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점에서 영화 <지슬>은 영화로서도 볼 만하다. 단지 4.3항쟁을 그린 점만이 아니라. 외려 4.3항쟁은 이런 방식의 영화적 장치를 통해서 훨씬 우월한 성취를 일궈냈다. 즉 생마르게 그대로 전달해내고 역사를 짜내고 우리에게 강요하는 게 아니라, 소리 없이 아우성치는 그 죽음들이 초혼(招魂)하는 듯한 영화의 억누름 속에서 살아난다.
사람은 이념에 의지해 살아가곤 한다. 그것은 거시적인 비전일 때도 있고, 사사로운 명분일 때도 있다. 미지의 상태를 견디는 일에 취약한 우리는 불안을 벗어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한다. 탐욕을 최선의 가치로 삼는 세계에서 인간이 불안을 벗어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은 무엇이며 그에 걸맞은 심성은 어떤 것일까? 냉혹한 환경에서 온화함이나 너그러움 따위는 미덕이 될 수 없다. 혼란을 타개할 이상이 필연성을 가진 체제가 되고, 삶을 안정시켜줄 규범으로 제시될 수 있으려면 설득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 논리에 반드시 진실만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므로 이념은 어쩌면 허무한 거짓말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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