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스라인

이명박 시대 법치의 실체

이명박 시대 법치의 실체

이명박 시대에는 인권을 보호해야 할 법치가 ‘권리 침해의 합법화’를 위한 것으로 왜곡되고 있다. 기업의 이윤이 우선시하고 사회적 불평등을 조장하는 법 운영을 위해 법치를 들먹이는 것은 법치주의의 악용이며 아전인수이다. 법치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존엄을 바탕에 두고 기본권을 보장하며 실질적 평등을 추구하는 내용을 담은 법률이 전제되어야 한다.

폴리스라인 바로 뒤 검거조, ‘백골단’의 귀환?

폴리스라인 바로 뒤 검거조, ‘백골단’의 귀환?

경찰청이 폴리스라인을 넘는 시위대를 전원 연행하겠다며 집회 시위 시 경찰의 대응 방식을 “현장 검거 위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혀 노동사회단체들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현장노동자] 국가폭력이 강화되고 있다

[현장노동자] 국가폭력이 강화되고 있다

이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 먹은 이유는 대추리 군대 투입 때문이다. 원래 쓰려고 했던 글은 구속자 현황을 비롯한 각종 국가폭력에 대한 통계를 보여줌으로써 “국가폭력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란 주장을 하려는 것이었다. 더 나아가 민주주의가 발전한다 하더라도 국가폭력은 줄어들지 않으며, 국가폭력은 자본주의 위기 극복 방식의 가장 일반적인 방법임을 통계로써 검증하고 싶었다. 즉 국가폭력을 극복하는 방법은 단 하나, 노동해방 밖에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아니 국가폭력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노동해방은 없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 독자들이 예상하듯, 당연히 나의 이런 시도는 실패했다. 민주주의의 발전에 대한 지표에 관련한 자료를 구하지 못했고 국가폭력에 대한 체감온도를 눈에 보이는 통계로 보여주기에도 자료는 부족하고, 내 능력 역시 모자랐다. 하지만, 인터넷에 “폭력”이란 단어를 처넣는 것만으로도 미처 내가 의식하지 못했던 투쟁과 탄압들을 알 수 있었다. 비록 원했던 결과들을 검색하진 못했지만, 오히려 국가폭력이 더 심해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선 더 확신하게 됐다. 하이스코, 하이닉스, 코오롱 투쟁과 그리고 지금 내가 말하지 않더라도 동지들의 마음 속에 있을 최근의 끔찍한 국가폭력 사례들은 절대 잊어버려선 안 되는

집회장을 가로지른 폴리스라인

집회장을 가로지른 폴리스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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