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파농을 읽으며 겪었던 어려움은 세 가지에서 비롯되었다. 첫째는 폭력에 대한 그의 무비판적 찬양이었다. 그것은 1920년대 파시스트 사상가들에게서 나타났던 '정화로서의 폭력'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물론 그 뿌리는 전혀 다르다. 파시스트의 목적이 우월성의 강화를 통한 실체화라면, 파농은 평등의 긍정과 일상적 굴욕을 극복한 자아 실현을 지향했다. 그럼에도 불편했던 건 사실이다.
참세상은 여러분의 소중한 제보를 이메일을 통해 받고 있습니다.
독자제보 E-Mailnewscham@gmail.com
이메일
비밀번호
이메일로 회원가입비밀번호 찾기
가입하면 기사에 댓글을 쓸 수 있습니다. 입력한 이메일로 인증 메일을 보내 드립니다.
닉네임 (댓글에 표시됩니다)
비밀번호 (8자 이상)
웹사이트
이미 가입했다면 로그인
가입한 이메일을 입력하면 비밀번호 재설정 메일을 보내 드립니다.
로그인으로 돌아가기
새 비밀번호 (8자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