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일

노무현, 바보 전태일과 ‘벌거벗은 용산’

노무현, 바보 전태일과 ‘벌거벗은 용산’

이른바 추모정국 속에서 두 번째 긴 글을 씁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슬퍼하고 단속적이지만 추모행사 또한 지속되고 있습니다.

‘살아 있는 권력’과 ‘죽은 권력’이라는 대당의 허상

‘살아 있는 권력’과 ‘죽은 권력’이라는 대당의 허상

“이미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대통령 노무현’의 말이 자신의 개혁을 막고 있던 거대자본과 특권의 힘 앞에서 더 이상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자조와 한탄의 그것이었다면, 그의 꿈은 결코 개혁자유주의자들의 힘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과제라는 것을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요

이처럼 되풀이 되는 부당한 현실 속에서 숨 쉬는 우리는 진정 ‘사람’입니까. 산다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서로 기대고 보듬으며 이 야만을 넘어서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는 그런 최소한의 소양을 지닌 사람(人)은 맞습니까.

[새책] 귀하가 좌파로 30년을 살았다면

[새책] 귀하가 좌파로 30년을 살았다면

“그 시대 혁명을 말한 급진적인 노동정치세력들은 ‘혁명의 시대’에 걸맞는 헤게모니를 지니고 있었을까”라는 질문에 한 2년 쯤 후, 한 5년이나 10년 쯤 후에는 어떤 기록들이 확인될 수 있을까나.

‘이행의 정치학’에 대한 비판

‘이행의 정치학’에 대한 비판

대중정치인은 현실에의 작용, 효과, 결과에 대하여 책임진다. 나는 대선 결과를 책임지고 당 대표직을 사퇴했다. 사퇴의 이유는 강령부터 선거운동, 결과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주어진 결과’로부터 출발하여 일관되고 체계적으로 \'전제에 대한 의문시\'로 나아가는 이광일 씨 류의 ‘정치학 강의’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반응하며 책임지는 대중정치인이고자 하기 때문이다.

금민 씨에게 : ‘죽은 논리학’과 ‘살아 있는 정치학’

금민 씨에게 : ‘죽은 논리학’과 ‘살아 있는 정치학’

필자는 금민 씨의 논리적 해석 그 자체를 존중하는 위에서 논의를 진행시키고자 하였지만, 금민 씨는 이에 호응하지 않았고 필자의 질의에 어떤 의미 있는 답도 제공하지 않았다. 그가 한 것이라곤 필자가 ‘사회적 공화국’을 ‘이행기국가’로, 그의 표현대로 ‘역사적 선행형태’로 파악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비판이 전부이다.

사회적 공화주의, 달과 손가락

사회적 공화주의, 달과 손가락

이광일 씨의 재반론에 대하여 또 한 편의 글을 구성하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이광일 씨의 첫 글「진보의 재구성, \'사회적 공화주의\'에 대한 짧은 생각」에 대한 반론에서 던졌던 단 한 가지 질문을 좀 더 구체화할 수 있다는 데 그 최소한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일단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다시 글을 쓴다.

금민 씨에 대한 답변 : ‘현자와 바보’

금민 씨에 대한 답변 : ‘현자와 바보’

금민 씨가 길게 반론을 펼쳤지만, 필자가 제기한 핵심 문제에 대해서는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만족할만한 답변을 하였다고 생각지 않는다. 거기에는 ‘탈배제강령’의 해석과 관련, 지난 대선에서 보인 창조한국당에 대한 한국사회당의 태도도 포함된다.

[진보정당, 길을 묻다] “자주파와 종북주의 달라” vs “완고한 자주파와 끝내야”

[진보정당, 길을 묻다] “자주파와 종북주의 달라” vs “완고한 자주파와 끝내야”

4일 ‘2007년 17대 대선 그 이후, 대한민국 어디로 가나’라는 주제로 진보 학자들의 논쟁이 벌어졌다. 이들은 개혁세력과 진보세력에 패배를 안긴 이명박정부의 성격 규정을 놓고 대립했다. 진보진영 최대 이슈인 민주노동당 ‘분당’ 위기와 해법도 예의 도마 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