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해방실천연대의 기관지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20호]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제국주의

제국주의와 신보수주의의 본질을 올바르게 인식하자 (2)

1945년 종전 이후, 미국을 제외한 모든 강대국(승전국과 패전국 모두)은 파괴와 부채로 고통받게 되었다. 전세계가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고, 무수한 노동자, 민중들이 이로 인해 고통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제국주의 전쟁의 처참한 결과는 자본가계급의 지배력을 축소시키고 체제의 정당성을 약화시켰다.

“동원병력 1억 1000만 명, 전사자 2,700만 명, 민간인 희생자 2,500만 명으로, 그 중에서 독 ·소 양국의 희생이 가장 많아 소련의 전사자 1,360만 명, 민간인을 포함하여 사망자 2,000만 명, 전인구의 약 1/10, 독일의 전사자 500만 명, 민간인을 포함하여 사망자 550만 명, 전인구의 약 1/10이라고 알려졌다. 일본의 전사자는 185만 명, 민간인을 포함하여 사망자 250만 명, 전인구의 약 1/40이라고 한다. 이 개수(槪數)에서도 제1차 세계대전과 비교할 때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동원병력수는 약 2배, 전사자는 약 5배, 민간인 희생자는 약 50배이다.”
- 이코노미스트. 1946. 1. 26

이렇게 무너진 자본주의 질서를 다시 세우는 과정에서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제국주의가 형성된다.

1) 2차 대전 이후 변화한 제국주의 질서

① 기존 열강의 약화 : 영국과 프랑스는 전쟁으로 경제가 폐허가 되었고 식민지의 독립 운동으로부터 압력을 받게 되었다. 이로 인해 자본주의 세계질서에서 그 영향력이 심각하게 축소되었다. 독일과 일본은 전쟁의 패배로 영향력을 완전히 상실하게 되었다. 수년간의 상호 파괴활동, 총력전은 기존의 제국주의 열강의 힘을 급격히 하락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② 사회주의권의 등장 : 한편 소련은 인적, 물적으로 막대한 피해를 보았으나 전승국으로서 국제사회에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동구와 아시아에서 사회주의권의 성립은 세계자본주의체제에 커다란 대항세력이 생기게 되었음을 의미하였다.

③ 민족해방운동의 고양과 신생독립국의 등장 :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지는 제국주의 열강에 대한 민족해방운동이 고양되었고, 대부분 독립하여 신생국가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들은 국제사회에서 미,소의 대립 속에서 독자적인 비동맹 외교노선을 추구하고자 하였다.

④ 유일 패권국 미국의 등장 : 마지막으로 미국만이 전쟁에서 벗어나 부강해졌다. 종전 당시 핵무기를 독점적으로 소유했다. 미국은 세계 최대 채권국이었고 세계 경제 산출의 반을 차지했다. 그리고 석유와 자본을 모두 수출했으며 세계의 중앙은행 황금의 3/4을 소유하고 있었다. 이러한 막강한 군사/경제력을 바탕으로 미국은 세계 자본주의체제 내에서 유일한 패권국가로서 등장하게 되었고, 사회주의진영에 대항하여 자본주의를 지켜내고, 전세계 자본주의 질서를 유지, 확대하는 임무를 홀로 떠맡게 되었다.

이것은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제국주의 질서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볼 수 있는데, 제 1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다소간에 힘의 차이는 있었지만 “열강들”간의 갈등이 제국주의의 중요한 특징이었다. 이에 반해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제국주의 질서는 기존의 제국주의 열강들이 미국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힘의 열세에 놓이게 되었고, 자본주의 체제의 유지와 독점자본의 시장 확보라는 자본가들의 전략적인 목표가 미국이라는 한 나라의 힘에 의존하는 체계로 변경되었다.

2) 냉전기 미국의 제국주의 정책

◎ 냉전기 제국주의는 사회주의권 확대 저지, 자본주의 체제 유지가 전면화된 체제이다.

20세기 초 제국주의에서 나타난 열강간의 경쟁과 분열은 부차적인 것이 되고, 자본주의 체제유지가 가장 중요한 제국주의 정책이 되었다. 레닌은 제국주의를 자본주의의 엄청난 발전으로 모순이 격화되어 “보다 높은 사회경제질서로 나아가는 과도적 형태”라고 하였는데, 현실 사회주의권의 성립은 이러한 의미를 더욱 강화시켰다. 따라서 제국주의는 체제가 무너져서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것을 막는 데 전력투구하게 되었다. 미국은 제국주의 체제 내에서 유일 패권국으로서 자본주의체제유지라는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이것은 전후 미국이 취한 일련의 정책을 통해서 확인해볼 수 있다.

- 미국이 제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만든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1947년 첫 회의에서부터 유럽(이탈리아와 그리스)에서 점증하는 공산당 집권 가능성에 대해서 이를 저지할 방도를 논의하였다. 1948년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최초로 작성한 보고서 NSC-1은 “이탈리아에 관한 미국의 입장”으로 1948년 이탈리아 선거에서 공산당이 집권할 경우, 미국은 즉각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6함대를 지중해에 급파하여 이탈리아 정부를 전복하기 위한 준 군사활동을 전개한다는 것이었다.

- 사회주의권의 봉쇄와 탈환 : 미국의 냉전기 대외정책을 규정한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 보고서인 "NSC-68"은 소련은 전세계에 걸처 공산주의를 확산시키려는 체계적 전략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미국정부는 공산주의의 확산을 중단하기 위해 봉쇄정책을 채택해야 한다고 권고하였다. 이후 미국의 세계 전략은 사회주의권의 확산을 저지하는 봉쇄와 탈환(롤백)정책이 되었다.

- 제 3세계에서 미국의 영향력 확대 : 종전후 식민지의 독립으로 형성된 제3세계 국가들에 대해서는 사회주의 세력의 집권을 저지(니카라과, 칠레, 한국전쟁, 베트남전)하고, 친미 정권을 수립(그리스, 칠레 등)하는 것, 제3세계에서의 시장확보(파나마침공, 아랍 친미정권 지원 등)라는 목표 하에서 제국주의정책을 추진하였다. 이를 위해 사용한 제 3세계 개입방식은 은밀하고 간접적 개입 방식(미국의 무기와 원조 및 미국의 군사력에 의해 기본적으로 뒷받침하면서도 표면적으로는 단지 군훈련관, 지원장교나 지원 기술전문가로서만 개입하면서 일종의 ‘대리전’을 치르게 하는 것), 단기간의 직접적 군사개입방식, 전면적인 군사개입방식 등을 사용하였다.

◎ 제 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은 미국의 세계적 주도를 확보하기 위한 경제부분의 개입을 진행한다.

이미 1945년 미국 재무부 장관 모겐소는 미국은 ‘국제무역과 국제 투자가 기업원리에 의거해 기업가들에 의해 수행될 수 있는’ 세계체제를 요구한다고 하였다. 즉 미국 중심의 세계시장질서의 건설을 추진하게 된 것이다.

미제국주의 중심의 세계 경제체제 재편의 대표적 사례로 브레튼 우즈 체제의 성립을 들 수 있다. 전후 자본주의 체제는 무역, 통화체제가 붕괴되었다. 1944년 뉴햄프셔의 브레튼 우즈 회의에서 연합국 자본주의 강대국들은 미국 달러를 전후 세계 통화 시스템의 준거로 만들려는 미국의 계획에 동의했다. 이 계획의 기초는 미국 달러가 황금이나 다름없는 것이 되는 것이었고 미국은 황금 1온스 당 35 달러의 고정 비율로 교환해 주기로 약속했다. 이 약속은 켄터키 주 포트 녹스(Fort Knox)에 있는 대량의 황금에 기반한 것이었다. 이 힘에 의거해서 미국은 달러를 국제통화로서 기능하게 하였다.

3) 소 결

냉전 이후, 미국 일극 중심의 세계질서가 형성되면서 반제국주의 투쟁에서 미국에 반대하는 투쟁이 중요해졌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여 과거에는 영, 프, 독, 러 등 다양한 제국주의 열강에 대한 식민지 저항운동이 전개되었지만, 냉전 이후에는 미국에 대한 저항을 중심으로 하는 투쟁이라는 형식으로 식민지, 종속국에서 반제국주의 투쟁이 전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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