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영석

[연정의 바보같은사랑] 진보 가치 지향 뮤지션이 모여 소통하는 장 세 번째 ‘콘서트 동행’

[연정의 바보같은사랑] 진보 가치 지향 뮤지션이 모여 소통하는 장 세 번째 ‘콘서트 동행’

현재 노래운동을 하고 있는 뮤지션들의 대부분이 20년 전부터 활동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분야의 재생산이 안 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80~90년대 노래패 ‘꽃다지’나 밴드 ‘천지인’ 같은 모습은 아니어도 일상적으로 자신의 음악을 하면서 현실을 비판하고 거기에 참여하려는 뮤지션들은 분명 존재하고 있다.

[연정의 바보같은사랑] 인간 존재 탐구를 계속해서 노래할 거에요

[연정의 바보같은사랑] 인간 존재 탐구를 계속해서 노래할 거에요

백자 씨는 자신의 노래를 크게 두 부류로 나눈다. 하나는 말 그대로 ‘빡센’ 민중가요로, 대학 때 이후 우리나라 활동을 하면서 생산해낸 많은 노래들이다. 또 하나는 인간의 존재에 대한 노래다.

[연정의 바보같은사랑] 음악이 세상과 어떻게 소통하는지 보여주고 싶어요

[연정의 바보같은사랑] 음악이 세상과 어떻게 소통하는지 보여주고 싶어요

내 음악이 자신과 사회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어요. 이번 공연에서 바람이 있다면 제 음악이 오는 분들의 삶에 잠시라도 조금의 여유가 됐으면 하는 거에요.

힘내자 촛불아! 1박2일 콘서트 제4부

힘내자 촛불아! 1박2일 콘서트 제4부

세임올드스토리, 슈퍼키드, 벨라마피아, 고고보이스, 연영석

\’필승 연영석\’ 보러 오세요

\’필승 연영석\’ 보러 오세요

\’높낮이 없는 세상을 노래하는 음악 다큐\’ <필승 ver 2.0 연영석>(태준식, 2007)이 6월 6일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개봉한다. 이 작품의 수익 중 일부는 비정규직 투쟁기금으로 전달될 예정이다.

[제3회 맑스코뮤날레 – 맑스와 함께 상상하기] 연영석밴드에게 부치는 노래 – 태초에 분노가 있었다

[제3회 맑스코뮤날레 – 맑스와 함께 상상하기] 연영석밴드에게 부치는 노래 – 태초에 분노가 있었다

“이씨 니가 시키는 대로 내가 다할 줄 아냐” 불끈불끈 외치는 비명이, 외침같은 비명이, 외침같은 분노가 땅거미처럼 내 삶의 시간을 잠식해 들어와 버린 임노동 임노동의 안방이 되어 버린 내 마음의 공간 속에 분노가 있었다

모든 사람의 밥을 위한 노래

모든 사람의 밥을 위한 노래

연영석 씨는 1집 돼지다이어트, 2집 공장에 이어 3집 앨범 '숨'을 발표하고 자신의 삶, 우리 모두의 삶을 노래하기 위해 여념이 없다. 비오는 날 전통찻집에서의 대화는 함께 나눴던 국화차의 내음 만큼이나 진하고 향기로웠다.

문화 노동자 연영석의 *비~정규직 코리아*

문화 노동자 연영석의 *비~정규직 코리아*

이 동영상은 문화 노동자 연영석씨가 지난 6월21일 서울역에서 열린 산재추방 집회에서 선보인 ‘오~필승 코리아’라는 노래를 패러디한 공연을 담아 뮤직 비디오 형식으로 만든 것입니다. 월드컵이 시작한 이후로 모든 신문과 방송은 스포츠신문과 스포츠뉴스가 되어 월드컵에 관한 온갖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입에 거품나게 떠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루에 10명이상의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죽어가는 나라 대한민국의 언론은 산재로 죽어가는 노동자들의 현실은 한줄도 싣지 않습니다. 월드컵 때문에 찾아온 외국인들은 두손들어 환영하지만 이땅에서 죽어라 일해온 이주노동자들을 내쫓기 위해 1년이라는 단속대기표를 준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기본권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고 심지어는 더많은 비정규직을 양산하기위해 월드컵 기간 노사정위원회에서는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월드컵에만 야단법석인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월드컵은 그저 재미있는 축구 경기일 뿐입니다. 4강에 올라갔다고 가난하고 고통받는 우리의 현실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주한미군에 의해 죽어간 전동록씨와 두 여중생의 억울함이 풀리지도 않습니다. 자본은 월드컵 특수를 맞아 온갖 경품과 상품으로 국민을 유혹하지만 그 이면에는 노동자들이 흘린 피와 땀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외칩니다. “오~필승 코리아” 자랑스런 “대~한민국”이 아니라, “비~정규직 코리아” “산~업재해 코리아” 라구요. 연영석씨의 노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