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약간의 스포일러 – 영화 장면에 대한 설명 – 가 있습니다. 영화 감상에 있어 스포일러의 영향을 “많이” 받는 분은, 영화를 보신 후에 이 글을 읽으십시오.]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만큼 곤혹스러운 게 있을까. 의지와 의사 표명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때, 상황은 절망적이다. 선택의 기회가 있을 때는 의지와 의사에 따라 휩쓸리거나(동참하거나) 또는 배제되는(동참하지 않는) 결과를 예측할 수 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에는 일방적으로 휩쓸리고 만다. 순응하거나 저항하거나 사후적인 기회는 있겠지만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선택의 순간은 늘 절망과 패배의 기억으로 존재한다. 이 땅에서 자유민주주의와 반공은 선택이 아니라 태생의 전제였다. 그것에 의심을 품는 것만으로도 배제와 거세의 경계를 넘나들어야 했다. 북은 배를 곯아가면서도 남침 준비에 혈안이 된 전쟁광들이었고, 베트콩은 죽여도 죽여도 땅굴에서 계속 튀어나오는 무자비한 빨갱이들이었다. 반미는 곧 반체제였고, 반독재는 곧 친북이었다. 자유민주주의의 신성을 건드리는 것은 곧 배제와 거세로 이어졌다. 이미 선택되어버린 상황에서, 사후적으로 이루어진 저항은 두세 갑절 이상의 고통이 따랐다. 많은 시간이 흘렀다. 개혁세력이 정치의 전면에 나섰고, 재판부는 송두율 선생에 대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좋은
국제
참세상 편집국
2004.07.23 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