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화

[낡은책] 낡은 책이면서 동시에 새책, 이동화 평전

[낡은책] 낡은 책이면서 동시에 새책, 이동화 평전

두산 이동화는 1907년 소지주 집안에서 태어나 머리가 뛰어나 동경제국대 법학부 정치학과를 나온 뒤 파란만장한 평생을 ‘북유럽식 사민주의자’로 살았다.

“한국은 미국에 가장 친한 동맹국가”

“한국은 미국에 가장 친한 동맹국가”

“지금 반전운동에 가장 필요한 부분들은 이라크에서 고통받고 있는 민중들과 직접적인 연계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전쟁이 아니라 학살입니다”

“전쟁이 아니라 학살입니다”

이동화 씨는 “저항세력과 이라크인들의 구분은 없다”며 “주위에서 죽어가는 형제, 자매들을 보고 누가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서울로 돌아온 지난 6개월 나는 이라크를 앓았다

서울로 돌아온 지난 6개월 나는 이라크를 앓았다

▲이동화 한번 다녀온 사람은 병에 걸린다고 했다. 그 곳, 전쟁터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라크를 떠나 서울 행 비행기를 타고 내렸을 때, 그는 눈앞에 펼쳐진 비현실감에 다리가 휘청였다고 했다. 이 밝고 부시고, 어디도 폭파되지 않은 거리. 사람들은 아무도 총을 들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돌아온 지 6개월만에 다시 짐을 쌌다. 현실감을 느끼며 살아야하지 않나. 그는 마치 몇십년 만에 돌아가는 고향을 말하듯 이라크를 말했다. 이제는 큰 포탄이 떨어지지도 않고, 사람들이 떼거리로 죽어나가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라크에 들어왔던 엔지오와 기자들도 한꺼번에 다 빠져나갔다. 그들은 대부분 바드다드 시내에 몰려있었다. 큰 병원과 큰 학교 중심으로. 재원이 턱없이 부족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다만 그것은 몰려있었고, 대부분의 외곽사람들은 종전이 된 지금도 전쟁을 살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폭파된 학교에서 세 개의 방에 145명의 아이들이 모여 공부를 하고 있다. 그리고 공부가 파하면 밖으로 나가 구걸을 하고, 껌과 물을 팔고, 석유를 삥땅쳐 판다. 그 중 구걸을 하는 아이들이 가장 많다. 아이들이라 함은 젖을 막 뗀 아기부터 18세 이하의 청소년까지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