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1941년 6월 22일, 나치 독일 소련 침공 85주년

1941년 6월 22일, 나치 독일 소련 침공 85주년

1941년 6월 22일, 제3제국은 군사사상 가장 거대한 작전을 개시했을 뿐 아니라, 그에 못지않게 전례 없는 집단학살 폭력을 자행했다. 이 작전을 규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특징은 유대인 절멸이라는 목표였다는 점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홀로코스트의 진원지였던 동유럽에서 유대인 학살은 고립된 살육 행위가 아니었다. 독일의 소련 침공은 유럽 식민주의의 길고 피비린내 나는 역사에서 벌어진 마지막 대규모 영토 강탈로 이해하는 편이 훨씬 적절하다.

미국 연성 권력의 종말? 코카콜라에서 환타로

미국 연성 권력의 종말? 코카콜라에서 환타로

펜더그래스트는 “환타가 나치 독일 내부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을 신경 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생각한다”라며 “아무도 주목하지 않을 거라고 여겼을 것”이라고 말한다. 분명 극단의 시대에서 지역 브랜딩의 정치는 매우 복잡한 문제다. 나는 안티파의 이름으로 코카콜라 독일이 MAGA 미국에 환타 제조법 공급을 끊어야 한다고 권하려는 것도 아니다. 혹은 유럽의 반트럼프적 반사 작용이 나치의 유령을 되살리고 있다고 주장하려는 것도 아니다.

“당신에게는 어머니가 있어요”

“당신에게는 어머니가 있어요”

아우슈비츠 생존자이자 나의 소중한 친구였던 롤라 모지스가 세상을 떠났다. 나는 10년 전 그의 이야기를 썼다. 롤라 모지스의 어린 시절은 1939년 가을, 폴란드의 한 작은 다리 위에서 끝이 났다. 그는 아홉 살이었다. 말이 끄는 마차에 앉아 있었고, 등에는 가족의 안식일 은촛대가 담긴 담요를 두르고 있었다. 그때 롤라는 독일군의 폭격이 지나간 참혹한 흔적을 보았다

권위주의에 굴복하다

권위주의에 굴복하다

자유주의 제도들, 특히 대학은 전통적으로 독재자의 명령 앞에서 싸우지 않고 무릎 꿇는다. 지금의 대학들도 예외가 아니다. 하버드, 프린스턴, 콜럼비아, 예일 같은 엘리트 대학들은 본래 금권주의를 재생산하고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들 대학은 지적인 최전선을 이끄는 곳도 아니고, 반체제 인사나 급진주의자들에게 우호적인 공간도 아니었다. 이들은 도덕성과 지성이라는 외피를 뒤집어쓰고 있지만 정치적, 경제적 권력에 비굴하게 복종한다. 그것이 이 대학들의 본질이다. 우리가 권위주의 체제로 돌진하고 있어도, 이들의 태도는 결코 달라지지 않는다.

‘특성 없는 인간’이라기보다는 아메리칸 사이코

‘특성 없는 인간’이라기보다는 아메리칸 사이코

과연 아렌트는 슈페어를 아이히만보다도 더 본질적인 나치적 평범성의 사례로 보았을까? 혹은, 슈페어는 아이히만과는 달리 자신의 행동을 더 큰 사회적, 기술적 힘의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었던, 훨씬 더 불편한 존재였던 것일까? 그 자신이 저지른 행위를 정당화하고 교수형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만든 산업적·기술적 근대성의 신화를 형성하는 데 기여한, 불편할 정도로 설득력 있는 “사고 지도자(thought leader)”였던 것은 아닐까?

“전쟁 경제”? 과거의 그림자로부터 복합 위기를 해체하기

“전쟁 경제”? 과거의 그림자로부터 복합 위기를 해체하기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불안과 혼란 속에서, "전쟁 경제"와 나치 독일의 침략을 떠올리게 하는 20세기 중반의 역사적 경험은 우리 시대의 무게와 드라마에 걸맞은 지적·역사적 참조점 역할을 한다. 동시에, 익숙한 것이기에 우리에게 일종의 안도감을 주기도 한다. 이미 "알고 있는" 과거이므로, 우리는 그것이 현재 우리가 처한 안개 속을 밝혀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독일은 왜? 문제는 자본주의

독일은 왜? 문제는 자본주의

독일 당국이 팔레스타인인에게 연대를 표명하기 위해 나서는 자국 인민을 탄압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인민의 그런 행동이 지배계급의 이익과 상반된다고 여기는 것이 무엇보다 큰 이유일 것이다. 역시 문제는 다수의 이해관계와 소수의 이해관계를 대립시키는 자본주의라고 봐야 한다.

[인권오름] [전승일의 포스트 트라우마] 펠릭스 누스바움

[인권오름] [전승일의 포스트 트라우마] 펠릭스 누스바움

고문당한 자는 두 번 다시 이 세상과 친숙해질 수 없다.

[이득재의 줌인 줌아웃] 바우하우스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이득재의 줌인 줌아웃] 바우하우스와 한국예술종합학교

1919년 바이마르에서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가 학교 설립을 인준 받아 시작한 바우하우스는 1933년 나치에 의해 폐쇄되었다. 14년 만의 일이다. 이와 유사한 일이 한국에서 재현될 조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