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회복위원회라는 금융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기관을 중심으로 800만 금융채무자들의 숨통을 조이는 정책이 아니라 정부가 짊어졌어야 할 사회적 빈곤을 개인의 몫으로만 전가한 것에 대해 정부는 이제부터라도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파산은 단지 하던 사업을 못하게 된 것이 아니라, 삶의 기반을 송두리째 빼앗기는 것이다.
가난해서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그 돈을 빌려주는 대가로 빌려준 돈보다 더 큰 돈으로 갚으라는 것은 바위에 눌린 사람의 바위를 잠시 들었다가 곧 더 큰 바위덩어리로 누르는 것과 같다.
부산에만 신도수가 35만 명에 이른다는 거대사찰 삼광사. 이곳에서는 절의 사무, 관리, 운전 등을 맡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 100여 명이 사찰로부터 교섭은 커녕 폭력적인 탄압을 받고 있었다.
“수 백 만 명의 사람들이 하루하루 인간적인 모멸감을 당하며 죽어가고 있는데, 다른 나라 같으면 폭동이 일어나도 수십 번이 났을 것”
카드회사에 받고 싶으면 집에 있는 것 다 가져가고, 내게 있는 재산 다 가져가라고 했어요. 단 내 인권만은 그대로 두라고 했어요. 이제는 카드회사 직원들이 집까지 쳐들어오는 일은 없습니다. 문자만 와요. 악질채무자라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기업을 운영하다 채무 초과 상태에 빠진 경우에 파산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가정경제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도덕적인 문제가 아니다. 갚을 수 없는 빚을 갚으라고 하는 것처럼 비도덕적인 행위도 없을 것이다.
신용불량은 가족 해체와 개인의 죽음을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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