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독점자본주의

정세의 심연을 보려거든 『자본』을 읽자

정세의 심연을 보려거든 『자본』을 읽자

『마르크스의 『자본』 길라잡이』는 국내에서 보기 드문, ‘정통파 마르크스주의’ 시각에 근거한 독해 방식과 동시에 “자본 이후의 자본주의”를 분석하려는 문제의식을 함께 담아낸 역작이다. 제목에 걸맞게 ‘자본 이후의 길라잡이’ 역할까지 충실히 수행하며, 한국 사회에서 논의가 소홀해지기 쉬운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을 제대로 다시 살펴볼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장기불황과 공황, 신자유주의적 재편과 같은 자본주의의 난제들을 보다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그 문제에 대항할 비판적 전망도 함께 얻게 된다.

국가자본주의 해체하기

국가자본주의 해체하기

현재 맥락에서, 국가자본주의라는 용어는 중국 등 일부 국가를 비판하는 일종의 낙인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를 통해 이들 국가의 "이질적이고 국가주의적-권위주의적" 자본주의가 서구의 "순수하고 진정한" 자본주의와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분명히, 문화적·정치적 이유로 인해 중국은 경제 참여를 감추거나 완곡하게 표현하려는 필요성을 덜 느낀다. 그러나 동양의 "비열하고 권위주의적인 국가자본주의"와 서양에서 "보다 덕성 있는 자유민주적 형태의 자유시장"이 대립하고 있다는 잘못된 그림을 그려내는 "심각히 문제적인 유럽중심적 상상"의 재생산에 비판적으로 도전할 필요가 있다.

이정우의 ‘북구형’도 위험.. 문제는 국가독점자본주의

이정우의 ‘북구형’도 위험.. 문제는 국가독점자본주의

한국에서 채만수 소장의 안목을 충족하는 저널리스트나 지식인은 얼마나 될까. 장단 간에 경제위기에 대한 진단을 내놓았던 ‘진보적 지식인들’이 줄줄이 혹세무민지설의 주인공 신세로 전락했다.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37호]금융위기와 신자유주의 파산 – 그 대안은 케인즈주의인가?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37호]금융위기와 신자유주의 파산 – 그 대안은 케인즈주의인가?

“은행업무의 거대한 확장으로 말미암아 특히 독일에서는 은행이 점점 더 주택저당채권(mortagage)의 보유자가 되고, 이들 은행의 주식과 함께 토지의 궁극적인 소유권이 증권거래소로 이전되는데, 이것은 토지가 채권자의 수중에 떨어지면 더욱 그러하다.” (엥겔스, 1895, ‘증권거래소’) “영국과 프랑스의 토지도 증권거래소의 수중에 떨어지는 시기가 곧 올 것이다” (맑스) 토지와 주택의 소유와 저당권이 증권거래소에서 거래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이후 일이지만, 이미 100여년 전에 엥겔스가 현재의 탐욕스런 고도금융체제가 어떤 모습을 띄는 가를 예언하였다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미국 국책 모기지 업체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이 파산하여 2,000억달러의 구제금융 결정이 내려진지 일주일 만에, 미국 4위 투자은행인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하였고, 3위 투자은행인 메릴린치가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에 인수 합병되었으며, 헤지펀드에 투자해 대규모 손실을 본 월가의 5위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는 이미 300억달러의 정부 구제금융이 투여되어 주당 10달러에 JP모건 체이스 은행에 인수되었다. 금융위기는 이에 그치지 않고 영국과 독일의 상업은행들도 잇따라 도산하기에 이르러, 위기가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금융공황의 위기까지 치닫고 있는 실정이다. 급기야 국제통화기금(IMF)은 현재의 금융위기 상황을 “미국에서 1929년의 대공황 이래 가장 거대한 금융위기”라고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36호]맑스주의 위기론과 신자유주의 금융위기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36호]맑스주의 위기론과 신자유주의 금융위기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사태에서 비롯된 금융충격으로 국내외적으로 위기와 공황에 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8500억 달러의 구제금융 법안이 미 상하원을 모두 통과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금융시장이 과연 안정될 것인지, 금융시장의 위기가 실물경제의 위기로 발전하는 건 아닌지 금융시장에서는 비관적인 전망이 우세한 실정이다. 그러나 당면한 위기와 공황을 논하기에 앞서 그것이 도대체 어떤 위기인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맑스주의 위기론에 입각한 여러 논자들조차 위기의 원인과 성격을 혼란스럽게 말하기 때문이다. 맑스의 주기적 과잉생산공황 우선 맑스가 위기를 말할 때, 그것은 10년마다 찾아오는 주기적 과잉생산위기(=주기적 과잉생산공황) 또는 주기적 과잉축적위기를 지칭하였다. 이미 <공산당선언>에서 맑스는 이 위기가 주기적 과잉생산위기라는 것, 세계적 규모에서 발생하는 위기라는 것, 그리고 근대적 생산력과 부르주아적 생산관계와의 모순의 표현이라는 것임을 분명히 하였고, 그런 점에서 체제적 위기와의 관련을 포착하였다. 즉 맑스에게 주기적 과잉생산위기는 자본주의의 기본모순의 표현이며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와 이행을 표현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위기였다. 이 점이 위기에 관한 맑스의 관점을 반성, 변화시킨 지점이었다. 맑스는 전자의 관점에서 사회혁명은 새로운 위기의 결과로서만 일어날 수 있다고 믿었고, 이러한 공황관이

신자유주의 금융위기에 직면한 국가의 딜레마

신자유주의 금융위기에 직면한 국가의 딜레마

국가독점자본주의론 없이 현대자본주의의 위기 분석은 과학적일 수 없다. 국가독점자본주의론에 입각하지 않고 미국자본주의의 위기를 논하는 자가 있다면, 자신의 이론적 토대, 정체성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 금융+민영화정책, 금융자본 메커니즘의 토대

이명박 정부 금융+민영화정책, 금융자본 메커니즘의 토대

공기업의 경영과 인사는 대중에 의해 통제돼야 하고, 국가의 조절은 대중의 필요와 서비스 개선의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 같은 맥락에서 경영과 인사권이 행사되도록 국가에 대한 대중의 통제와 공기업 내부의 노동자 통제가 결합해 공기업의 자율성이 재생산 되어야 하는데, 지금 나타나는 이명박 정부의 국가지주회사 기획은 이와는 완전히 다른 길을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