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상황의 죄와 벌

$문화$


떠돌이 어부 송두문과 황억배는 동해의 작은 어촌 진리포구가 환하게 내려다 보이는 야트막한 야산에 자리잡은 허술한 산막에 산다. 그런데 어느날 추위와 배고픔에 떨던 무장간첩 배승태가 밥을 훔쳐먹으러 왔다가 잡힌다. 그러나 어딘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정부에 의해 고급 살인병기로 선전되는 무장간첩 배승태가 살인병기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두 어부가 내려친 작대기에 잡혔다는 사실이 누가 보기에도 우습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때 무장간첩은 권총과 칼을 소지하고 있었으니 더욱 의문은 짙어진다.   

 강릉경찰서에서 반공을 담당하고 있는 형사 동호가 송두문에게 묻는다. “작대기로 때린 부분이 정확히 어디죠?”, “허허, 목쟁이라고 말혔잖어유.” 옆에 있던 황억배에게 채근해 묻는다. “두 분이 동시에 쳤습니까?” 그러자 “실인즉슨…” 황억배의 말 끈이 이어지길 바라는데.. 송두문의 앙칼진 시선이 황억배의 입을 틀어 막는다. 역시 석연찮다.

 그러나 이 사건은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정황에서는 분명히 자수가 읽혀 진다. 그러나 반공을 무기로 정권을 유지하려는 정부는 두 어부에게 큰 상금을 줌으로써 국민의 반공의식을 선전할 수 있는 모처럼의 기회로 여겼다. 여기에 ‘국가 비의(秘意)’가 전달된다. 여기에 수사기관의 이해득실이 겹쳐지고 상금을 타려는 두 어부의 욕망이 꿈틀댄다. 사건의 진실을 밝히려는 형사 동호의 의지는 외톨이 신세가 되고 끝내 꺾이고 만다.  

특히 이해 할 수 없는 것은 무장간첩 배승태의 언행이다. 자수는 그에게 생명을 건질 수 있는 기회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자수한 게 아니라 두 어부에 의해 체포됐음을 완강하게 주장한다. 그가 자수 했음을 인정한 것은 그로부터 수 십년이 흘러간 뒤 그가 찾아 갔을 때였다.

이 소설은 우리를 과거라는 ‘역사의 거울’ 앞에 세워 놓는 마력이 있다. 그리고 이 소설은 그 역사의 거울 앞에 서 있던 우리를 거울 안으로 불러들인다. 그리고 나를 바라본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거울 안으로 걸어 들어간 우리가 거울 속에서 그 거울 속의 상황을 따라 거울 밖의 나와 다르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게 한다는 점이다. 작가 김용만이 안내하는 그 또 하나의 세계 <칼날과 햇살>로 들어가 보는 것은 어떨까.

남과 북으로 갈라진 조국의 현실이 진실을 왜곡했을 때 우리가 직면하는 거대한 환상 아니 검은 햇살이 비추는 공간은 어쩌면 우리에게 가상이 아니라 현실일지도 모른다. 허기야 시놉티콘이 작동되는 공간에서 나는 환상에 의해 화석화 되고 환상을 나로 인식하게 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민족 분단이라는 상황에서 국가보안법이라는 시놉티콘이 작동하는 현실에서 지성과 이상과 양심이 시놉티콘의 화석들과 충돌하는 상상력의 불꽃과 특히 소설적 화해의 발길이 우리를 매혹시킨다. 비록 이 화해의 상상력이 상식을 벗어나지 않는 조금은 답답한 안전띠를 매고 있는 대안인 건 사실이지만 그러나 작가의 짜임새 있는 전개와 어휘구사는 우리를 충분히 소설적 화해의 언덕에 이르게 한다는 점에서 고마운 안내다.

소설의 지평에 깔린 우리의 전통적 가치관은 이 소설에 등장하는 통일전사 배승태와 그를 취조하는 형사 동호 그리고 동호의 연인 주연과 두 어부의 생성하는 언어와 인식과 행동을 철저하게 묶어 놓는다. 그래서 그 인간이 지향해야 할 본질적 욕망으로 위 뜸과 아래 뜸 즉 북과 남이 화해할 수 있는 그림을 그려놓는다. 인간이 가져야 할 아름다운 심성으로 이념이라는 정치적 현실을 덮어 가는 대안에 눈여겨 보기로 하자.

다만, 이 소설이 현실적으로 역사의 검은 햇살이 종료된 2003년이라는 양지를 택했다는 점에서 섭섭하긴 해도 그 종료되었나 싶었던 정황이 다시 꿈틀거리고 있는 오늘의 시점에서 그 사후 약방문 같았던 이 소설적 화해는 지금 우리가 시야에 놓아도 좋을 것 같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하잖겠는가. 오히려 2003년 이라는 상황종료의 자유공간에서 피어난 꽃의 화려함은 한 층 더 밝은 빛을 역사의 거울로 비쳐줄 수도 있겠으니 말이다.

 이 역사의 거울 속에서 주인공들의 언행은 좌우와 안팎 그리고 상하가 뒤집힌다. 더구나 나와 너가 뒤집혀서 그 뒤집힌 욕망이 충돌하고 남과 북이라는 이념이 그 뒤집힌 나와 너에게서 또 뒤집히며 주장되고 설파되며 충돌한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해학으로 점철되는 주인공들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다. 그렇다면 이 분단상황의 왜곡이 어찌 그 때 그들만의 것이란 말인가. 눈여겨보면 오늘을 사는 우리의 말과 행동과 주장과 생각과 행동이 모두 혼란스럽지 않은가. 아직도 우리는 진보와 보수라는 적아의 경계조차 구분하기 어려운 혼란스러운 시기를 살고 있다. 이념의 소설적 화해 앞에 서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