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야학

[폴리스 뉴스] [홈리스뉴스 20호-지금, 아랫마을은]깡깡이는 어떻게 한글반에 들어왔을까?

[폴리스 뉴스] [홈리스뉴스 20호-지금, 아랫마을은]깡깡이는 어떻게 한글반에 들어왔을까?

[지금, 아랫마을은] 여섯 개의 반빈곤 단체가 모여 있는 아랫마을의 활동을 알리는 꼭지입니다. 심심하게 말하자면 SNS를 통해 이곳에 오게 됐고, 좀 더 이야기를 풀어보자면 김은희이자 깡깡이에게서 빈곤은 늘 숙적인데, 그 까닭은 고등학교 때 가난을 마주하고 꿈을 미루게 된 3년이란 긴 시간들 때문이다. 어렸을 때 나는 그림 그리는 걸 취미로 삼았고 커서는 그림을 그려 먹고 사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고1 때까지는 내가 그림쟁이로 살아갈 것이라 믿었었다. 미대에 진학하기 위해 입시미술을 해야 한다 생각했고 2학년 때부터 부모님께 미술학원을 보내 달라 졸랐다. 하지만 월 50만원은 기본, 방학마다 특강으로 몇 백이 깨지는 게 일수인 학원비를 우리 집은 감당할 수 없었다. 나는 꿈을 접고 사회복지학으로 전공을 결정했다. 나처럼 ‘돈이 없어 꿈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한신대에 들어갔다. 대학교에 들어와서는 학생ㆍ노동ㆍ성소수자인권 운동을 하는 선배들을 만나게 됐고 그들과 함께 다니며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닦게 되었다. 이곳저곳을 오가며 反빈곤 운동ㆍ교육 운동이 나의 마음을 깊게 울린다는 것을 작년쯤 깨달았을까. 앞날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뜸했던 연대이자 운동을 어떤 실천으로

[폴리스 뉴스] [홈리스뉴스 19호-기고]손가락이 부러지다

[폴리스 뉴스] [홈리스뉴스 19호-기고]손가락이 부러지다

[기고]는 홈리스 상태에서 겪게 되는 일상사나 느낌, 의견들을 보내 온 글입니다. 저는 홈리스야학 학생입니다. 지금은 공공근로를 다니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작년 말에 손을 다치면서 겪었던 일들을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동주민센터 공공근로 신청 작년 12월말, 구세군을 통해 다니던 일자리도 끝나갈 때쯤 아는 형이 공공근로 모집한다는 소식을 전해줘서 동주민센터에 가서 공공근로 신청을 했습니다. 신청이 끝나자 담당자가 한 마디 합니다. “1월 28일날 문자나 전화가 안 오면 떨어진 줄 아세요” 그 말에 전 “일단 기대는 해 봐야죠” 하구 나왔습니다. 방심하구 지내다가 방세도 3개월째 밀리고, 한 가닥 실타래를 부여잡는 기분이었습니다. 좀 부은 거 일주일 참으면 되겠지 그날 저녁에는 노숙인 추모제 준비를 도와주러 참여했다가 뒷풀이 자리에서 술을 한 잔 먹었습니다. 한 잔 또 한 잔 먹다보니 술에 취했습니다. 그렇게 뒷풀이가 끝나구 집에 가는 길에 보도블록 경계석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구 집에 와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깨어보니 손등과 손가락이 많이 부어 있었습니다. 홈리스 야학에 왔더니 사람들이 병원에 가보라고 했습니다. 돈도 없었고, 좀 부은 거 일주일 참으면

[폴리스 뉴스] [홈리스뉴스 11호] 기고글 – 나의 하루

[폴리스 뉴스] [홈리스뉴스 11호] 기고글 – 나의 하루

최저생계비를 받고 살고있는 단조로운 하루 일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