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평화누리통일누리] 재 재정의(再 再定義)를 향하는 일미동맹

[평화누리통일누리] 재 재정의(再 再定義)를 향하는 일미동맹

2008년 3월 16일자 조간 일본경제신문(닛케이신문)에 ‘일미정부는 빠르면 2009년 말에 제2차 안보공 동선언을 발표한다’는 내용의 칼럼이 실렸다. 필자는 닛케이신문 편집위원 이나 히사요시(伊奈 久喜)로 일본경제신문사 정치부 및 워싱턴 지국을 거친 인물로 외무성 독립행정법인 평가위원회 구성원이기도 하다. 이 칼럼의 논지는 일본과 미국에서의 민주당 정권 성립을 가정하여 과연 향후 일미동맹이 어떻게 되어갈 것인가를 예측한 것이다.

[정세와노동] [특집] 패전 60년과 개헌 저지 투쟁

[정세와노동] [특집] 패전 60년과 개헌 저지 투쟁

"[사회주의 세계체제의 붕괴로 인한 ― 역자] 힘 관계의 변화는 사회주의로의 이행의 시대라고 하는 우리 시대의 성격을 바꿀 수 없다"고 하는, 그리스공산당 제17차 대회가 강조하는 강력한 선언을 우리도 지지한다. 이러한 세계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우리도 새로운 사회주의 건설의 일익을 담당할 개헌 저지 투쟁을 선두에 서서 담당하자.

일본총선, ‘우정사업민영화’ 내건 고이즈미 압승

일본총선, ‘우정사업민영화’ 내건 고이즈미 압승

11일 실시된 일본총선에서 고이즈미 자민당이 총 480석 가운데 296석을 석권하며 압승을 거뒀다. 이로써 우정사업민영화, 야스쿠니 신사참배, 이라크 파병시한 연장, 평화헌법 개정등 우경화 정책이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민영화 법안은 폐기되었다

민영화 법안은 폐기되었다

총선을 앞둔 독일과 일본의 신자유주의 개혁, 그 마지막 순서로 요코 아끼모토 ATTAC 재팬 사무처장의 글을 싣는다. 요코 아끼모토는 반세계화 운동가의 입장에서 우정사업민영화의 문제점,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대투쟁에 대한 글을 보내왔다. 그런데 지난 11일 열린 일본총선 출구조사 결과 우정사업민영화를 내건 고이즈미의 자민당은 단독과반수를 넘기는 압승을 거둘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총선결과가 보여주듯 요코 아끼모토의 이 글은 지난 8월 말 작성된 것으로 지금 당장의 상황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글은 우정사업민영화의 문제를 본질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한편 반신자유주의 투쟁의 일환으로 우정사업민영화 반대에 나서고 있는 일본 민중진영의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판단이다. 우정사업 민영화의 실체는 무엇인가 지난 8월 8일 일본 참의원에서는 17표 차이로 우편서비스 민영화법안이 거부되고 폐기되었다. 그 법안은 지난 7월 5일 중의원에서 단지 5표 차이로 통과되었으나, 8월 8일 참의원에서 폐기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논의됐다.언론에 의해 시행된 많은 여론조사에 의하면, 우편서비스 민영화에 대하여 일본인 80% 이상이 반대한 경우도 있었다. 게다가 대다수가 지배연합에 속한 국회에서도 법안에 반대하거나 저항하는 결의문이 채택되기도 했다. 우편서비스 민영화에 대한

일본 우정사업민영화, 340조엔의 우편저축액은 어디로?

일본 우정사업민영화, 340조엔의 우편저축액은 어디로?

직원 28만명, 수신고 340조엔(한화 3600조원)의 거대조직 우정공사를 민영화하겠다는 고이즈미의 승부수가 9월 11일 일본총선의 핵심으로 자리잡았다. 과연 우정사업민영화의 의미는 무엇일까

[주간노동자의 힘] 고이즈미 방북: 한반도 둘러싼 국제관계가 변한다

[주간노동자의 힘] 고이즈미 방북: 한반도 둘러싼 국제관계가 변한다

한승동(한겨레신문 국제부 기자) 한국과 일본이 국교정상화를 위한 예비교섭을 시작한 것은 일본제국 패전 6년 뒤인 1951년이었다. 그때 한국은 바로 그 전해인 1950년에 발발한 한국전쟁의 포연 속에 휩싸여 있었고 패전 뒤 불황 속을 헤매던 일본은 이 전쟁을 통해 기사회생함으로써 ‘전후 경제부흥 기적’의 토대를 쌓았다. 한-일협정을 맺고 양국의 국교가 정상화된 것은 그로부터 약 15년이 지난 1965년이었다. 그 4년 전인 1961년 5.16군사 쿠데타가 일어나 군사정권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통한 개발독재체제를 본격 가동하고 있었다. 1951년 한-일 국교정상화 예비교섭이 처음 시작된 곳은 도쿄 미군 점령군사령부였다. 미국은 1965년 한-일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음으로 양으로 정상화 조기타결을 촉구하고 압박했다. 1950년의 한국전쟁은 1947년부터 노골화한 미국의 대소 냉전대결체제가 1949년 중국의 공산화를 거치면서 일본의 재건을 동아시아 전략의 핵으로 확고하게 자리잡게 한 결정적 사건이었다. 1965년 한-일협정은 베트남전쟁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고 있던 미국의 동아시아 냉전전략의 축인 일본 재건 프로젝트의 완결판이었다. 한국은 미국이 바라던대로 대만과 함께 ‘불침항모’ 일본의 하부 선단으로 편입됐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함께 사회주의권의 몰락이 시작된 이듬해인 1990년 일본 집권 자민당의 실력자 가네마루

고이즈미 방한반대 국민대회

고이즈미 방한반대 국민대회

한일투자협정 반대 !! 군사대국화 반대 !! 대북 외세공조 반대 !! 고이즈미 방한반대 !! 국민대회

[사진으로보는 뉴스]고이즈미 방한 반대 시위

[사진으로보는 뉴스]고이즈미 방한 반대 시위

지난15일 고이즈미 방한 반대 투쟁이 자통협 주최로 12시 종로 젊음의 거리에서 진행되었다. 이날 집회는 300여명의 시민, 사회 단체와 학생들이 모여 진행 되었으며 간단한 규탄 대회를 마치고 일본 대사관 근처까지 행진을 한후 고이즈미 일 총리의 형상을 한 태양기 구조물에 화형식을 진행 하였다. 한편 이들은 이날 12시 집회를 하기전에 오전 8시에 고이즈미 일 총리의 독립문 참배를 막기위해 한총련 대학생들과 함께 고이즈미 총리가 이동하는 도로의 육교 위에서 현수막을 내리는 등의 시위를 벌여 고이즈미 총리는 예정된 참배 시간을 지키지 못하고 2분만에 뒷길로 빠져 나가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