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일지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침략군을 보낸 나라의 백성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침략군을 보낸 나라의 백성

침략군을 보낸 나라의 백성 어쩔 수 없이 나는 침략군을 보낸 나라의 백성이 되었다. 이 나라는 침략자들과 한 패거리가 되어 그 땅 사람들을 죽일 것이고, 그 땅 사람들을 죽여 빼앗을 것이다. 내가 아무리 이 전쟁이 시작하기 전부터 반대했고, 우리나라의 군대를 보내는 것에 반대를 해 왔다 할지라도 어쨌든 나는 침략군을 보낸 나라의 백성이다. 내가 먹게 될 음식, 내가 집에서 켜는 전깃불, 내가 물을 데울 때 쓰는 가스, 먼 길을 갈 때 타는 버스……. 그 모든 것들에는 이미 침략과 전쟁으로 죽어간 이라크인들의 목숨이 스며 있다. 내가 세금을 내거나 내가 낼 기름 값, 가스 값, 버스 값, 음식 값 따위들은 그 값은 모두 이 전쟁과 관련이 없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값이 올랐다면 그건 이라크로 보낸 군대의 총과 탱크를 마련하느라 더 높은 세금이나 물건 값을 내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거꾸로 그 전보다 값을 덜 내게 된다 해도 내가 이 침략과 약탈의 공범자가 되는 건 마찬가지다. 만약 세금이나 물건 값이 내려간다면 그건 수많은 이라크인들을 죽이고,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아테네의 환호와 나자프의 절규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아테네의 환호와 나자프의 절규

아테네와 나자프 우연히 어느 가게에 놓인 스포츠 신문을 보다가 오늘 밤 아테네 올림픽을 개막한다는 걸 알았다. 요사이에는 텔레비전은 물론 종이 신문을 통 볼 수가 없었으니 그 쪽에는 아주 깜깜했다. 면면마다 지면 가득 올림픽에 대한 특집기사들이 있다. 올림픽, 월드컵, 나도 올림픽이나 월드컵이 열리면 좋아하는 종목을 빼놓지 않고 보던 편이었다. 더구나 결승이나 메달을 앞둔 마지막 경기에서 드라마틱하게 역전과 재역전을 되풀이하는 장면이라도 나오면 숨이 막히도록 흥분이 되고 손에 땀을 쥐었다. 운동 경기, 그 자체로 무엇이 그리 나쁘겠나? 돈에, 권력에, 패거리의 힘에 좌지우지되는 세상의 승부들에만 질려하다가 그나마 정직한 승부, 최선을 다하는 모습, 결과에 대한 깨끗한 승복이 지켜지는 게 운동 경기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운동 경기에 더욱 매료되는 것 같다. 기억이 정확한지 모르겠지만 올림픽이 내걸고 있는 표어 가운데 하나가 ‘전 세계인이 함께 하는 평화의 제전’ 어쩌고 하는 말을 어려서부터 질리도록 들어온 것 같다. 그리고 어렸을 때는 그 말이 그럴듯해 보였다. 개막식을 보면 그 많은 나라의 선수단이 저마다 적게는 수십에서 수백 명씩 줄을 지어 경기장에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파병반대 투쟁은 결국 나를 지키기 위한 싸움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파병반대 투쟁은 결국 나를 지키기 위한 싸움

1. 불안한 평화 시골에 살아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적어도 이 여름 한적한 자연에서 며칠 휴가라도 보내고 왔다면 알 거다. 풀, 나무, 벌레, 새, 들판, 냇물, 하늘이 얼마나 평화로운가를 말이다. 이 안에서는 들일을 하는 ‘인간’조차도 하나 흉악해 보이지 않는다. 개발과 경쟁이라는 이름으로 파괴하고 빼앗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개발 동물’, ‘경제 동물’이 되어버린 인간이라는 종조차도 말이다. 물론 자연 안에 먹고 먹히는 사슬의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최소한 균형과 조화를 전제로 하고 있다. 온갖 목숨들이 제 빛깔을 내는 가운데 함께 어울려 있는 것이다. 내가 사는 마을도 그렇다. 여기는 울진에서도 깊은 산중으로 들어온 곳, 그래서 인터넷은 물론 신문이나 텔레비전 유선방송도 되지 않는 곳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벌써 마을에 사는 할머니들이 아랫논에, 건넛밭에 들어가 일을 하고 계시는 걸 보곤 한다. 허리를 굽혀 고추를 따는 할머니도 수레를 끌고 탈탈 먼길을 걷는 할머니도 누구 하나 그분을 감싸고 있는 들이나 하늘, 풀, 나무, 벌레, 새 따위와 다른 어떤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 안에서 그대로 하나가 되어 있다.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그곳은 광화문과 명동, 종로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그곳은 광화문과 명동, 종로

아침 하루가 다르게 아침 공기가 차갑다. 마침 이 무렵에 단식을 해서 그런지 요사이에는 눈을 뜨는 시간이 일러졌다. 평소 내 생활습관대로라면 서너 시간을 일찍 시작하고 있는 거다. 이상할 만큼 몸은 가볍다, 마음도 상쾌하다. 내가 사는 죽변 시골집은 문 앞이 바로 산이다. 그렇다고 갑갑하게 가로막고 있는 것이 아니라 훤히 트여 있는 낮은 산. 내가 세를 들어 살고 있는 집 또한 이 편 나지막한 비탈에 있는지라 문 앞에 나가 내다보면 그 풍경이 날마다 새롭다. 꼭 문 앞에 나가지 않아도 창으로 바로 산이 건너다 보인다. 산을 아는 사람들이야 다 아는 말일 텐데, 산은 잠시라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산은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표정을 바꾸면서 온갖 얼굴을 한다. 그러다 보면 산은 나를 어디론가 이끈다. 나도 모르게 산과 나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산이 내가 되고, 내가 또다른 내가 되어. 그곳은 광화문과 명동, 종로 아직도 아이들은 팔레스타인 호텔과 쉐라톤 호텔 둘레에서 외국인들을 따라다니고 있을까? 외신 기자들이 주로 모여 있던 그곳, 일급 호텔 들 둘레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