 1년여 만에 자본주의경제는 다시 회생을 준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증시는 뜨겁고, 투자를 말리던 애널리스트들은 반성문을 쓰고 있다. 물론 경기가 완전히 회복될 것이라는 뚜렷한 증거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여전히 세계자본주의경제는 ‘제조업의 과잉설비’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고, ‘정교한 모래성 같은 금융체계가 부풀려놓은 과잉소비’라는 시한폭탄을 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낙관적인 분위기는(이는 아직은 소수의 인간들 즉, 투자자와 경제분석가 등만이 공유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위기, 혹은 적어도 신자유주의의 종말을 부르짖어온 좌파들의 기세를 주춤하게 한다. 그리고 어느새 포스트 신자유주의/자본주의에 대한 논의들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이러한 일들로부터 우리는 다음을 깨달아야 하고, 다음의 질문을 던져야 한다. 자본주의가 사람들을 먹여 살리지 못한다는 명백한 증거들이 제시되고 있는데도, 자본주의의 진정한 위기, 정치적 위기는 시작조차 않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자본주의에 도전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할 수 있는가? 위기를 먹으며 자라온 괴물 우리는 경제위기를 곧장 자본주의의 위기로 받아들이곤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경제가 위기에 처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