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인권이에요, 당연하지] 가사노동은 ‘혼자서만 하세요’

엄마를 소외시키는 효율적 동선

한참 신나게 늦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엄마가 안 보인다. 외출하셨으면 분명 잠결에라도 현관 문 소리를 들었을 텐데 그런 기억은 없다. ‘엄마~’하고 길 잃은 강아지마냥 길게 소리를 빼어 불러보니 거실 바깥쪽 구석에서 ‘왜?’라는 답변이 희미하게 들렸다. 엄마는 빨래를 널고 계시는 중이었다.


대부분의 집이 그러하듯, 우리 집에서도 가사노동은 전부 어머니의 몫이다. 나머지 식구들이 저마다 각자의 생업을 갖고 있다는 핑계 때문에 자연스레 다른 업을 가지고 계시지 않은 엄마가 가사노동을 떠안으신 거다. 그런데 다들 알다시피, 이놈의 가사노동이라는 게 해도 해도 제대로 티 안 나는 것이 보통인지라, 우리 엄마도 가끔 ‘대체 집에서 청소도 안하고 뭐했어?’라는 모멸감을 느끼게 하는 핀잔을 들으셨다.



부엌일이 무슨 면벽수행도 아니고…


그런데 가사노동이 아무리 해도 티가 안 나는 이유 중 하나는 ‘효율적 동선을 위한 구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싫어하는 가사노동이 빨래인데, 세탁기만 돌린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빨래를 너는 것이 문제다. 세탁물을 제대로 잘 널어야 다림질을 하는 등의 이중 수고를 덜 수 있기 때문에 하나하나 잘 펴서 너는 게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다. 막상 내가 할 때는 그게 얼마나 귀찮은 일인지 알면서도, 정작 엄마가 빨래를 널고 있을 때는 쳐다보지도 않게 된다. 왜? 눈에 안 보이거든! 보통 아파트에서는 베란다 구석에 건조대를 두고 빨래를 너는데, 미관상의 이유로 빨래 건조대는 거실에서의 전망을 해치지 않는 쪽으로 최대한 몰아넣게 마련이다. 우리 집 구조는 좀 더 심해서, 거실에 있어도 빨래 건조대 쪽의 엄마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그 뿐인가. TV에서 나오는 부엌의 풍경은 요리를 하고 있는 사람의 정면에서 카메라 앵글을 잡기 때문에 부엌이 전혀 고립되었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실제 집에서 보면 부엌이 얼마나 답답한 구조인지 금방 알 수 있다. 음식을 하려면 누구와도 얘기하기 힘들고 오로지 벽만 보고 있어야 한다. 무슨 면벽수행도 아니고. 가사시간에 1자형, ㄱ자형, ㄷ자형 입식 부엌이 움직이는 동선을 줄여주고 그만큼 일을 수월하게 할 수 있는 구조라고 배우긴 했지만 그때는 부엌에서 일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고립될 수 있다는 얘기는 전혀 가르치지 않았었다. 덕택에 그 효율적 구조의 부엌을 만드느라 대부분의 집에서는 주부들을 면벽수행의 길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덕분에 주부들이 더 많이 참고 인내하는 힘을 기를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혼자서만 하라는 음모?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라는 일본 영화가 있다. 영화의 주인공인 수학 박사와 그 박사의 가정부가 친해지게 되는 공간은 바로 부엌이다. 가정부는 매일 박사를 위해 밥을 하고, 혼자 사는 박사는 밥하는 가정부 앞에 앉아 이런 저런 대화를 한다. 개수대와 수납장만 벽 쪽을 향해 있고 조리대나 가스레인지 등은 식탁을 향해 놓여 있어서 음식을 하면서 마주 앉은 사람과 대화가 가능하고 음식 하는 사람의 동선을 그대로 볼 수 있는 구조의 부엌이었다. 그런 공간이 아니었다면 아마 두 사람은 제대로 친해질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예전의 한옥 부엌도 열려진 구조가 아니긴 마찬가지였다. 아예 부엌이 따로 뚝 떨어져 있어서 부엌문을 열어보지 않으면 그 안에 누가 있는지도 몰랐을 테니. 하지만 그때의 부엌은 지금과는 차이가 있었다. 아마도 그때의 부엌이란, 어느 한 쪽에 누룽지가 소복이 담긴 그릇이 있을까 불쑥 들어가 보기도 하고, 어머니가 묻어놓은 감자나 고구마가 있지 않을까 기대를 갖고 열어보게 만드는 매력적인 공간이었을 것이다. 그뿐인가. 어머니 혼자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둘이 부엌에 달라붙어 있어도 넉넉히 일 할 공간이 충분히 확보되었을 것이다. 요즘 부엌은 둘이 나란히 서있기에도 벅차다. 두 사람이 동시에 일 하는 것은 매우 불편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거치적거리기까지 한다. ‘혼자서도 잘해요’가 아니라 ‘혼자서만 해’라는 부엌가구 회사들의 음모가 담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까지 들 정도이다. 그런 불편한 부엌 구조 덕분에 친척들이 다 모이는 명절 때는 바닥에 휴대용 버너를 갖다 두고 음식을 했던 기억이 있다. 도저히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움직일 수도 없고, 얘기를 할 수도 없는 그 부엌 구조는 다 같이 모여서 수다를 떨며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그래야 겨우 그 지겨운 명절노동을 견딜 수 있을 테니) 명절 때에는 완전 무용지물이었다.



아마 올해도 다들 여자들만 일하는 그런 지겨운 명절을 맞는 집이 많을 것이다. 손이 부르트도록 설거지를 해야 하고 기름 냄새를 맡아야 하는 날이 돌아온 것이다. 최근에는 해마다 명절 때 명절노동 분담에 대한 얘기가 꽤 많이 나오고 있지만 그게 얼마나 잘 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가사 분담이 잘 안 되는 이유 중 하나는 가사노동을 하는 공간이 폐쇄적으로 되어 있는 구조가 큰 몫을 할 것이다. 안 보이고 안 들리는데 그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제대로 알 수나 있겠느냐 말이다. 제발, 엄마들 그리고 언니들. 명절 때만이라도 공개적으로 넓은 자리 차지하고 앉아서 힘든 티 팍팍 내 가면서 일해보자. 그래서 대체 가사노동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얼마나 귀찮고 필요하지만 티가 안 났던 일인지를 화끈하게 보여주자. 그래서 제발 부엌에, 건조대에, 창고에 엄마만 들어가게 하지 말자. 나도 이제 건조대에 빨래 널면서 심심해 할 우리 엄마를 위해 같이 빨래를 널어야겠다. 물론 당장은 귀찮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길 잃은 강아지 마냥 ‘엄마~’라고 길게 목 놓아 부를 일은 없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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