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 잭슨이 미국 정치와 사회에 끼친 영향은 크다. 그는 흑인뿐 아니라 히스패닉, 성소수자 공동체까지 미국 정치의 문을 넓혔다. 오늘날 젊은 세대는 물론이고, 나 같은 기성세대조차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차별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실감하기 어렵다. 잭슨이 1984년과 1988년에 대선에 출마했을 때 미국에는 흑인 주지사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재건 시대 이후 흑인 주지사는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흑인 상원의원도 없었다.
‘나 혼자 잘 살면 행복해질까?’ 같은 생각을 얼핏 했던 것 같다.
한국사회에서 어리다는 이유로, 또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잘 주어지지 않는 사회적 발언권이, ‘변호사’라는 이름을 달면 달라진다.
<어린 왕자>의 작은 별을 뚫고 자라나는 바오밥나무처럼 인권교육이 자칫 인권운동을 침식시킬 우려도 있는 이 때, 인권운동에서 인권교육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인권이 서비스라면 좋겠다. 누구든 인간이 인간인 이상 누려야 하는, 인간으로 살아 갈수 있도록 누구나 보장되어야 하는 보편타당한 권리인 인권과 관련된 사항을 요구하고 편리를 제공받았으면 좋겠다.
사회운동은 사람답게 사는 세상으로 사회를 바꾸는 것이자 동시에 사람을 바꾸는 것이다. 제도와 정책이 아무리 바뀌어도 사람이 바뀌지 않고는, 또한 사람들의 열망이 모여 바꾸어 낸 것이 아니고서는 오래가기 힘들다.
1996년에 나는 인권영화제에 있었다. 그 해 11월 2일부터 8일까지 이화여대에서 열렸던 인권영화제를 취재하기 위해 나는 객석 한 구석에서 메모를 하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부산 구치소 독방에 감호를 받아서 있었다. 힘들어서 목매달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때 지금 경기지사로 있는 김문수가 서울에서 부산까지 이감되어서 왔다. 그때는 교도소 안에서 인권은 없었다. 처우에 대해서 난동부리고 폭동부리고 이러는 것밖에 없었다. 감옥 안에서 난 어디가도 난동부리고 따지고 하니까 지들도 골치 아파서 잘 안 건드리더라. 나는 감옥 안에서 ‘꼴통’으로 찍혀있었다. 김문수가 서울대 출신이라고 하던데 그때 같이 들어온 학생들에겐 내가 빵도 주고 쪽지도 전해주고 그랬다.
이제 한 분야에서 인권이 후퇴하는 상황이 아니다. 인권에 대한 총체적인 공격, 그로 인한 총체적인 위기가 이명박 정권 시기의 인권상황의 특징이다. 이런 상황에 맞게 대응해가는 인권운동은 민중들의 권리투쟁과 굳게 연대해야 하고, 그 권리투쟁을 옹호하면서 선도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공통된 화제로 열띤 얘기를 나누고 있는 활동가들 사이에 앉아 소외감과 그 소외감에 대한 수치심에 무척 불편한 심정이 되었지만, 그저 꾹꾹 버틸 뿐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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