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

왕후이와의 대화, ‘짧은 20세기’와 역설적 21세기

왕후이와의 대화, ‘짧은 20세기’와 역설적 21세기

인류세는 그 이전의 어떤 것과도 완전히 다르다. 생태적 관점에서 우리는 미지의 영역에 들어와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정치 무대의 행위자들은 익숙한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고, 익숙한 19세기적 각본을 연기하고 있다. 우리는 전쟁과 제국주의의 재등장을 겪고 있으며(이 둘은 주로 미국에 의해 추동되고 있다), 동시에 산업화, 혹은 보다 정확히 말해 재산업화의 의미를 둘러싼 치열한 논쟁도 경험하고 있다. 우리의 현재는 이중의 얼굴을 지니고 있다.

홀로코스트 산업의 죽음

홀로코스트 산업의 죽음

홀로코스트에 대한 비판을 곧 이스라엘에 대한 배신으로 보는 거의 모든 홀로코스트 연구자들은 가자 학살을 규탄하기를 거부했다. 홀로코스트 연구와 추모를 전담하는 기관 가운데 팔레스타인인의 대량 학살을 역사적 맥락 속에서 연결하거나 공개적으로 규탄한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아우슈비츠에서는 어떤 불길이 타올랐는가?

아우슈비츠에서는 어떤 불길이 타올랐는가?

홀로코스트는 세계사에서 가장 집중적이고 체계적인 대량 학살이었다. 그것은 독자적인 논리를 가졌고, 그 자체로 유례없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 도덕적·정치적 중대성이 동등한 물질적 규모로 환원되거나, 심대한 자원 배분의 결과였거나, 산업주의 역사와 깊이 맞닿아 있었다고 상상하는 것은 오류다. 아렌트가 홀로코스트에 대한 적절한 설명이 감정적 과잉이나 멜로드라마가 아니라, 근대성에 대한 냉철한 이해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 옳았다면, 우리 역시 근대 산업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설명할 때 진부한 클리셰를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차가운 기억으로 굳어버린 뜨거운 용암: 라인하르트 코젤렉의 전쟁의 끝들

차가운 기억으로 굳어버린 뜨거운 용암: 라인하르트 코젤렉의 전쟁의 끝들

1923년 작센 주 괴를리츠에서 태어난 라인하르트 코젤렉(Reinhart Koselleck)은 훗날 계몽주의와 19세기 초를 연구한 탁월한 역사학자가 되었고, 서독에서 그의 세대를 대표하는 저명한 역사 이론가—어떤 이들은 역사 철학자라고도 불렀다—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방대한 개념사 사전인 ⟪역사적 기본 개념들⟫(Geschichtliche Grundbegriffe)의 편집자이자 지적 영감을 제공한 인물이기도 했다. 그가 영어권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저작은 ⟪과거의 미래 : 역사적 시간의 의미론에 관하여⟫(Futures Past: On the semantics of historical time)이다.

독일은 왜? 문제는 자본주의

독일은 왜? 문제는 자본주의

독일 당국이 팔레스타인인에게 연대를 표명하기 위해 나서는 자국 인민을 탄압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인민의 그런 행동이 지배계급의 이익과 상반된다고 여기는 것이 무엇보다 큰 이유일 것이다. 역시 문제는 다수의 이해관계와 소수의 이해관계를 대립시키는 자본주의라고 봐야 한다.

[인권오름] [최현정의 인권이야기] 국가폭력이 당사자와 그의 관계,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

[인권오름] [최현정의 인권이야기] 국가폭력이 당사자와 그의 관계,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

국가폭력이 한 피해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 볼때, 우리는 그 당사자의 삶을 생각한다. 그러나 폭력이 피해자의 몸과 마음을 넘어 그 사람의 삶 전체를 변화시킨다는 점을 놓고 볼때, 폭력은 개인을 넘어 그를 둘러싼 관계와 공동체 전체에도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이를 주목하고 바라봐야 한다.

[해방을 향한 인티파다] 제가 정말 두려운 것은

[해방을 향한 인티파다] 제가 정말 두려운 것은

제가 정말 두려운 것은 이렇게도 저렇게도 생각하려 하지 않는 영혼을 버린 사람들입니다.

[해방을 향한 인티파다] 희생자의 과거에서 광기의 가해자로 치닫는 이스라엘

[해방을 향한 인티파다] 희생자의 과거에서 광기의 가해자로 치닫는 이스라엘

단 한 명의 실종된 군인 때문에 150만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고통 받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이스라엘에서 나와야 하는 말은 “결코, 다시는” 광기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