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의눈

[다산인권] 행복은 출산률이 아니잖아요.

[다산인권] 행복은 출산률이 아니잖아요.

“사랑하라. 한번도 연애 안한 것처럼, 결혼하라. 앞으로 이혼하지 않을 것처럼, 아이를 낳아라. 이왕이면 많이 낳아라…그래야 오래 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국가에게 손을 내밀진 말지어다.” 간혹 아니, 매번. 나의 생애주기를 모르는 사람들이 흔히 던지는 질문이 있다. “아이가 몇이세요?” 혹은 “아이가 몇 학년이지요?” “왜 제가 아이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어? 왜 아직 결혼 안 하셨어요?” 물론 나의 나이 지긋한 얼굴로 보아, 추측하며 묻는 우리 사회의 인사치레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사회적 담론은 결혼-출산으로 이어지는 릴레이며, 그 소속이 불분명한 나는 여전히 이방인이 되곤 한다. 허나 결혼한 상태일지라도 아이를 안 가지거나 아이가 안 생겨서 없거나, 결혼상태가 아닌 비혼의 경우에도 출산의 문제는 다각도로 나타날 수 있건만 여전히 ꡒ왜?ꡓ로 시작되는게 지금의 현실이다. 개인적으로 출산과 양육의 책임을 지고 있지는 않지만 최근 ꡐ저출산과 고령화사회ꡑ에 대한 높으신 분들의 탁상행정과 정통적 가족주의를 버리지 않는 사회적 인식을 바라보며 씁쓸함을 떨칠 수 없다. 어찌나 관심들이 많은지 처음 보는 사람에게조차 몇 명의 아이를 출산했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사회치고는 출산과 양육에 대한 기본 권리보다는 의무를 강요하는

[다산인권] ‘서울 에어쇼 2005’ 다시 보기

[다산인권] ‘서울 에어쇼 2005’ 다시 보기

지난달 13일 유럽 평화운동의 관심은 영국 런던의 한 선창지역으로 일제히 집중되었다. 이곳에 있는 한 국제전시회장에서 유럽 최대의 국제 무기 박람회 DSEi(Defence Systems & Equipment International)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2년마다 한 번 씩 열리는 DSEi는 그 규모도 규모지만 특히 세간의 관심으로 떠오르게 된 계기가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4년 전인 2001년 9월 11일, 테러범들이 여객기를 타고 미국의 세계무역센터 건물로 향하고 있을 때 미국, 이스라엘, 영국은 14개국 이상의 아랍 국가들과 함께 DSEi에서 무기 쇼핑을 하고 있었다. 당시 전 세계 수많은 행사들이 그 날의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취소되었지만, 그 곳에 모인 각국의 각료들과 무기거래 상들은 이에 아랑곳 않고 4일 동안이나 거래를 계속했다. 테러지원 국가라고 비난받던 국가들도 이 기간 동안은 당당히 구매자로서 초청 받아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소위 자유 수호 국가들이 주장하는 정의가 얼마나 위선적인지, 그리고 지구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무력분쟁과 인권유린의 이면에 세련되게 치장된 거대한 폭력생산시스템의 실상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국제적인 무기거래의 해악과 반 인권적 성격은 이미 오래 전부터 줄기차게 지적되어 왔다. 이는 단순히 국가 간의

[다산인권] 권리를 위한 팽성 주민들의 투쟁

[다산인권] 권리를 위한 팽성 주민들의 투쟁

평택미군기지 확장예정 면적 총 349만평 중 285만평은 평택시 팽성읍 마을들이다. 이곳 주민들은 하나같이 기지확장을 바라지 않는다. 힘들게 가꿔온 농토와 정든 고향을 떠나 실향민으로 떠돌고 싶은 사람은 누구 하나 없다.

[다산인권] 이 한 가지 소망

[다산인권] 이 한 가지 소망

나는 인권이란 자기결정권 곧 자신의 신체에 대한 자율과 통제권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자기 또는 자신이란 특수한 개인이다. 세계 전체는 특수한 개인들로 구성되고, 그들은 서로 연관되어 통일된 체계로서 복합적 개인을 형성한다. 따라서 나는 우리가 ‘평택’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 미군기지 확장이 아니라 특수한 주민 개개인의 이야기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싶다. 60대 후반을 넘긴 주민들은 어린 시절을 보낸 일제 시대를 기억하고 있다. 평화바람 옆집에 사는 주민 민○○ 할아버지는 그 시절을 이렇게 회상한다. “아버지가 농사 진 것을 마름 보는 사람 집 마당에 다 털어 주고 나서 얼마큼 얻어먹는 거여. 그때 당시에 내가 배가 고파서 죽겄는데, 요만헌 바가지에다가 보리 잔뜩 섞인 밥에다가 짠 고등어 요만헌 거를 주면서 ‘빨리 먹어 임마.’ 아버지가 당신이 뭔데, 자기 안 먹고 나 갖다 주고 굶은 거여. 일을 죽도록 해구서. 그때 당시엔 몰랐는데, 기가 멕힌 일이지.” 민 할아버지를 포함해 대추리 주민 약 150세대는 K-6이라고 불리는 커다란 미군기지의 얇은 철조망에 의해 인근 마을들과 분단돼 있다. 케이-6이 들어서기 10년 전인 1942년께 일본은 제2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