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계급의 세계관에 뿌리 내린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더 가벼워지고 더 자유로워지고 더 날카로워지면서 우리는 날마다 새로운 노동자 문학을 시작해야만 한다.
나는 민중지향적 문학이, 이 세계의 파괴에 맞서서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문학이, 더 깊어져야 하고,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문학은 유효한 투쟁의 무기이며 계급적 산물이고 유기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인가? 많은 작가들이 이 질문 앞에서 얼마나 당당할 수 있을지 또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지
나는 혁명을 노래해야 할 시인이었지만 / 도둑처럼 다가올 새벽을 믿지 못했기 때문에 / 빛살로 날아오르는 노래 한 곡 부르지 못하고 / 산길을 서성이며 젊은 날을 보냈다
노동문학을 이끌었던 진보적 창작자들은 이미 오래전 창작활동을 놓거나 축소하였고, 개별적으로도 노동운동 등 진보운동과의 관계의 선들이 단절되어 있는 상태다. 아예 창작 내용의 중심을 옮긴 작가들도 숱하다.
정말 노동자문학은 이제 끝난 것인가? 노동자계급운동은 이제 그만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야 할 퇴물인가? 혁명에 대한 꿈을 더 꿀 필요없이 우리는 충분히 행복하고 만족하는가? 하지만 우리의 답은 아직 아니다이다.
혁명적 이론이 없으니 혁명적 주체들이 없고, 혁명적 주체들이 없으니 혁명적 대중들과 혁명적 상황들이 없고, 혁명적 대중들과 혁명적 상황들이 없으니 혁명적 꿈들조차 더 이상 꾸어지지가 않았다. 이제 막 역사의 무대로 화려하게 등장한 ‘노동계급 문학’이 퇴조한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백무산이 「노동의 밥」에서 “피가 도는 밥을 먹으리라/ 펄펄 살아 튀는 밥을 먹으리라”고 선언한 이래 가장 치열한 생존 선언이 아닌가 싶다. 이렇듯 진정이 우러나는 시는 거친 토로에도 불구하고 가슴을 적신다.
소설가라는 사람이 소설을 우습게보게 된 사연에 별다른 논리나 철학이 있던 건 아니다. 알량한 소설 두어 편 펴낸 이후로는 욕심에 맞는 수준의 글이 써지지도 않고 억지로 쓴 책들마저 평단과 독자들의 냉대를 받을 때부터 소설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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