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중위기

위험을 논하는 글쓰기: 다중위기인가 일시적 충격인가

위험을 논하는 글쓰기: 다중위기인가 일시적 충격인가

사람들은, 더 정확히 말해 부유하고 유명하며 권력을 가진 남성들은, 왜 그런 행동을 하는가. 돈, 권력, 명성, 성은 서로 교환 가능한 흐름을 이룬다.그러나 이런 충동들은 어떤 구성 속에서 순환하는가. 그것들은 어떻게 조직되고 통제되는가. 어떤 내면의 악마와 욕망이 그것들을 움직이는가. 엡스타인 폭로가 보여주는 것은, 그런 흐름이 얼마나 통제되지 않은 채로 흘러갈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트럼프 2기 두 달, 우리가 알던 세계의 종말

트럼프 2기 두 달, 우리가 알던 세계의 종말

반(反)트럼프 진영은 공포에 질린 채 무력한 분노 속에서 끊임없이 불길한 뉴스만 계속 찾아보는 행위을 하거나, 효과 없는 시위에 나서거나, 체념하고 철수하는 상황에 내몰려 있다. 후자의 선택지는 일정 수준의 안전을 보장받고 있는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일 뿐이다. 트럼프 시대를 따라잡는 것은 지적, 감정적, 신체적 에너지를 요구하는 일이다. 그것도 비교적 안정적인 종신 교수직에 있다면 그나마 견딜 수 있다. 하지만 해고된 공무원, 테러 혐의로 기소 위협을 받는 시위자, 강제 추방을 앞둔 이민자라면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이 상황을 직접 겪고 있지 않은 이들에게 이 감각을 전달하려 한다면, 내가 떠올리는 유사한 경험은 팬데믹 시절의 막연한 불확실성과 공포다.

다중위기와 자본중심주의 비판

다중위기와 자본중심주의 비판

2008년과 그 이후의 해들은 역사적인 충격을 가져왔다. 금융 위기의 아찔한 공포, 그에 뒤이은 유로존 위기의 장기화, 월가 점거 운동(Occupy Movement)과 “불평등의 순간”,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M) 운동, 파시즘적 정치에 대한 증가하는 불안, 기후 위기의 급진화, 고조되는 지정학적 긴장 등 이 모든 것과 그 외의 수많은 요인들이 거대하고 긴급하며 강력한 분석 틀을 찾게 만들었다. 이보다 덜한 시도는 이 순간에 적절치 않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