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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던 문화 속에서의 사회인류학적 평화운동 (동영상 포함)

포스트모던 문화 속에서의 사회인류학적 평화운동 (동영상 포함)

[학술대회] 11월 22일 오후 전남대학교(인문대1호관 113 학술회의실)에서는 한국종교문화학회와 전남대 종교문화연구소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제17회 2013년 추계 학술대회>가 열렸다. 이번 대회의 주제는 \”종교와 평등사상\”으로 기독교, 불교, 원불교 인사들이 참여했다. 기독교 쪽에서는 정일권 교수(한동대)가 \”유대-기독교적 평등도덕의 변증법과 동아시아 종교 -르네 지라르(Rene Girard)의 문명기원론으로 빛으로\”란 제목으로 논문 발표가 있었으며, 논평은 새로운기독교운동연대 전영철 대표(우석대 명예교수)가 맡았다. 다음은 관련 동영상 및 전영철 대표의 논평 중 결론부이다. 도전에 대한 응답: 포스트모던 문화 속에서의 사회인류학적 학제적 평화운동 1) 해체주의를 해체하는 학제적 연구활동 ‘폭력과 종교에 관한 학술대회’ 르네 지라르 류의 사회 인류학적 평화운동은 한 번 작동하기 시작하면 쓰나미처럼 한계를 모르고 모든 의미와 차이를 덮쳐, 어디에서나 파괴하고 해체하여 온갖 허무주의와 아나키즘을 낳는 포스트모던 문화에 대한 저항이요 싸움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궁극적인 의미 자체를 부정하여 어떤 적극적 주장도 원천적으로 봉쇄해버리는 상대주의의 함정에서 벗어나는 운동이기도 하다. 그것은 바로 니체나 데리다 등에 의해 주도된, 온갖 우상과 가치의 파괴와 전도를 낳은 해체주의를 다시 극복하는 일이며, 비판과 반성을 넘어, 해체를 통한 파멸 직전에 이른

[새기운 칼럼] 혁명가 예수를 만나다 – 전영철

[새기운 칼럼] 혁명가 예수를 만나다 – 전영철

예수는 기독교권 국가들은 물론 특히 우리 사회에서 철저한 평화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이런 인식은 과연 합리적인 논리를 지닌 것일까. 평화주의자란 의미는 흔히 어떤 경우에도 폭력적인 것을 거부하며 순리에 따르는 자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는 원칙적으로 평화주의를 지지하되 때로는 평화적인 방법만을 수용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위기에 직면했을 때는 평화적인 방법을 넘어서서 문제를 해결했던 경우가 많았다. 왜냐하면 모순으로 가득한 현실 문제를 순리로만 해결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예수는 오로지 그의 삶을 이 지상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데 헌신한 사람이었다. 그의 활동은 \’때가 찼다. 하나님나라가 가까왔다\’는 선언으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그는 관점은 평화주의를 최대한 견지하자는 일반론과 철두철미하게 평화주의 원칙만을 고수하자는 다른 층위의 두 이야기에서 전자에 가까운 듯하다. 순리를 따른다는 것은 여건이 성숙할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민중들은 우리 사회의 부조리한 요소들이 정리되기를 염원한다. 그러나 오늘은 여전히 척박하다. 그렇다면, 예컨대 악의 요소들은 그 싹이 사라질 때까지 마냥 기다려야 하는가. 그것이 순리인가. 예수 당시도 그러했다. 해서 예수는 더 많은 미소보다 훨씬 더 많은 분노로

우리는 왜 주인의 판단을 그대로 답습하는가

우리는 왜 주인의 판단을 그대로 답습하는가

새로운기독교운동연대 [도전적 예수읽기] 악하고 게으른 종아 – 전영철 (새기운) [프롤로그] 2천년의 기독교 신학과 신앙에 익숙한 사람들이 성경에 기록된 내용을 별 생각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성경이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 신실한 사람으로서는 문자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의 말씀을 곧이곧대로 전한다고 하는 복음서의 글이라 해도, 복음서가 쓰인 시점이 예수가 세상을 떠난 뒤 40년 이상의 세월이 지난 뒤였다는 것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잘 알려진 대로 복음서는 현대처럼 녹음기가 있어서 현장에서 녹취한 것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구전을 통해 전해져 온 것이다. 따라서 상황이 달라진 그 당시의 복음서기자와 그가 속한 공동체의 해석을 통해서 나온 글임을 생각한다면, 같은 예수의 말을 전하면서도 복음서기자마다 다르게 보도하고 있는 것을 이제는 모르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중요한 것은 복음서기자가 바로 실제 예수가 아니라는 명백한 사실이다. 복음서기자들이 이해하기에는 예수는 너무도 그 생각이나 행동이 달랐던 예사롭지 않은 분이었다. 복음서기자들이 예수의 뜻을 전한다면서 오히려 예수를 왜곡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수는 기독교인이 아니며 자본주의 기독교와 무관

예수는 기독교인이 아니며 자본주의 기독교와 무관

전영철(새기운 대표) [인권칼럼] 가난한 철거민들과 함께 생각해보는 예수상 예수에 관하여는 흔히 잘 알려지지 못하여 잘못 알고 있는 일들이 많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일이지만 예수는 기독교인이 아니었다. 그가 살던 세계는 아랍, 그리스, 로마 등 다양한 문화와 함께 주로 유대교가 지배하던 세계였으며 그 속에서 자라며 영향 받은 예수는 일찍이 한번도 기독교를 창시하거나 기독교인임을 주장한 사실이 없다. 예수가 구세주라거나 하나님의 아들, 심지어 하나님 자신이라는 주장은 모두 예수가 아닌,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 믿거나 생각해낸 일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마치 기독교인의 전유물이나 되는 것처럼 그를 기독교의 성전에 모셔놓고 그의 주변에 높고 큰 성벽을 쌓아 올렸을 뿐 아니라, 타인들의 비판 간섭을 불허하는 가운데 그들의 구미에 맞는 오늘날의 예수상을 그려놓았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비기독교인들조차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치 자신이 기독교인이나 되는 것처럼 기독교인의 생각으로 예수를 생각하여, 예수는 기독교에 속한 인물이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바라보는 사람이 많다. 우리는 한 송이 꽃이나 한 구루 나무가 내 집 울타리 안에 있다하여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내 물건으로 믿고

[논평] 희망버스 그리고 미 청년들의 ‘자본주의 심장’ 월가 점령

[논평] 희망버스 그리고 미 청년들의 ‘자본주의 심장’ 월가 점령

[논평] 희망버스 그리고 미 청년들의 ‘자본주의 심장’ 월가 점령 한국에서는 5번째 희망의 버스 출범을 5일 앞두고 있는 현재, 미국에서는 ‘자본주의 심장’ 월가를 점령한 청년들의 분노가 요원의 불길처럼 미국 전역을 휩쓸어갈 기세다. 첫날 수백 명에 불과했던 시위대가 14일이 지난 9월 30일 2천여 명으로 불어난 점거시위는 ‘월스트리트점령’측이 오는 6일의 워싱턴디시, 뉴저지, 텍사스 댈러스, 로스앤젤레스로를 거쳐 66개 도시가 동참의사를 전해왔다고 고 밝히고 있는 것으로 보아 미전역으로 확산될 전망이다. – 혁명 전야: 막다른 골목 장벽 허무는 함성, 혁명의 시작 알리는 신호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목적 달성이 아니라 새로운 정치문화를 창조하는 것”이라며 “이렇게 매일 월스트리트를 점거하면서 겨울까지 이어갈 수도 있다”는 시위대 임시집행부 측의 말에 따르면 점거시위가 예사롭지 않은 것임을 바로 알 수 있다. 이제까지의 대부분의 시위는 어떤 구체적인 특정 목적의 달성에 있었던 만큼, 그 목적이 달성되면 바로 해산하는 것이 그 특징이었다. 그러나 이번 월가점거시위는 구체적인 달성목표가 제시되지 않은 포괄적인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이에 대해 반응하는 미국민의 계층과 참여 지역 또한 다양하게 나타날 전망이다. 이는

예수운동에서 PD운동으로

예수운동에서 PD운동으로

[에세이] 새로운기독교운동 – 예수운동에서 PD운동으로 최승현(새로운기독교운동연대 조직국장) 1. 내가 있던 절은 분명히 조계종이지만 주지스님이 애 아버지였다. 내가 무슨 태고종이면 말도 안하겠는데 조계종인데 중 신분에서 여자를 꼬셔서 가정을 이뤘다는 것은 사회기준의 윤리에서도 올바르지 못하고 종교계에서도 이건 범죄다. 외제차는 기본이고, 밤7시만 되면 중들이 우르르 절 밖으로 나가서 룸싸롱 가고 그리고 속 쓰려서 새벽예불에는 참석도 안했다. 중이나 목사나 제도종교에서 밥 벌어 먹고 살려면 승가교육원에서 배운 거 지식으로만 감춰둬야 하고, 신학교에서 배운 거 지식으로만 감춰둬야 한다. 절대로 통일교나 jms가 기존 제도종교 기독교보다 뛰어난 조직이라서 성장한 게 아니다. 그들이 내세우는 교리가 <예수천국불신지옥예수부활승천>보다는 조금 더 사람 같았기 때문이지, 그래서 합리적이라고 생각했기에 기독교인들이 그쪽으로 몰린 것이다. 그렇지만 긴 시야에서 보자면 … 어차피 털릴 거 통일교든, jms든, 기독교든 그게 그거다. 사람이 선하게 사는 것도 좋지만 너무 순진해버리면 … 오히려 사람 자체는 더 반듯하고 똑똑한 사람일지라도 여지없이 제도종교의 종교직업인들에게 털려먹는 것이다. 거기서 안 털려도 무당한테 털리나 어디서 털리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만약 … 평신도들이 중이든 목사든 어느 놈이든 뭐든 안

[성명] 목사직 매매 현상, 발상을 확장하자 !!

[성명] 목사직 매매 현상, 발상을 확장하자 !!

[성명] 목사직 매매 현상, 발상을 확장하자 !! 최근 한 목사가 기자회견을 통해 현실에서 실제 이뤄지고 있는 목사직 매매 행태를 고발하고 자신의 목사직을 반납해 눈길을 끌고 있다. 그는 담임목사로 부임하는 사람이 내는 수억원의 헌금이 전임자의 은퇴금으로 사용되는 사례를 비롯하여 교인을 포함해 교회를 통째로 사고파는 악습을 개탄했다. (관련기사 http://www.nocutnews.co.kr/show.asp?idx=1837652) 여기서 우리는 이 사회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교회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하는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으며, 따라서 이를 솔직하게 증거하고 결단한 그 목사의 용기를 칭찬하게 된다. 그리고 늦은 감은 있지만 이제부터라도 교회가, 사랑의 마음으로 이 땅의 정의와 평화를 추구한 예수의 올곧은 삶을 좇을 수 있도록 거듭나기를 기대해 본다. 아울러, 이러한 소망의 현실화를 위해 지난날 국내에서의 어설픈 \’개혁\’ 수준을 넘어서, 역사적인 측면에서 기독교를 깊이 성찰하고, 보다 구체적인 \’변혁\’의 고민들을 대 사회적 연대운동 방향으로까지 발상을 크게 확장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부패 문제를 해결하는데 적극 나섰으면 한다. 첫째, 325년 니케아 공의회 이후 왜곡된 예수를 고백해야 한다. 기독교 그 폐해의 뿌리를

[논평] 본말 전도된 김승규 前국정원장의 안티기독교 대처 발언

[논평] 본말 전도된 김승규 前국정원장의 안티기독교 대처 발언

[논평] 본말 전도된 김승규 前국정원장의 안티기독교 대처 발언 – \’표현의 자유\’ 억압하는 인터넷 실명제·사이버 모욕죄 추진은 시대착오적 발상 지난 노무현 정권에서 법무부장관, 국가정보원장 등을 지낸 김승규 장로(변호사)가 ‘안티기독교’ 문제에 대해 적극 대응을 요청해 논란이다. 김 장로는 3일 열린 한국교회법연구원 제8회 교회법 세미나에서 ‘인터넷에서의 반기독교활동의 실태 및 대책’을 주제로 발제하면서 이렇게 개탄했다고 한다. “안티들은 기독교와 교회에 대해서 모독하고 왜곡하고 비방하고 조롱합니다. 그런데 교회는 그 많은 인재들을 갖고 있으면서도 왜 이제까지 이를 방치했습니까. 그 많은 목사님들, 신학생들 보십시오. 우리 하나님이 이렇게 모욕당해도 됩니까.”(크리스천투데이 2011.6.4) 그리고 이른바 ‘안티들’(기독교 비판세력)에 대한 대책으로 김 장로는 △교회의 회개와 갱신 △악성 게시글 대응체계 구축 △강력한 법적 제재 △인터넷 실명제와 사이버 모욕죄 추진 △인터넷 대응 교육 등의 방안을 제시했다. 김 장로의 대안을 보노라면, ‘교회의 회개와 갱신’ 부분을 제외하면 하나같이 기독교 비판세력을 법적으로 강력하게 대응하자는 게 주요골자로, 이러한 관점은 마치 예전 군사독재정권이 잘못은 반성하지 않고 법치라는 미명아래 자신들을 비판하는 인사들을 강경 탄압하던 방식을 연상케 한다. 적어도 논리를 갖춘 기독교

[논평] 교회십자가 야간점등, 빛 공해 대상으로 제한은 당연

[논평] 교회십자가 야간점등, 빛 공해 대상으로 제한은 당연

새로운기독교운동연대 [논평] 교회십자가 야간점등, 빛 공해 대상으로 제한은 당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는 빛공해방지법 제정안(박영아의원 대표발의)에 대한 심사가 진행 중인데 교회 십자가와 관련한 보수 기독교계의 반대로 입법과정에서 심한 진통이 예상된다. 법률안에 의하면, 과도한 조명 사용을 제한하기 위해 조명환경관리구역을 등급별로 설정한 뒤 이에 맞는 빛 방사 허용 기준을 설정하게 된다. ‘빛공해 방지 및 도시조명 관리조례’(서울시)에서 교회 십자가는 현재 기념물로 분류돼 규제 대상에서 제외돼 있지만, 제정 법률안은 예외 조항을 두지 않아 교회도 조명환경관리구역 등급에 따른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 따라서 산속 기도원이나 주택가 교회는 십자가의 밝기를 조절하거나 이웃집 창으로 빛이 들어가지 않도록 차광시설을 설치해야 한다는 게 주요골자다. 이에 대한 기존 기독교계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 정도로 보도되고 있다. 첫째는 한기총 김운태 총무가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십자가를 단순히 불빛으로만 봐서 법으로 제한하겠다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에 불과하다, 한국교회의 존재감을 무력화하는 발상으로 절대적으로 용납할 수 없다.”고 항의한 것이다. 둘째는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쪽의 “교회가 심야에 십자가를 소등하는 자발적 에너지 절약 운동에 나서야 한다”는 발언인데, 기환연은 대안으로 십자가에 쓰이는 네온사인을 전력

[성명] 카이스트 학생들의 자살은 신자유주의 살인적 교육제도가 원인

[성명] 카이스트 학생들의 자살은 신자유주의 살인적 교육제도가 원인

[성명] 카이스트 학생들의 자살은 신자유주의 살인적 교육제도가 원인 – 숨진 학생들의 명복을 빌며 7일 인천시 만수동의 한 아파트 1층에서 카이스트 2학년 박 모 씨가 숨짐으로써 카이스트에서 올해만 학생 4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했다. 박 씨 사망의 원인으로 거론되고 있는 것은 그의 우울증과 카이스트 측의 징벌적 수업료 제도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카이스트는 징벌적 수업료를 8학기 동안은 면제해 줄 계획이라는 등 현 제도에 대한 존폐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급히 진화에 나섰다. 원래 카이스트는 등록금이 없는 학교지만 성적 부진에 따라 최고 600여만 원의 수업료를 내게끔 하고 있다. 우울증과 관련한 유의미한 조사가 있다. 2005년 정신건강실태조사(함봉진 서울대 의대 교수)에 의하면, 서울대생 8%가 정신과 진료가 필요한 정도의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우울증이 있으면 자살 위험은 일반 학생에 비해 4.4배 증가하는데, 실제로 학생 상담업무를 총괄했던 김명언 교수(서울대 대학생활문화원장)에 따르면 당시 2년간 강박증, 우울증 등으로 자살한 서울대생은 10명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 이는 무한경쟁에서 승리(?)한 학생일수록 우울증에 걸리기 쉽다는 걸 암시한다. 카이스트 학생들의 죽음에서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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