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일

“쌍용차, 77일 점거파업 기억 지우기 혈안”

“쌍용차, 77일 점거파업 기억 지우기 혈안”

새로 받은 쌍용차 작업복은 기름때 하나 없이 깨끗하지만, 부서와 직책, 이름이 적힌 명찰은 받지 못한 이들, ‘긍정’과 ‘변화’를 외치며 한 달 넘게 교육만 받고 있는 무급휴직자 K씨, L씨, 징계해고자 P씨를 만나 복귀 일상을 들어보았다.

쌍용차 파업 1년, “어떻게 일상으로 돌아오나요”

쌍용차 파업 1년, “어떻게 일상으로 돌아오나요”

정문은 출입카드를 찍고 들어가도록 되어 있었으며, 관리자가 들어갈 때면 경비용역 직원이 경례 자세를 취했다. 공장 앞은 콘크리트를 새로 깔았다. 쌍용차 가족대책위(이하 가대위) 이자영 대표가 잿빛 바닥을 보며 무심히 말한다.

[쌍용차와 파업] “우리가 받은거 이제는 갚자”

[쌍용차와 파업] “우리가 받은거 이제는 갚자”

쌍용 자동차 해고자들은 요즘 모이면 이런 얘기를 한다. “이제 갚아야 한다.” 그동안 제대로 연대하지 못하고, 제대로 함께 하지 못했던 우리들에게 세상은, 다른 노동자 동지들은 함께 해주었다.

[쌍용차와 파업] 노동자들에게 영원한 패배는 없다

[쌍용차와 파업] 노동자들에게 영원한 패배는 없다

그 후 쌍용자동차 파업 진압에 자신을 얻은 이명박 정권은 일제고사와 강압통치 기조의 변경을 담은 시국선언에 참여하였다는 이유로 교사들을 무더기로 기소하고 징계하고, 정권이 아닌 국민의 공무원이 되겠다는 공무원노조의 광고 등을 이유로 공무원들을 무더기로 기소하고 징계하였다.

[새책] 쌍용자동차 77일 옥쇄파업의 기록

[새책] 쌍용자동차 77일 옥쇄파업의 기록

한 권의 책으로 쌍용자동차지부 동지들의 투쟁을 제대로 표현하기에는 애초에 불가능했을 수도 있다. 불과 4개월의 기간에 자료 수집과 집필, 초안 검토까지 마치는 것 자체도 무리한 것이었다. 그러나 쌍용자동차지부의 투쟁을 폄하하려는 자본과 정권의 이데올로기를 종식시키고, 투쟁의 의미와 성과를 왜곡하려는 세력에 대항하여 ‘사실’을 알리기 위해 백서작업을 서둘렀다.

[위기의 쌍용자동차] “77일 파업보다 경찰조사가 더 힘들었다”

[위기의 쌍용자동차] “77일 파업보다 경찰조사가 더 힘들었다”

경찰관에게 77일 파업보다 조사 과정이 더 힘들다고 말했단다. 또한 기억을 되짚으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단전, 단수, 가스 차단, 소화전 차단, 경찰-임직원-용역의 투입… 사람이 없었던 전쟁터와 같았던 평택공장안에서의 삶보다 경찰조사가 더 힘들었다는 이씨.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위기의 쌍용자동차] “마음이 다쳐서… 빗소리도 신경 쓰이고”

[위기의 쌍용자동차] “마음이 다쳐서… 빗소리도 신경 쓰이고”

정리해고 통보를 받고 쌍용차 77일 파업에 참여했던 이씨는 14일 새벽 2시30분경 자택2층 베란다에서 고무호스에 목을 매고 자살을 시도했다. 파업이 끝난 뒤 이어지는 우울증과 불면증으로 괴로웠던 그는 동료, 가족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도 입에서 말문이 열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