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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세상
데일리 큐레이션 |
DAILY CURATION
2026/09/23(수)
어제 16시 — 오늘 16시의 세계 |
거듭되는 사건 사고들. 쏟아지는 온갖 보도와 입장들.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읽고 이해해야 하는 거지? 답답했던 이들을 위한 참세상의 신규 콘텐츠, ‘데일리 큐레이션’을 시작합니다. 어제 오후 4시부터 오늘 오후 4시까지, 국내외 여러 매체와 온라인 커뮤니티에 떠도는 세상의 소식을 민중의 관점으로 고르고 톺아봐 매일 저녁 전합니다. 다른 세계를 향해 고민하고 투쟁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콘텐츠가 될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의견 부탁드립니다.
| 1 | 노동자가 숨진 중대재해도 유족과 합의하면 형을 깎아 주는 양형기준안이 나왔다. 아리셀 대표가 11년을 감형받은 바로 그 사유다. |
| 2 | 미국과 이란이 뉴욕에서 세 시간 마주 앉은 날 미국은 이란의 하늘길을 막았고, 이재명 대통령은 같은 날 유엔 연단에서 “건설적 기여국 연대”를 제안했다. |
| 3 | 끼임 사고로 숨진 하청노동자의 장례가 62일 만에 치러졌다. 정몽원 HL그룹 회장은 임시 빈소 앞에서 “너무 늦었다”고 했고, 숨진 노동자의 아버지는 지켜보겠다고 답했다. |
| 4 | 조희대 대법원장은 절차에 흠이 있다는 청와대 주장을 수긍하기 어렵다고 맞섰고, 대법관 한 자리는 204일째 비어 있다. |
| 5 | 택시를 간주근로에서 빼 달라는 대통령령 한 줄을 요구하며 179일째 고공에 있는 노동자가, 추석을 앞두고 먼저 명절 인사를 내려보냈다. |
함께 볼 기사 「중대재해 징역 ‘최대 15년’, 솜방망이 처벌 개선은 ‘물음표’」 매일노동뉴스 · 09/23
함께 볼 기사 「양형기준은 알리바이가 아니다. 중처법 양형기준 전면 재검토하라」 민주노총 성명 · 09/22
함께 볼 기사 「“노동자 죽음 뒤 합의하면 감형?”…중대재해 양형기준안에 법조계 ‘반발’」 한국NGO신문 · 09/23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9월 21일 전체회의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양형기준안을 심의했다. 노동자가 숨진 중대산업재해의 기본 권고형은 징역 1년 6개월에서 4년이다. 죄질을 무겁게 보는 사정이 겹치면 3년에서 10년으로 올라가고, 그런 사정이 두 개 넘게 쌓이면 상한이 15년까지 열린다. 신문들이 뽑은 제목은 “최대 15년”이었다. 노동계가 본 것은 반대쪽 칸이다. 형을 깎아 주는 특별감경인자 목록에 유족의 처벌불원과 실질적 피해 회복, 그러니까 합의가 들어갔다.
양형위는 유족이 충분한 배상을 받도록 유도하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 취지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이미 판결이 보여줬다. 아리셀 공장 화재로 스물세 명이 숨졌다. 박순관 대표는 지난해 9월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고, 올해 4월 항소심에서 징역 4년으로 감형됐다. 항소심이 든 사유 가운데 하나가 “피해자 유족들 전원에게 피해를 변제하고 합의했다”는 것이었다. 11년이 줄었다. 민주노총은 성명에서 이 감형을 그대로 가리키며 “돈으로 처벌을 피할 수 있다는 논리를 법이 권고해 주는 셈”이라고 썼다.
민변 노동위원회는 합의 감경이 “기업의 경제적 여력에 따라 형사책임이 달라진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같은 죽음이라도 돈을 쌓아 둔 회사가 형을 더 빨리 던다. 숨진 노동자가 하청이나 이주노동자일 때 유족이 버티며 교섭할 힘은 더 약하다. 기본 권고형의 하한인 1년 6개월도 짚인다. 징역 3년 이하에서만 집행유예가 가능하니 권고형 구간이 집행유예 구간과 상당 부분 겹친다고 민변은 봤다. 양형위원회 운영지원단 자료를 인용한 주간한국 보도를 보면, 법 시행 뒤 기소된 138건 가운데 실형은 6건이었고 개인 피고인 70명 중 61명이 집행유예를 받았다. 평균 선고형은 징역 1년 1개월이다.
9월 21일 회의는 확정이 아니었다. 양형위는 최종안을 정한 뒤 공청회에서 의견을 듣고 의결한다. 지금 적혀 있는 칸이 그대로 굳은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노동계는 합의와 처벌불원을 감경 사유에서 빼라고 요구하고 있다. 재해자가 스스로 위험한 곳에 들어갔거나 안전장치를 풀었다는 사정도 같은 목록에 올라 있어 함께 다툼거리가 됐다. 반대 방향의 압력도 온다. 2021년 산업안전보건법 양형기준을 올릴 때 한국경영자총협회와 중소기업중앙회는 의견서에 과잉처벌이라고 썼다. 공청회에서 누구의 문장이 살아남느냐가 앞으로 몇 해의 형량을 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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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간 9월 23일 새벽, 뉴욕 유엔본부에서 미국과 이란이 세 시간 동안 마주 앉았다. 미국에서는 스티브 위트코프 중동특사와 제러드 쿠슈너가, 이란에서는 아바스 아라그치 외무장관이 나왔다. 카타르와 파키스탄이 중재했고, 7월 카타르 실무회담 이후 석 달 만에 성사된 직접 회담이다. 이란은 호르무즈를 다시 여는 조건으로 해상 봉쇄 해제와 동결 자산 반환, 모든 전선의 전쟁 종식을 걸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몇 시간 전 같은 건물 연단에서 이슬람공화국을 섬멸해 버릴지를 물었다. 그리고 23일, 미국 재무부의 이란 항공사 제재가 발효했다.
이 제재는 이란 국적기만 묶어 두지 않는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이란 항공기에 연료를 넣거나 착륙 서비스를 내주거나 항공권을 파는 곳은 달러 결제망에서 빠진다고 했다. 급유업체와 지상조업사와 발권 대행사가 모두 대상이다. 조지아는 전면 중단을 택했고 아제르바이잔과 이라크도 노선을 일부 끊었다. 중국과 러시아는 따르지 않아 마한항공의 모스크바 · 광저우 노선은 남았다. 제재가 본격화하기 전부터 이란 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던 항공편의 3분의 1이 이미 취소된 상태였다. 협상 테이블은 열어 두고 목줄은 조이는 방식이다.
같은 날 새벽 이재명 대통령은 제81차 유엔총회에서 17분 동안 연설했다. 호르무즈와 홍해의 해상 봉쇄를 두고 “에너지와 물류의 핵심 통로가 무기화될 때” 사람들의 일상이 받는 충격을 말했고, “글로벌 공공재를 공급할 역량과 의지를 갖춘 나라들이 먼저 손을 맞잡고 협력의 공간을 넓혀가는 것”을 “건설적 기여국 연대”라고 이름 붙였다. 연설 어디에도 파병과 군사와 항행과 호위라는 단어는 없다. 에너지 공급망 협력의 틀이고, 대통령 스스로 배타적인 기구를 새로 만들자는 것이 아니라고 단서를 달았다. 다만 정부가 파병이라는 말 대신 쓰기 시작한 단어도 ‘기여’다. 박윤주 외교부 1차관은 지난 17일 국회에서 “파병이라고 말씀드리기에는 조금 큰 이야기이고, 국제사회와 얘기하고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기여라는 원칙”이라고 했다. 그날 열릴 예정이던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회는 서면회의로 바뀌었다.
파이낸셜포스트 집계로 브렌트유는 23일 낮 배럴당 99.25달러까지 내렸다. 사우디 동서 송유관이 다시 열린 영향이 크다. 회담이 이어지면 유가는 더 내려가고 한국을 향한 압박도 느슨해진다. 반대로 항공 봉쇄가 제3국 기업까지 실제로 때리기 시작하면 이란은 협상장을 떠날 명분을 얻는다. 어느 쪽으로 가든 한국에 남는 물음은 하나다. ‘기여’가 공급망 외교라는 뜻으로 남을 것인가, 청해부대 작전구역을 넓히는 일의 이름이 될 것인가. 정부가 국회 동의 절차를 밟는지가 그 답을 먼저 보여줄 것이다.
아래 선은 미국 의회예산처가 잡아 둔 기준 전망이고, 위 선은 인공지능이 해마다 생산성 증가율을 1%포인트씩 끌어올린다고 가정한 경로다. 미국의 재정 논쟁은 지금 이 두 선 사이의 거리에서 벌어진다. 딘 베이커는 위쪽 경로가 현실이 되면 2036년 미국 경제가 40조 달러 규모가 되어 부채 걱정이 사라지지만, 거품이 먼저 터지면 주식시장에서 16조에서 24조 달러가 증발한다고 계산했다. 어느 쪽이든 장부에 적히는 손실은 투자자가 떠안는다. 베이커가 해마다 6천억 달러라고 본 걷히지 않는 세금은 두 시나리오 어디에도 들어 있지 않다.
권달주 · 박경석 대표가 벌금 대신 노역을 택한 뒤 남긴 목소리를 당사자 조직이 영상으로 옮겼다. 몸을 가두면 굴복할 것이라 본 쪽과, 갇히면서 자긍심을 말한 쪽이 갈린다.
감옥에서 온 편지. 부끄럽지 않다. 기죽지 마라. 당당해라. 자긍심을 가져라. 꺾이지 마라. 우리의 투쟁은 시대를 바꾸는 투쟁이다.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sadd0420S) 2026년 9월 23일
고공에서 179일을 보낸 택시노동자가 명절 인사를 먼저 건넸다. 요구는 여전히 시행령 하나인데, 시간은 요구하는 쪽에서만 흐른다.
다리도 제대로 펼 수 없는 고공에서 추석을 보내야 합니다. 택시노동자들의 절박한 요구인 택시를 간주근로에서 제외하는 시행령 신설을 위해서입니다.
— 고영기·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Ykko17Gi) 2026년 9월 23일
세종호텔 해고 노동자들이 480킬로미터 도보 행진 참가자를 모으기 시작했다. 천막과 고공을 거쳐 남은 수단이 다시 두 발이라는 사실이 이 싸움의 길이를 말한다. 참가 신청은 세종호텔 희망뚜벅이 계정에서 받는다.
민주노총은 지난 17일 중앙집행위원회에서 메가특구특별법의 노동 특례를 다룰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 참여를 결정했고, 다음 달 7일 임시 대의원대회에서 27년 만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복귀 여부를 가른다. 지도부는 합의제 운영과 산별 직접 참여, 기구 명칭 변경을 전제로 내걸었다. 반대편은 그 전제가 지켜지든 아니든 테이블 자체를 문제 삼는다. 현장 좌파 조직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은 경총과 대한상공회의소가 이미 앉아 있고 중소기업중앙회까지 들어오는 자리에서 “지금 필요한 것은 사회적 대화가 아니라 대정부 투쟁”이라고 썼다. 메가특구를 막으려고 6년 만에 대화에 들어간다는 결정을 아이러니라고 부른 것이다.
민주노총은 지난 17일 중앙집행위원회 회의를 통해 이재명 정부가 제안한 메가특구 특별법에 노동 특례를 적용할지 여부를 논의하는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 사회주의를향한전진 (@March2Socialism) 2026년 9월 23일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은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고, 민사에서는 충청남도의 배상 책임까지 인정됐다. 그런데 충남도는 피해자 김지은 씨에게 소송비용을 청구하고 있다. 도청에는 추심을 포기할 수 있는 제도가 있지만 무엇을 근거로 추심을 이어가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서울대 로스쿨 교수 성폭력 공동대책위원회가 연대성명을 내어 이것이 책임 있는 행정인지 물었다. 8년을 싸워 책임을 인정받은 자리에서 청구서가 다시 피해자 쪽으로 돌아왔다.
가해자의 성폭력 범죄가 유죄로 확정되고, 충청남도의 배상책임까지 인정됐습니다. 그럼에도 충남도는 피해자에게 다시 소송비용을 청구하고 있습니다.
— 서울대 로스쿨 교수 성폭력 공동대책위원회 (@SL_A_PROF_OUT) 2026년 9월 23일
실제로 몇 시간 일했는지 재기 어려운 업무에는 노사가 정해 둔 시간만 일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다. 근로기준법 58조가 정하고 있다. 택시에서는 이 제도가 정반대로 쓰였다. 하루 열 시간 넘게 차를 몰아도 소정근로시간을 다섯 시간 안팎으로 묶어 두면 나머지 시간은 임금 계산에서 사라진다. 택시노동자들이 179일째 고공에서 요구하는 것은 법을 바꾸라는 것도 아니고, 이 제도에서 택시를 빼내는 대통령령 한 줄이다. 법이 위임한 범위를 어디까지 쓸 것인가라는 물음이 지상 20미터의 시간을 결정하고 있다.
일요일 이스라엘과의 경기를 앞두고 아일랜드 대표팀 감독 하이미르 하들그림손이 선수들의 집중력을 어떻게 지킬 것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스포츠와 정치를 나누라는 요구에 그는 경기의 이름을 바꿔 답했다. 아일랜드 대표팀은 “제노사이드에 맞서 뛸 것”이라는 말이었다. 이스라엘축구협회는 이 발언을 “무지와 위선과 어리석음”이라고 받았고, 아일랜드 스포츠인 160여 명은 두 경기 보이콧에 서명했다.
1. 노동안전에서는 처벌의 크기를 정하는 문서가 쟁점이 됐다. 민주노총은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중대재해처벌법 양형기준안을 두고 “양형기준은 알리바이가 아니다”라며 전면 재검토를 요구했다. 합의와 처벌불원을 감경 사유에서 빼고 처벌 상한을 없애라는 것이 요구의 뼈대다. 같은 조직은 HL만도 평택공장에서 숨진 김승모 노동자를 두고 “더는 또다른 김승모 노동자가 희생되지 않도록 할 것이다”라고 썼다. 사고 62일 만에 원청 회장이 유족 앞에 섰지만, 노조가 이어서 요구하는 것은 사과의 다음 칸이다.
2. 대법원장이 대법관 재제청을 공식 거부한 다음 날, 시민사회는 조문 해석을 건너뛰고 곧장 책임자를 불렀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재제청 거부 조희대 대법원장 헌법 위에 서려하나”라는 논평에서 그를 “이번 사법 마비 사태의 원인 제공자”로 부르고, 거부를 철회해 재제청 절차에 착수하라고 요구했다. 양쪽이 같은 조문을 들고 마주 선 사이 대법관 한 자리는 204일째 비어 있다.
3. 개발과 살림과 평화에서도 요구는 각각의 방향에서 같은 지점을 가리켰다. 120여 개 단체가 모인 메가특구특별법 저지와 3대 메가프로젝트 규탄을 위한 공동행동은 청와대 앞에서 출범하며 “330여 개나 되는 규제완화 조항이 비공개로 논의”되고 있다고 밝혔다. 주 52시간 상한의 예외와 파견 업종 확대가 그 안에 들어 있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는 정부 주거안정플랜을 두고 “주거복지 목표 · 방향은 모호하고 내용은 부실”하다고 평가했고, 같은 단체 평화군축센터는 어떤 이름을 붙이든 우리 군 함정이 전쟁 중인 해역에 들어가는 순간 한국이 교전당사자가 된다고 경고했다. 녹색당은 부산 북항에 나흘째 나타난 상어를 두고 “상어는 경고하려고 왔다”고 썼다. 구경거리가 된 자리에서 수온을 읽자는 요구다.
4. 한편 이 성명들은 각각 다른 결정을 향하면서도, 그 결정이 어떤 근거로 나왔는지 밖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같은 자리에 선다. 감경 기준이든 재제청이든 비공개로 논의된다는 330여 개 조항이든 그렇다.
통합러시아당이 450석 가운데 355석을 쓸어 담은 선거 결과와 0.4퍼센트라는 성장률 전망을 같은 글에 나란히 놓은 배치가 이 칼럼의 논지를 대신한다. 로버츠는 전쟁 지출이 국내총생산의 7퍼센트를 넘어선 사이 민간 제조업 생산이 3.2퍼센트 줄고 물가가 6.3퍼센트 오른 경로를 따라간다. 전쟁이 만든 수요가 경제를 굴리는 동안 전쟁이 아닌 부문은 말라붙었다는 진단이다. 다만 이 침체가 정치적 압력으로 바뀌는 통로가 러시아에 남아 있는지는 글이 답하지 않는다. 공산당이 40석을 가진 의회에서 그 통로를 찾는 일이 러시아 좌파에게 남은 과제다.
상업적 합리성을 지키라고 요구하면서, 그 합리성을 누가 판정하는지는 사설도 법도 정부에 맡겨 둔다. 한미전략투자특별법상 정부가 요건을 충족했다고 판단한 사업은 국회 보고만으로 국내 절차가 끝나기 때문이다. 사설은 2천억 달러 가운데 1200억 달러가 걸린 원전 사업에서 웨스팅하우스 지분 5~10퍼센트로 의결권을 쥘 수 있겠느냐고 묻고, 석유 메이저가 경제성이 없다며 떠난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 사업은 거부하는 것이 옳다고 못 박는다. 텍사스 1호 사업의 전력 구매계약 상대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대목도 놓치지 않는다. 판정하는 쪽과 심의하는 쪽이 같은 자리에 있을 때 요건이라는 말이 무슨 힘을 갖는지는 여전히 열린 물음이다.
이 사설이 문제 삼는 ‘제재 완화 요구’는 대통령 발언에서 핵 동결이라는 맞교환 조건을 떼어 낸 뒤에야 완성된다. 조건이 붙어 있었다는 사실은 같은 날 중앙일보 사설의 제목 “핵 동결 대가로 대북제재 해제하자는 대통령 발언”이 오히려 정확히 적었다. 조선일보 사설은 북핵 고도화 속도와 협상력 약화를 나란히 세워 우려를 쌓아 가면서, 그 우려의 출발점인 조건은 본문 어디에도 옮기지 않는다. 대신 제목이 발언의 내용이 아니라 발언의 자격을 묻는다.
대법원장이 재제청을 거부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나온 사설이 양쪽 모두에게 고집을 버리라고 당부한다. 그러나 헌법이 정한 제청권자와 임명권자는 대등한 두 당사자가 아니고, 절차를 멈출 수 있는 쪽은 한쪽뿐이다. 사설은 특정인을 고집하는 것이 문제라고 쓰면서 그 특정인을 서면으로 제청한 쪽이 누구였는지는 적지 않는다. 균형을 맞추려는 문장이 책임의 위치를 흐린다.
안선희 논설위원실장은 정부가 “회복과 성장만큼 민생 개선에 더 집중하겠다”고 말한 자리와 예산안의 숫자가 어긋나는 지점을 짚는다. 내년 보건 · 복지 · 고용 분야 증가율은 9.3퍼센트로 총지출 증가율 12.8퍼센트보다 낮고, 정부 5년 평균으로 봐도 복지가 총지출을 밑돈다. 지난 10년 평균은 그 반대였다. 칼럼은 여기서 대기업과 손잡는 3대 메가프로젝트는 있는데 민생복지 메가프로젝트는 왜 없느냐는 오건호 공동대표의 물음을 빌려 오고, 사회상속제와 간병국가책임제를 예시로 놓는다. 물음은 선명한데 답은 열려 있다. 복지가 ‘메가’가 되지 못하는 이유가 곳간의 문제인지 우선순위의 문제인지부터 갈린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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