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말미에서 월터가 살해된 것이 분명하지만 아들이 돌아오리라는 희망을 품은 크리스틴처럼 용산 시민들도 희망을 가져야 한다. 권력이 진실 앞에서 얼마나 무능한지 몸으로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그것이 공권력에 희생당한 자들의 유일한 희망이다.
<체인질링>은 192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현재의 한국과는 다르지 않겠는가? 그러나 정답은 오늘의 한국은 ‘과거의’ 한국을 닮아가고 있으며 점점 퇴행하고 있다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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