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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빈민의 주거공간 변천과 그 함의

이 거대도시 서울에는 이질적인 사람들이 모여 산다. 대기업가는 물론이고 행정고위관료, 정치인을 비롯한 그의 가족들이 서울에 몰려있다. 그런가 하면 노점상, 일용노동자, 노숙인 등 도시비공식부문의 빈민들도 몰려있는 곳 역시 서울이다. 그런데, 이 주거공간은 희소한 자원으로서 그들이 가진 권력과 자원에 의해 차별적으로 분배되고 정의된다. 따라서 주거지를 통한 이 거대도시의 공간분할은 이들 사이의 가름을 대변해주게 된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을 거쳐 강제철거가 수반되는 도시재개발사업은 사회적으로 큰 논란거리였으며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산동네, 혹은 달동네로 불리던 도시빈민의 주거지가 외관상으로 말끔하게 정비된 지금, 도시빈민에 대해서는 점차 무관심해져 가는 게 현실인 듯하다.

1960년대 이후 급속한 산업화 기간 동안 엄청난 인구가 도시에 집중하면서 도시지역의 주거문제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정상적인 주거를 마련할 수 없었던 하층서비스업이나 일용노동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무허가정착지를 그들의 주거대안으로 선택하게 되었고, 정부는 이를 묵인했다. 결국 70년대까지 정부의 저소득층 주택문제에 대한 기본적 대응방식은 국공유지에 대한 무단점거를 사실상 합법화하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1980년대 중반까지 서울에는 빈민촌이 227개 지구에 이르렀고 서울 인구의 1/3정도가 이곳에 거주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 시 외곽에 위치해있던 무허가정착지가 개발의 요지가 되면서부터 ‘합동재개발’사업을 통해 산동네 판자촌들을 대대적으로 아파트단지로 탈바꿈하게 된다. 그런데 사실상 이 제도는, 원거주민의 60%에 이르는 세입자가 원천적으로 배제된 데다가, 무허가옥주조차 5%도 재입주하지 못하게 하는 문제점을 갖고 있었다. 단적으로 말해 이러한 개발방식은 ‘밀어내기식’이었던 것이다. 이후 1990년대 후반이 되면 서울의 무허가정착지는 사실상 그 자취를 감추게 된다.

그렇다면, 이들 원거주민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재개발사업에 따른 저소득층에 대한 주거문제 대응책으로서 정부는 공공임대주택을 건축하게 되었지만 그 숫자는 턱없이 부족했다. 따라서 개발의 힘에 밀린 대다수는 수도권의 저렴 주거지를 찾을 수밖에 없었는데, 연립주택이나 다세대․다가구 주택의 지하셋방, 옥탑방, 비닐하우스촌, 공공임대주택, 그리고 쪽방 등이 그것이었다. 결국 이들 저소득층 원거주민들은 도시 혹은 그 언저리에 산재되었고, 이들 주거지는 도심 속에 은폐되거나 재집중하게 되었다.

이 중 쪽방은 빈곤이 재집중된 주거지로서, 정부가 IMF 외환위기 이후 공공역사와 공원 등에서 목도되는 거리생활자에 대한 응급대응책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새롭게(사실 쪽방은 과거로부터 이동성이 높은 일용노동자들의 거처로 이용되어 왔다) 부각되었다. 2003년 12월말 현재 서울 5개 지역에 약 4천1백여 개의 쪽방이(서울 5개 지역), 전국적으로 약 9천여 개의 쪽방이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정부는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해당지역 쪽방상담소 실무자들은 발견되지 않은 곳이 더 많다고 하고 있으며, 실제로 쪽방지역이 산재되어 있는 서울 외 지역의 경우 실태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곳이 많다.

대부분의 거주민은 건설일용직, 하층서비스직, 폐지수집, 공공근로 등 불안정한 직업에 종사하고 있고, 장애 및 질환의 비율이 높으며, 학력 수준 또한 낮은 편으로 노동시장에 빈번하게 출입할 수밖에 없는 근로빈곤층이 다수이다. 전월세 보증금 마련이 쉽지 않은 사람들이다. 다만 얼마간 목돈이 있다면 비닐하우스촌이나 지하셋방을 구했을 테지만, 이마저도 없는 경우 선택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 쪽방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이른바 사회공간적 분리(socio-spatial segregation)상태에 놓여 있어 여전히 제도적인 차별을 경험하거나 불안정한 주거생활의 지속으로 보다 나은 삶의 기회를 상실하고 있다. 즉 취사공간의 부재, 비위생적인 화장실 등 열악한 주거환경, 철거 시 보상에 있어서 제외되어 결국 길거리에 나앉게 하는 제도적인 배제, 지방정부의 지역해소책으로 시행되는 강제철거, 그로 인한 주거불안, 주거비 상승, 그리고 사회적 낙인화 등이 그것이다.

쪽방은 과거와는 달리 단순히 이동성 높은 일용노동자들의 임시 숙소보다는 주거상실단계의 최단에 위치한 주거지가 되고 있다. 또 얼마 전 ‘노숙인 사망실태조사 및 근본대책 마련을 위한 연대모임’에서 발표한 “거리노숙인 인권 및 생활실태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시설 퇴소 후 지역사회 재정착의 거처로 활용되고 있으며, 노숙지원 민간단체의 활동에 있어서도 탈노숙의 근거지로 쪽방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쪽방은 도시빈민의 최후 의 주거 혹은 탈노숙의 주거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점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주거공간이 하나의 상품과 기호로 고착되어 개인이 공간으로부터 배제당하고 마는 환경, 유연화 된 노동시장의 구소 속에서 인적자원이 부족한 계층이 생활의 기반을 닦아내기 어려운 환경, 그리고 도시화와 산업화에 의해 깨어진 가족공동체 문화 속에서 지극히 개인화되어 자칫 파편화 될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 도시빈곤은 자본주의 사회의 보편적 현상이 될 수밖에 없다. 재개발사업을 통해 도시빈민들의 주거지를 해체한다 해도, 또 다른 유형의 저렴 주거지를 찾아 흩어지고 다시 모일 것이다.

공간은 사회행위의 영역으로서 다양한 사회적 실천을 통해 만들어진다. 인간적인 공간의 재편을 위해 어떤 실천이 필요할 지 생각해 볼 일이다.



김선미,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성균관대학교 사회복지학과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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