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크라이시스

에이리언 대 프레데터, 혹은 MAGA와 AI의 만남

에이리언 대 프레데터, 혹은 MAGA와 AI의 만남

중국에 와 있었기 때문에 나는 마르크스를 언급해 보기로 했다. 결국 AI가 인간의 지적재산(IP)을 무자비하게 흡수하는 현상은 자본주의 정치경제에 대한 마르크스의 기본적인 통찰을 놀라울 정도로 입증하는 사례가 아닌가. 인간의 창의성과 노동이 소외된 채 거대한 객관적 힘으로 변해 우리의 삶을 의지와 무관하게 바꾸는 일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다시 보는 폴리크라이시스, 우리는 신자유주의 질서 붕괴 증후군을 넘어서고 있는가?

다시 보는 폴리크라이시스, 우리는 신자유주의 질서 붕괴 증후군을 넘어서고 있는가?

2022년, 나는 그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폴리크라이시스’라는 표현을 처음 사용했다. 이 개념에는 처음부터 비판도 따랐지만, 일정한 설득력을 얻었다. 오늘날의 상황은 여러 면에서, 그리고 몇몇 지역에서는 그때보다 더 극단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폴리크라이시스라는 개념은 여전히 특정 맥락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의미를 지닌다.

트럼프 2기 두 달, 우리가 알던 세계의 종말

트럼프 2기 두 달, 우리가 알던 세계의 종말

반(反)트럼프 진영은 공포에 질린 채 무력한 분노 속에서 끊임없이 불길한 뉴스만 계속 찾아보는 행위을 하거나, 효과 없는 시위에 나서거나, 체념하고 철수하는 상황에 내몰려 있다. 후자의 선택지는 일정 수준의 안전을 보장받고 있는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일 뿐이다. 트럼프 시대를 따라잡는 것은 지적, 감정적, 신체적 에너지를 요구하는 일이다. 그것도 비교적 안정적인 종신 교수직에 있다면 그나마 견딜 수 있다. 하지만 해고된 공무원, 테러 혐의로 기소 위협을 받는 시위자, 강제 추방을 앞둔 이민자라면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이 상황을 직접 겪고 있지 않은 이들에게 이 감각을 전달하려 한다면, 내가 떠올리는 유사한 경험은 팬데믹 시절의 막연한 불확실성과 공포다.

‘폴리크라이시스’ 시대의 아프리카와 절대 빈곤

‘폴리크라이시스’ 시대의 아프리카와 절대 빈곤

세계 빈곤 감소는 이제 안정성 확보 여부에 달려 있으며, 이는 경제 성장과 빈곤 탈출의 필수 조건이다. 갈등과 부채 문제가 심화되는 현재 상황은 빈곤 종식에 있어 국제 사회의 목표를 더 멀어지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