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휴가

[평화누리통일누리] 군부독재를 넘어선 어머니의 분노와 용기

[평화누리통일누리] 군부독재를 넘어선 어머니의 분노와 용기

1980년 5월 21일은 오늘처럼 부처탄생일이었어요. 그래서 다른 병원은 다 쉬고 우리 병원은 기독병원이 라 정상근무를 하니까 우리병원으로 집중적으로 온 거지. 내가 간호감독이라, 막 밀려오는 환자들의 (응 급상태에 따라) 우선순위를 결정했지요. 그런데 너무 급하니까 우선 우리 피를 뽑아 일단은 수혈부터 시 작하고 그랬어요.

당신은 무엇을 기억하십니까?

당신은 무엇을 기억하십니까?

김 : 안녕하세요 <영화 날개를 달다>의 김소혜입니다. 안 : 안창규입니다. 김 : 겨울이 언제 가나했더니 어느새 3월이 되었고, 봄이 성큼 다가 온 것 같습니다. 3월의 시작은 3,1절과 함께 하는데요. 그래서 미디어에서는 과거에 대한 기억들을 되돌리는 특집들이 많이 만들어집니다. 그러고 보면 영화 역시 과거를 소재로 극화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안 : 그렇습니다. 그러나 많은 영화들이 과거를 소재로 극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한 편에서는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김 : 그래서 오늘은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으로서 영화라는 매체를 사고하는 몇 편의 영화들을 모아봤습니다. 만약 우리가 여전히 과거의 상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면, 우리는 그 사건에 대해서 어떤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요? 지금부터 영화를 통해서 그들의 시도를 만나보시겠습니다. ——————————————————————– 김: 어쩌면 우리는 헐리우드의 서사 영화나, 역사 속 인물에 대한 전기영화들에 익숙해져있는데요. 지금 살펴본 영화들을 보면 과거보다, 그것을 기억하는 현재 우리들에게 더 방점이 찍혀있는 것 같습니다.

몇몇 네티즌들의 제보 3건, ‘화려한 휴가’에 대한……

몇몇 네티즌들의 제보 3건, ‘화려한 휴가’에 대한……

몇 곳에 올려 둔 ‘화려한 휴가’에 대한 논평을 접한 몇몇 네티즌들이 3가지 제보를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내용을 추가로 올려봅니다. 추가 1 > 과감하게 생략되어버린, 도청 앞 광장에서의 ‘민주화성회’ 1980년 5월 광주는 저 유명한 프랑스 ‘파리코뮨’을 훨씬 능가하는 평화와 자치로 유명하다. 당시 광주시민들은 상당한 자치력을 발휘하는데 그 핵심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도청 앞 광장에서 몇 차례 열렸던 ‘민주화성회’다. 전남 도청 앞 분수대를 연단으로 삼아서 몇 차례 진행되었던 이 ‘민주화성회’에서는 ‘누구든 발언하고 모두 함께 토론’했던 자치력의 증명이었다. 또한 평화의 측면으로는 절도사건이나 폭력사건이 몇 건 보고된 것으로 알려진 ‘파리코뮨’ 기간과는 달리, ‘5월 광주’의 10일 동안은 단 1건의 절도사건도 폭력사건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1980년대부터 이런 광주의 정신을 지칭하여 ‘大同(대동)정신’이라고 불렀다. 1980년대 ‘5월 진상규명투쟁’ 당시에도 이런 ‘대동정신’ 때문인지, 광주에서는 저녁식사는 길거리에서 시민들이 무료로 제공하는 다양한 종류와 많은 양의 식품들로 해결할 수 있었다. 추가 2 > 시민군 구성의 주요한 한 축, 서민층 축에도 못 들었던 무연고자들 1980년 5월 이전의 광주에는 이른바 ‘넝마주이(등에 큰

영화 ‘화려한 휴가’에 대한 논평에 부치는, 시 한 수

영화 ‘화려한 휴가’에 대한 논평에 부치는, 시 한 수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 혁명시인 率然(솔연) 김남주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오월은 바다처럼 그렇게 서정적으로 오지도 않았고 오월은 풀잎처럼 그렇게 서정적으로 눕지도 않았다 오월은 왔다 피 묻은 야수의 발톱과 함께 오월은 왔다 피에 주린 미친개의 이빨과 함께 오월은 왔다 아이 밴 어머니의 배를 가르는 대검의 병사와 함께 오월은 왔다 자유의 숨통을 깔아뭉개는 미제 탱크와 함께 왔다 노래하지 말아라 오월을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은 바람처럼 그렇게 서정적으로 오지 않았고 오월은 풀잎처럼 그렇게 서정적으로 눕지도 않았다 오월은 일어섰다 분노한 사자의 울부짖음과 함께 오월은 일어섰다 살해된 처녀의 피 묻은 머리카락과 함께 오월은 일어섰다 파괴된 인간이 내지르는 최후의 절규와 함께 그것은 총칼의 숲에 뛰어든 자유의 육탄이었다 그것은 불에 달군 철공소의 망치였고 그것은 식당에서 뛰쳐나온 뽀이들의 식칼이었고 그것은 술집의 아가씨들이 순결의 입술로 뭉친 주먹밥이었고 그것은 불의의 대상을 향한 인간의 모든 감정이 사랑으로 응어리져 증오로 터진 다이너마이트의 폭발이었다 노래하지 말아라 오월을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바람은 야수의 발톱에는 어울리지 않는 시의 어법이다

이제야 ‘화려한 휴가’를 봤다. 그래서 그 논평을 마무리한다.

이제야 ‘화려한 휴가’를 봤다. 그래서 그 논평을 마무리한다.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왜곡된 ‘역사적 진실’ 그리고 ‘2007년의 한국사회’ 2000년대 한국 지하철의 풍경 요즘의 시대에서 읽혀지는 뚜렷한 대중적인 유행 중의 하나가 ‘영상’이라고 보인다. 서울 지하철을 타면 아주 쉽게 이어폰을 귀에 꼽고 영상단말기의 포로가 되어 있는 어린 친구들을 쉽게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이런 풍경 덕분에 디지털 문화에 둔감한 60대 이상의 노년층들도 약간만 눈치가 빠르면 이런 대중 유행 풍조에 대해서 이미 감을 잡고 있을 정도가 되었다. 서울에서 시작된 이런 광경은 수년 안에 모든 지방 도시의 풍경을 갈아치우게 될 가능성이 높다. 건축부문의 철근콘크리트나 교통부문의 자동차·비행기나 에너지부문의 전기·석유 그리고 디지털의 발명 따위와 같이 1900년대가 만들어 놓은 인류의 문명 중에서도 ‘영화’는 이제 식상할 정도로 당연하게 ‘대중 오락물’의 지존으로 취급되는 위치에 있다. 세계의 초거대자본 또는 (초거대자본에서 독립된)중·소의 ‘영화자본’들의 수가 일일이 헤아리는 것이 불가능 할 정도로 많다는 사실이 그 한 증거가 되겠다. 광역시 정도만 되어도 승용차로 5분 이내의 거리에 8~10관 쯤을 갖춘 영화상영관이 3~4개씩 있다는 사실도 이러한 대중유행의 뚜렷한 증거가 되기에 충분하다. 이는 1800년대 독일의 마르크스나,

잔악한 학살자, 너희가 폭도다!

잔악한 학살자, 너희가 폭도다!

<화려한 휴가>에서 밝히지 못한 발포주역과 학살원흉. 아직도 미궁에 빠져 있는 피해자들의 수효. 진압군이 복용했다는 최음제와 같은 약물의 존재. 헬기를 동원한 가공할 민간인 학살. 이런 것들과 아울러 항쟁당시 미국의 구실과 광주를 제외한 국민 모두의 침묵까지 되짚어야 한다.

‘화려한 휴가’의, ‘피 묻은 역사적 진실’ ─

‘화려한 휴가’의, ‘피 묻은 역사적 진실’ ─

( ── 2/3에 대한 부연 ) 10년간 지속된 ‘도청전투’ 나는 아직 ‘화려한 휴가’를 관람하지 않았지만 ‘광고 예고편’에 나온 장면에 연출된 군중의 수를 어림잡아 보고는 이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1980년대 중후반의 가두시위에 대한 내 기억에 의하면 그 정도의 사람 수로는 전남도청 앞 광장이나 금남로(전남도청 정면으로 난 도로명칭)1가를 절대로 채울 수가 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의아스러움은 나중에 알고 보니 영화 속의 세트장이 전남도청만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도로와 건물은 ‘축소판’이었다는 사실을 접하면서 풀렸다. 이것이 중요한 것은 그 전남도청 앞 광장이 1980년대 10년 내내 4천700만이 생활하는 한반도 내에서 휴전선 그 다음으로 살벌하고도 치열한 ‘戰線(전선)’이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5월이 돌아오면 ‘5월 항쟁’ 관련 행사의 사회적 파급력을 최소화시키기 위해서 전두환 정권은 모든 수단을 다 동원했다. 80년대 초반에는 ‘5월 항쟁’ 관련자들이나 유족들을 강제로 관광버스에 실어서 외지로 내돌려버림으로써 ‘5월 항쟁’ 관련 집회·시위·행사의 사회적 파급력을 격감시키려고 했다. 또한 학생운동이 대중화되기 시작한 80년대 중후반에 들어서는 ‘SY44총류탄(앞쪽이 플라스틱과 금속으로 가운데 부분은 합성목재로 뒷부분은 플라스틱으로 제작된 원통형 최루탄으로

‘화려한 휴가’가 암매장해버린, ‘피 묻은 역사적 진실’ ─ 2/3

‘화려한 휴가’가 암매장해버린, ‘피 묻은 역사적 진실’ ─ 2/3

2/3 대중 상업오락물이 매장해 버린 역사적 진실, 1 ── 5.18광주의 언론 ‘투사회보’ 첫 번째는 ‘암매장’ 당한 것은 518이라는 10일간의 항쟁을 始作(시작)시킨 인쇄물인 ‘투사회보’다. “살인마 전두환이 찢어 죽이자.”는 구호가 나오고 그 구호가 손 글씨로 제작한 현수막에까지 사용될 정도로 잔혹·참담했던 ‘국군에 의한 시민 학살’에 대해서 가장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대응했던 ‘투사회보 제작·배포 그룹’이 통째로 역사적인 암매장 당한 것이다. “6.25전쟁 때도 이렇게 잔인하지는 않았다.”는 할머니들의 증언만큼이나 무시무시했던 ‘시민들에 대한 국군의 무차별 도륙’을 광주시민들에게 폭넓게 인쇄물을 통해서 알려내고, 동시에 부당하고 반인륜적인 폭력에 대한 자위권 발동을 주장하면서 그 구체적인 방법까지도 제시했던 ‘투사회보’가 518이라는 처절한 항쟁을 ‘始作(시작)’시킨 것이다. 지금 광주광역시의 ‘시외·고속버스 종합터미널’과 ‘현대-기아자동차 광주공장’이 있는 곳이 광천동인데 1980년 당시 이곳은 영세공장들이 밀집해 있던 곳이었다. 가내수공업 수준으로 영세한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많았던 그곳에 전남대 출신의 윤상원·정재호·박기순 등이 운영하던 노동야학인 ‘들불야학’이 있었다. 그리고 그 ‘들불야학’의 강학(야학에서 가르치는 사람)과 학강(야학에서 배우는 사람)들이 ‘녹두서점’이라는 사회과학서점을 ‘편집실’로 삼아 ‘등사기(수작업 인쇄기기)’로 찍어낸 ‘투사회보’는 TV도 전화도 모두 끊겼던 1980년 5월 광주의 유일한 ‘언론’이기도 했다.

‘화려한 휴가’가 암매장해버린, ‘피 묻은 역사적 진실’ ─ 1/3

‘화려한 휴가’가 암매장해버린, ‘피 묻은 역사적 진실’ ─ 1/3

대중 상업오락물 ‘화려한 휴가’가 암매장해버린, ‘피 묻은 역사적 진실’ 그리고 한국사회 ── 1/3 2000년대 한국 지하철의 풍경, 그리고 독일의 ‘칼 마르크스’ 요즘의 시대에서 읽혀지는 뚜렷한 대중적인 유행 중의 하나가 ‘영상’이라고 보인다. 서울 지하철을 타면 아주 쉽게 이어폰을 귀에 꼽고 영상단말기의 포로가 되어 있는 어린 친구들을 쉽게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이런 풍경 덕분에 디지털 문화에 둔감한 60대 이상의 노년층들도 약간만 눈치가 빠르면 이런 대중 유행 풍조에 대해서 이미 감을 잡고 있을 정도가 되었다. 서울에서 시작된 이런 광경은 수년 안에 모든 지방 도시의 풍경을 갈아치우게 될 가능성이 높다. 건축부문의 철근콘크리트나 교통부문의 자동차·비행기나 에너지부문의 전기·석유 그리고 디지털의 발명 따위와 같이 1900년대가 만들어 놓은 인류의 문명 중에서도 ‘영화’는 이제 식상할 정도로 당연하게 ‘대중 오락물’로 취급되는 위치에 있다. 세계의 초거대자본 또는 (초거대자본에서 독립된)중·소의 ‘영화자본’들의 수가 일일이 헤아리는 것이 불가능 할 정도로 많다는 사실이 그 한 증거가 되겠다. 광역시 정도만 되어도 승용차로 5분 이내의 거리에 영화상영관이 3~4개씩 있다는 사실도 대중 유행 현상의 뚜렷한 증거가 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