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공산당은 1927년 12월과 1928년 2월에 각각 두 개의 3차 당대회를 치렀다. 이로써 일본 제국주의로부터의 독립을 위한 민족해방과 노동자·농민의 해방을 목적하는 혁명가들의 비밀 결사체였던 조선공산당은 엄중한 조직적 분열을 맞이했다.
당 중앙의 주류 세력이었던 레닌주의 동맹은 1928년 2월에 별도의 당대회를 치르게 된다. 1925년 4월 창당 이후 하나의 조선공산당을 유지하던 조선의 사회주의 운동은 양당 체제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조선공산당은 해산 결정이 내려진 1928년 12월까지 당의 분열 상태를 극복하지 못하였고, 코민테른이 2차 당대회 결정을 내렸던 1927년 4월 결정서에 근거하여 서로가 적법한 계승자의 지위를 두고 다투었다.
아직 여름의 기운이 다 가시지 않은 1926년 9월 3일 정오의 기온은 24.6도였다. 삼선평으로 넘어가기 위해 지나야 하는 혜화문 부근 산속에 은밀하게 세 명의 사내가 모였다. 그 사내들의 이름은 김철수, 원우관, 신동호였다. 이들은 이곳에 모인 이유는 조선공산당의 중앙집행위원회 재건을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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