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회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이렇게 빈털터리가 된 상황에서는 더 이상의 경쟁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가 느끼고 있는 것이다. 사회로부터의 배제. 빚으로부터는 헤어 날 수 있으나 희망이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기업을 운영하다 채무 초과 상태에 빠진 경우에 파산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가정경제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도덕적인 문제가 아니다. 갚을 수 없는 빚을 갚으라고 하는 것처럼 비도덕적인 행위도 없을 것이다.
신용불량자라는 낙인을 떼고, 채권 추심에 시달리는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가장 절실한 사람은 금융피해자, 당사자들이다.
파산을 선언하더라도. 자신의 신용정보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매년 자신의 건강검진을 하는 것처럼 중요한 일이다.
인간이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권리의 내용들, 인간의 자유, 존엄, 자부심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존중 속에 살 수 있는 기회와 조건을 금융피해자에게 빚을 청산할 때까지 빼앗아 버린다. 그렇다면 금융피해자는 무엇을 요구 할 것인가?
“갚지도 못할 것을 왜 빌리는가”.. 그러면 우리는 여기에서 체제에 우선하는 문제에 즉, 현 체제의 치부와 맞닥뜨리게 된다. “가난한 자는 죽어야 하는가”
아래의 글은 개인회생 절차를 밟고 있는 이영미(가명) 씨의 일기이다. 부산에 살고 있는 이영미 씨는 자신의 삶을 그대로 다룬 일기를 미디어 참세상에 기고해 주셨다.
신용불량자의 공식은 간단하다. 불안정노동자로 노동기본권을 강탈당하고, 임금은 떨어지고, 가계는 빈곤에 허덕이게 되고 원금조차 갚지 못해 이자에 허덕이게 되다 생계형 자살을 택하거나, 주민등록증이 말소되더라도 그냥 버티고 사는 거다.
올해는 금융피해자들에 대한 파산선언을 독려하는 활동들이 전국 각지에서 구체적인 결실을 맺을 것으로 기대되는 바, 신용불량자와 파산에 초점을 둔 연재기획을 통해 독자들과 함께 '파산'에 대한 적극적인 실천방식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기업이나 은행들도 도산 위기에 놓이면 국가는 수조, 수천억에 이르는 공적자금을 쏟아 부으며 살길을 열어 준다. 그럼에도 정부는 거액의 빚과 생활고에 빠진 국민들에게는 그 빚을 떠안고 죽으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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