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노동운동 보고서] 한겨레21 \”나는 성노동자다\’\” 계기로 본
최덕효(대표겸기자) 1. 2012년 7월 2일. 이날은 국내 성노동/성노동자운동(이하 성노동운동)의 분수령이 되는 날이다. 가장 신뢰도가 높은 언론(좌파진영에서 보면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으로 일컬어지는 한겨레신문에서 발생하는 주간지 『한겨레21』이 본격적으로 ‘성노동’ ‘성노동자’란 용어를 사용한 심층기사를 내놓은 날이기 때문이다. 그간 금지주의 쪽에 편향되었던 한겨레가 이번 기사에서는 비범죄화를 기조로, 이 분야에 대한 보수언론의 선정적인 혹은 시혜적인 접근과 현저한 차이를 보이는 상당한 수준의 운동적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한겨레21』은 2일자(917호)에서 특집으로 성노동 관련 남은주 기자의 표지 기사 《“‘나는 성매매를 선택했다’ 성노동자 4명 자신의 노동을 말하다… ‘창녀’라는 낙인에서 구해준 것은 탈성매매가 아니라 노동자라는 자각이었다”》와 《“쉬쉬하다가 성노동자만 범죄자 ‘성매매특별법’ 둘러싼 멈춰선 7년 논쟁… 한국 성산업 시스템 도외시하며 성매매 여성만 처벌해, 적어도 비범죄화해야”》 두 꼭지를 실었다. 국내 성노동운동의 출발은 노무현 정권 당시 이라크 파병반대 운동에 참여해 진보진영에 만민공동회를 제안했던 기독민중연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단체는 2004년 9월 23일 성매매특별법(‘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과 ‘성매매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이하 성특법) 시행 직후 조직한 ‘성특법반대시민모임’을 거쳐 지금의 한국인권뉴스(이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