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9일 국제노동기구(ILO) 이사회는 한국 정부에 대해 공무원 노동자들의 단결권 보장 등을 권고하였다. 이에 대해 노동부는 즉각적으로 반발을 하였고, 한편 행정자치부는 3월 23일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하 공무원노조)을 불법단체로 규정하고 조합원들의 탈퇴를 강요하는 지침을 시달한 이래 탄압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이번 ILO 권고는 특히 공무원 노동자에 대한 권고가 특화되어 있는데 ‘5급 이상 공무원 및 소방직 공무원의 단결권을 보장하고, 파업권에 대한 어떠한 제약도 국가의 이름으로 권한을 행사하는 공무원에 한정하고, 전임자 급여 문제를 단체교섭으로 정하라’는 것이 그 핵심 내용이다. 그밖에 공무원노조 건설 과정에서 그 동안 해직되고 형사처벌 받은 사람들에 대한 법적 판단을 재고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편 전체 노동자에 대해서 ILO 권고는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 상 전임자 급여 문제를 단체교섭으로 정할 수 있도록 할 것, 필수공익사업의 목록을 수정할 것, 제3자 개입 신고제를 폐지할 것, 해고자·실업자의 조합원 자격을 인정할 것, 비조합원의 노조 임원선거 출마금지 조항을 폐지할 것, 형법상 업무방해죄를 결사의 자유 원칙에 부합하도록 개정할 것’ 등 관련 법령의 개정을 요구하고, 아울러 ‘비폭력 쟁의행위에 대한 형사처벌 사례(부산지하철노조,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와 단체교섭 요구 행위에 대해 공갈죄를 적용하여 형사처벌한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건설연맹) 사건’의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ILO 권고의 구체적 의미
권고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그 의미를 살펴보자. 우선 단결권과 관련해서다. ILO 87호 협약, 98호 협약, 151호 협약 등과 일련의 권고 등을 포함하는 ILO 노동기준은 단결권과 관련하여 ‘공무원을 포함한 모든 근로자들은 어떠한 차별 없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가입·탈퇴할 자유를 갖는다.’라고 선언하고 다만 ‘군대·경찰’과 ‘정책결정 또는 관리에 관련이 있는 것으로 통상 간주되는 직무를 수행하는 고위직 근로자 또는 고도의 기밀적 성격의 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의 경우에 한하여 국내 법령으로 정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해 오고 있다.
현행 공무원의노동조합설립및운영에관한법률(이하 특별법)은 6급 이하 가입을 원칙으로 하면서도 다시 업무총괄·지휘감독 등의 개념을 도입하여 39만 대상자 중 10만 여명의 노동조합 가입을 금지하고 있다. 이번 ILO 권고는 위와 같은 종래의 ILO 노동기준에 입각하여, 5급 이상 공무원의 단결권 역시 원칙적으로 보장되어야 함을 재확인하고 있는 것이고, 나아가 열악한 근무조건에 있는 소방직 공무원들의 단결권 역시 보장되어야 함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최근 소방직 공무원과 심지어 노동부 소속 근로감독관·심사관들조차 단결권을 보장해달라며 특별법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한 사례는 결사의 자유가 법률로 금지할 수 없는 천부적 인권임을 재차 확인시켜 준다고 할 것이다. 참고로 ILO는 3월 29일 한국 정부에 대해 권고를 하면서 일본 정부에 대해서도 권고를 하였는데 그 중에는 ‘교정직 공무원들에게도 단결권을 보장하라’는 보다 진일보한 내용까지 포함되어 있다.
한편 ILO는 이번 권고가 ‘해고자·실업자의 조합원 자격을 인정할 것, 비조합원의 노조 임원선거 출마금지 조항을 폐지할 것’이라고 하고 있는 것 역시 단결의 범위는 노동조합이 스스로 규약에서 정할 문제이지 사용자나 정부가 개입할 문제가 아니라는 ILO 결사의 자유 원칙을 재확인한 것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노조활동을 이유로 사용자가 부당해고를 하고 이를 다투는 노조활동이 해고된 노동자가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다시 ‘불법’이 되고 그로 인해 다시 부당해고가 재생산되는 악순환의 고리는 반드시 끊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 현행 제3자 개입 신고제는 많은 논란이 되었던 제3자 개입금지를 신고제로 슬쩍 바꾼 것일 뿐 여전히 노조활동에 대한 연대지원을 범죄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권고는 이 역시 실질적으로 결사의 자유를 부당하게 제약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노조법상 2007년부터는 사용자가 노조전임자 급여를 지급하는 행위가 부당노동행위로 규정하는 점도 지적되었다. 부당노동행위란 사용자가 노동조합 활동을 제약하고 간섭하기 위하여 부당하게 개입하는 것인 반면, 2003년 현재 민주노총 소속 노조 중 96%의 경우 사용자가 전임자 급여를 지급하고 있는 점에 비추어 볼 때 노조전임자 급여는 노동조합이 실질적인 노동조합 활동을 보장받기 위하여 투쟁과 교섭을 통해 쟁취한 것이라 할 것이고 따라서 이를 부당노동행위로 규정하여 처벌하겠다는 것은 부당노동행위의 본질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정부가 법률로 노조전임자 급여를 금지시키겠다는 것은 사실상 노동조합 활동을 무력화하겠다는 의도이기에 부당하다고 할 것이며, 하기에 ILO 권고는 전임자 문제가 단체교섭에서 노사가 자율로 결정할 사항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단체행동권과 관련해서는 ILO 노동기준은 ‘파업권은 (1) 국가의 이름으로 권한을 행사하는(exercising authority in the name of the State) 공무원이 수행하는 공무수행 (2) 엄격한 의미에서의 필수공익사업(그 서비스의 중단이 생명·개인의 안전 또는 국민의 전부 또는 일부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는 것)의 경우에 제한되거나 금지될 수 있다(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 심리결정례, 1996).’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이러한 파업권의 제한은 사법부 구성원, 법무부 직원을 포함할 수 있지만, 공무원을 일반적으로 포함하거나 정부가 소유하고 있는 상업적 기관이나 산업체에서 근무하는 공공부문 종사자를 포함하는 것으로 확장되어서는 안 되며, 위 구별의 관점에서 볼 때 어떤 법률이든 파업권이 제한되는 공무원의 범위를 가능한 한 명백하고 좁게 정의하여야 한다(ILO 노동입법가이드라인).’라고 하여 파업권이 제한되는 범위를 최소화시켜야 한다는 원칙을 밝히고 있다.
현행 특별법은 모든 공무원의 단체행동권을 전면적으로 박탈하고 있고, 노조법은 파업권이 과도하게 제약되는 필수공익사업의 범위를 과도하게 넓게 규정하고 있다. 또한 직권중재제도의 악용에 의해 공공부분의 파업은 거의 대부분 불법파업이 되도록 하고 있는 바, 이번 ILO 권고는 파업권에 대한 제약이 비록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 범위를 최소화시키도록 하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한편 ILO 결사의 자유위원회(CFA)는 전교조 사건 286차 보고서에서 ‘563. 교육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은 필수서비스나 정부 당국의 권한을 실행하는 공공 서비스 개념에 포섭되지 않는다.’라고 확인한 바 있다. 따라서 교사의 쟁의행위를 박탈하고 있는 교원노조법 역시 국제노동기준에 부합하도록 개정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발전노조 파업사례 등과 같이 산개투쟁을 전개한 사례에서도 법원은 ‘단순한 집단적 근로제공 거부’조차 위력으로 보아 형법상 업무방해죄로 판단하고 있다. 이는 헌법상 보장되는 기본권인 파업권 자체를 근본적으로 범죄시하는 관점이기에 부당하고, 업무방해죄는 위헌인 법률로서 폐지되어야 마땅하다. 이런 점을 지적한 ILO 권고는 시사하는 의미는 매우 크다고 할 것이다.
ILO 권고에 대한 정부의 반발
노동부는 지난 3월 31일 국제협력국장의 명의로 노동부 홈페이지에 게시한 언론보도 해명 및 4월 12일자 및 4월 17일자 국제노동정책팀장 명의로 매일노동뉴스에 게시한 기고에서 ‘ILO가 협의의 공무원에 대해서는 파업권이 제한 또는 금지될 수 있다고 일관되게 해석해 온 것과 상치됨은 물론, ILO의 공정성을 심각히 훼손’하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5월 2일 공무원노동인권탄압 진상조사단과 가진 면담에서 노동부 노사정책국장은 ‘ILO 기준에 따라 정부정책 방향을 가져갈 것이지만 다만 현재로서는 현행 특별법에 대한 개선 계획은 없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앞서 본 바와 같이 이번 ILO 권고는 기존의 ILO 노동기준의 원칙을 재확인하는 것이며, 오히려 일본 정부에 대한 권고에 비교해 볼 때 조금은 아쉬움이 남을 정도였다.
행정자치부가 공무원노조를 불법단체로 규정하고 노동조합 탈퇴를 강요하는 일련의 행위에 대하여 공무원·교수노동기본권보장을위한공대위, 민변, 민주노동당, 민주노총, 교수노조, 노동인권실현을위한노무사모임, 인권단체연석회의 등이 구성한 진상조사단은 이를 부당노동행위로 규정하고 중단을 권고하였다. 또 4월말 ILO 카리 타피올라 사무부총장은 민주노총·공무원노조 등으로 구성된 ILO 추가 제소단에게 행자부 지침 등 정부의 탄압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방함과 아울러 ‘직접 개입(Direct Intervention)’ 의사를 천명하였다.
정부는 ILO 기준에 대한 왜곡과 사실 축소에 급급하며 반발만 할 것이 아니라 이러한 일련의 사태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노동탄압국이라는 국제사회의 오명을 벗기 위해서라도 ILO 권고에 따라 공무원노조특별 악법의 제반 문제점을 시정하고 노조법 상 단결권과 파업권을 부당하게 제약하는 독소 조항들을 폐지하여야 할 것이다.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